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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추지절의 가을 여행, 화창한 날씨에 즐겁고 의미 있는 답사
오두산성, 호로고루성, 당포성 답사
2025-10-26 11:02:35최종 업데이트 : 2025-10-26 11:02:33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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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오두산성에서 바라본 한강과 임진강 합류지점 (사)화성연구회는 2025 경기도문화유산활용사업인 '성곽과 시대의 삶, 찾아가는 미래 – 성곽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5번의 이론 강의와 2번의 현장 답사를 통해 경기도에 분포한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성곽을 공부하고 역사 속에서 성곽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역사적 교훈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사업이다. 성곽 답사를 통해서는 성곽의 전략적 위치와 구조를 알아보고 역사적으로 성곽 축조 기술이 어떻게 발전하고 전승되었는지 알아보는 의미 있는 강의와 답사 프로그램이다.
조선 전기의 학자인 양성지(1415-1482)는 1456년(세조 2년) 상소문에서 '우리 동방은 성곽의 나라'라고 말했다. 과거 고조선 시대의 강역부터 현재 우리나라에 산재한 성곽은 확인된 것만 2,500여 개가 넘는다. 그야말로 우리나라는 성곽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고대부터 성곽을 축조하는 데는 대규모의 노동력이 필요하고 노동력을 동원하기 위해서는 조직적인 행정력과 작업에 동원된 사람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 경제력이 필요하다. 토목, 석축, 목조건축 등 성을 쌓으려면 축성기법과 같은 기술력과 기술자 집단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성곽은 국가의 국력과 발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성곽의 규모와 위치만 보더라도 국가의 전체적인 정체성을 파악할 수 있다. 성곽을 공부하는 이유이다. 연천 호로고루성, 몇 안되는 남한의 고구려성 이번 성곽 프로젝트는 지난 6월 14일 수원화성박물관에서 '경기도의 고구려 성곽'이란 이론 강의로 시작해 '경기도의 백제 산성', '경기도의 신라 성곽', '고려 대몽항쟁기 처인성과 김윤후의 3차례 승전', '방어체계 변화에 따른 조선시대 성곽 축조 기법의 변화' 등의 전문가 이론 강의가 있었다. 이론 강의에 이어 지난 25일 '한성백제를 호위한 산성'이란 주제로 성곽 답사를 다녀왔다.
원래 답사를 기획할 때는 경기도 기념물이면서 백제 성곽인 '파주 월롱산성', '육계토성', '포천 고모리산성'을 정했지만, 사전답사를 한 결과 접근 도로 미비, 성곽의 정체성을 파악할 수 있는 성곽 형태가 남아 있지 않아 부득이하게 백제 산성인 '파주 오두산성', 고구려 성인 연천 '호로고루성', '당포성'을 다녀왔다. 여기는 4세기부터 7세기까지 삼국이 치열하게 맞붙어 싸우던 현장이기도 하다. 이날 첫 번째로 답사한 오두산성은 임진강과 한강이 합류하는 지점의 남쪽 오두산에 백제가 축성한 산성이다. 4세기 후반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며 백제의 수도였던 한성을 방어하는 군사 요충지였다. 김정호의 대동지지(1864년)에 오두산성을 관미성으로 기록하고 있다. 392년 10월에 광개토태왕이 지휘한 고구려군대는 관미성을 공격해 함락시켰다. 삼국사기에는 '관미성은 사면이 가파른 절벽이며 바닷물로 둘러싸여 있다. 왕이 군대를 일곱 길로 나누어 20일을 공격하여 빼앗았다.'라고 당시의 치열했던 전투 상황을 기록했다. 연천 호로고루성에서 바라본 임진강, 몇 안되는 남한의 고구려성 오두산성 안에는 군사시설과 오두산통일전망대가 있다. 전망대 가기 전 왼쪽에 약 30m 정도의 성벽만 복원된 상태이다. 성벽만 보고는 백제산성의 정체성을 파악하기 힘들지만, 산성이 위치한 전략적 위치는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 두 번째는 연천 호로고루성을 답사했다. 호로고루성은 임진강 변에 형성된 28m 높이의 현무암 수직 절벽을 이루는 긴 삼각형 대지 위에 축성한 강안평지성(江岸平地城, 강기슭 평지에 쌓은 성)이다. 성벽의 전체 둘레는 401m 정도 된다. 임진강 변의 주상절리로 인해 성의 남쪽과 북쪽은 현무암 절벽을 성벽으로 이용했고 평지로 이어지는 동쪽에만 너비 40m, 높이 10m, 길이 90m 정도의 성벽을 쌓았다. 호로고루성은 553년 이후에 고구려가 축성했지만, 고구려가 망하고 신라가 점령해 사용하면서 무너진 동벽을 보수했다. 고구려 성벽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새로운 성벽을 덧붙여 쌓았기 때문에 고구려 성벽과 신라 성벽의 축성술을 비교해서 볼 수 있다. 고구려 성벽은 대부분이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현무암으로 쌓았는데 신라 성벽은 주변에서 구하기 어려운 편마암으로 쌓았다. 연천 호로고루성을 바라보고 고구려 성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현무암은 돌이 질기고 깨기가 힘들어 다루기가 쉽지 않지만 오랜 기간 임진강 일대를 지배하며 현무암을 다루는 기술을 터득한 고구려 석공들은 쉽게 쌓았을 것이다. 이에 반해 새로 임진강 지역을 차지한 신라 석공들은 돌 다루는 기술을 단기간에 익힐 수 없어서 다루는데 익숙한 편마암을 멀리서 조달해 성벽을 쌓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호로고루성의 동쪽 성벽 축성기법을 보면 성의 기단부와 중심부는 점토와 마사토로 여러 번에 걸쳐 흙을 다져 쌓은 위에 돌로 성벽을 높이 쌓아 올려 석성과 토성의 장점을 적절하게 결합했다. 성벽의 안과 밖은 석축으로 쌓아 내구성과 방어력을 높여 고구려성의 특징적인 축성기법을 보여준다. 연천 당포성, 호로고루성과 비슷하다. 호로고루성은 개성과 서울을 연결하는 중요한 길목에 위치한 고구려성이다. 평양을 출발한 고구려군이 백제 수도인 한성으로 진격하는 최단코스는 호로고루성 앞의 여울목을 건너 의정부 방면으로 진격하는 것이었을 정도로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다. 당포성은 강안평지성으로 호로고루성과 쌍둥이처럼 비슷하다. 관광객에게 호로고루성은 해바라기로 유명하고 당포성은 별을 볼 수 있는 곳, 성벽 위에 홀로 선 나무로 유명하다. 호로고루성과 당포성은 천혜의 자연조건을 이용해 축성했기 때문에 풍광이 수려하다. 임진강의 장쾌한 경관이 펼쳐져 아름답고도 아름답다. 답사를 통해 역사의 숨결을 느껴보고 가을을 가슴에 안아보는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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