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수원시립아트스페이스광교 《화두 話頭: 말보다 앞서가는 것》 전시
말보다 앞선 사유, 세상을 묻는 조형의 언어
2025-11-03 14:46:13최종 업데이트 : 2025-11-03 14:46:11 작성자 : 시민기자   김상래

ㅛ

《화두 話頭: 말보다 앞서가는 것》전시 전경


가을이 한창 물 오른 요즘, 수원시립아트스페이스광교 지하 전시장에 새로운 전시가 열려 필자가 다녀왔다. 《화두 話頭: 말보다 앞서가는 것》 이 전시는 언어 이전의 사유, 즉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기 전 '감각의 질문'을 던진다. 2025 경기시각예술 창작지원 결과전으로 마련된 이번 전시는 경기문화재단과 수원시립미술관이 공동으로 기획했으며, 구기정·김소산·방성욱·방수연·손희민·안성석·이수지·전가빈·최태훈 등 아홉 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그들의 작품은 서로 다른 매체인 조각, 영상, 회화, 설치, 사운드로 구성되어 있지만, 결국 하나의 공통된 화두 "말보다 앞서 사유하는 인간의 손, 그리고 다시 세계를 묻는 눈."으로 모인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기억하며, 무엇을 만들고 있는가.

철근과 시멘트, 균열의 언어: 전가빈
ㄴ

전가빈 〈우리가 우리이기 위해〉 설치 전경


전시장 한쪽 벽면에는 철근과 시멘트가 뒤엉킨 구조물이 놓여 있다. 무겁고 단단한 물질의 언어는 시간이 지날수록 균열과 부식을 드러낸다. 전가빈은 이러한 재료들을 "현대 도시의 욕망과 자기 복제적 성장의 은유"로 읽는다. 그의 신작 〈우리가 우리이기 위해〉(2025)는 노동과 생산, 개발과 폐기가 반복되는 사회 구조 속에서 배제된 존재들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한때 건설의 재료였던 시멘트 덩어리가 이제는 해체의 조형물로 서 있는 풍경 앞에서 필자는 문득 "지속 가능한 성장"이라는 말의 공허함을 떠올렸다.

생명의 기원을 묻다: 손희민
ㄴ

손희민 〈뒤섞인 시나리오〉 작품 일부


손희민의 작업은 생명의 기원과 진화를 탐구한다. 〈뒤섞인 시나리오〉에서 그는 세포 분열과 증식, 생멸의 과정을 조각과 인공지능, 사운드로 시각화한다. 과거·현재·미래의 시간대가 뒤섞인 듯한 그의 설치물은 생명이라는 것이 하나의 '직선적 진보'가 아니라 끝없이 되감기고 변형되는 순환임을 보여준다. 작품 앞에서 한참을 머물다 보니, 죽음조차 진화의 한 형태일 수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것은 파괴가 아니라 전환, 소멸이 아니라 새로운 생의 문장처럼 느껴졌다.

기계의 꽃, 인간의 감각: 김소산과 구기정
ㄴㅁ

김소산 〈기계로 물든 꽃들〉


김소산의 〈기계로 물든 꽃들〉은 금속의 냉정함 속에서 피어나는 생명의 리듬을 보여준다. 에칭 기법을 통해 구현된 꽃의 형상은 산(acid)의 부식으로 이루어진 미세한 선들로 조각되어 있다. 기계적 질서 속에서도 피어나는 유기적 생명, 그 상반된 요소들이 만들어내는 조화는 "인간의 손과 기술이 언제까지 생명을 대신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ㄴ

구기정 〈클리어뷰 메커니즘〉


구기정의 〈클리어뷰 메커니즘〉은 디지털 이미지와 자연의 경계를 실험하는 작업이다. LED 패널과 렌즈를 통해 구현된 화면은 가까이 다가가면 오히려 흐릿해지고, 멀어질수록 형태를 드러낸다. 그의 작업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역설을 보여주며, 기계–인간–자연의 상호 순환을 은유한다. 기술이 만든 가상의 풍경 앞에서 나는 오히려 현실의 감각을 더 또렷하게 느꼈다.

노동의 기억, 삶의 감각: 방성욱
ㅌ

방성욱 〈더 나은 삶을 위하여〉


방성욱의 〈더 나은 삶을 위하여〉(2025)는 작가의 어머니가 평생 다루던 재봉틀의 이미지에서 출발한다. 그는 노동의 기억을 "살아 있는 감각"으로 불러낸다. 작품 속에서 공업용 그라인더가 천을 갈아내며 내는 소리는 생계와 존엄, 반복되는 일상의 리듬을 함께 들려준다. 그 속에는 근대 산업사 속 여성 노동의 서사가, 그리고 작가 자신의 내면적 정체성이 겹쳐 있다. 그의 작업은 노동을 추상적 이념이 아닌, '살아 있는 몸의 기억'으로 되돌려놓는다.

존재와 풍경의 경계: 방수연, 안성석, 이수지ㅇ

방수연 〈모래길〉, 안성석 〈우리는 미래를 포기하고...〉, 이수지 〈닮은 것〉 전시장 전경


방수연의 〈모래길, 유령곡선〉은 바람과 진동, 소리의 결을 따라 그린 회화다. 그의 붓끝은 사라지는 풍경을 붙잡으려는 인간의 감각처럼 섬세하다. 모래의 입자가 흩날리며 만들어내는 미세한 파동 속에서 나는 '무형의 시간'을 본다. 안성석은 사진과 VR을 결합한 작업 〈우리는 미래를 포기하고 그 자리에 비관과 냉소를 채워 넣는다〉를 통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인간의 불안을 직시한다. 디지털 시뮬레이션 속에서 현실은 끊임없이 재조합되고, 결국 '가상'이 '현실'을 대체한다. 그는 묻는다. "우리는 어디까지 현실을 믿을 수 있을까."
 
ㄴ

방수연 〈모래길〉, 안성석 〈우리는 미래를 포기하고...〉, 이수지 〈닮은 것〉 전시장 전경


이수지의 〈닮은 것, 넓은 것〉은 실을 감고 엮는 행위를 통해 몸과 사물, 내면과 외부의 경계를 허무는 실험이다. 그의 작업대 위에서 만들어진 '닮은 형상'들은 서로 닮았으나 완전히 같지 않은, 인간의 존재처럼 불완전한 형태들이다. 그 미묘한 차이 속에서 작가는 평형을 찾는다.

형태의 실험, 손의 언어: 최태훈
ㄴ

최태훈 〈지지체〉 작품 이미지


최태훈은 건축용 팽창 우레탄 폼을 활용해 '형태와 비정형의 상호작용'을 탐구한다. 〈지지체〉 시리즈에서 그는 폼이 부풀며 내부에서 스스로 만들어내는 우연한 조형을 작품 일부로 삼았다. 그것은 인간의 통제 너머에서 태어나는 조형의 자율성이다. 이 작업은 "만드는 손"의 개입을 최소화하면서도 '창조란 무엇인가'를 역으로 묻는다.  이런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자, 전시장을 나서던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ㅇ전시장 전경


아홉 명의 작가들이 던진 화두는 각기 다르지만, 모두가 지금 우리가 서 있는 현실의 한 단면을 비추고 있었다. 철근의 균열에서, 인공지능의 영상 속에서, 바람과 모래, 실과 빛, 그리고 기억의 파편 속에서 나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결국 '사유하는 손'이라는 사실을 다시 느꼈다. 《화두》는 단지 결과물이 아니라 "생각하는 과정 그 자체"를 전시장에 펼쳐 놓은 실험이었다. 말보다 앞선 감각, 손끝의 사유, 존재를 향한 질문들이 전시는 그렇게 우리에게 조용하지만 오래 남는 질문을 던진다.

전시 정보
전시명: 《화두 話頭 : 말보다 앞서가는 것》
기간: 2025. 10. 28.(화) ~ 12. 21.(일)
장소: 수원시립아트스페이스광교 (수원컨벤션센터 B1)
관람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 (월요일 휴관)
입장료: 무료
문의: 031-5191-4195 / suma.suwon.go.kr
김상래님의 네임카드

#수원시립아트스페이스광교 #수원시립미술관 #화두전시 #경기도공예주간 #경기시각예술창작지원 #2025전시 #현대미술전시 #수원전시 #예술이있는삶

연관 뉴스


추천 2
프린트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

독자의견전체 0

SNS 로그인 후, 댓글 작성이 가능합니다. icon 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