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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박물관 서예반 수업 모습 "전에는 한 학기 수업이 15강이라 학기를 마칠 때면 새로 시작한 서체를 어느 정도 익혔는데 10강으로 줄어들어 서체를 익힐만하면 종강이라 너무 아쉽습니다. 너무도 유익한 서예 수업인데 수업을 하는 시간보다 쉬는 시간이 많습니다. 다음 학기부터는 15강으로 늘려주기를 바랍니다." 종강을 아쉬워하는 수강생의 말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10강 수업은 너무 짧다는 생각이다. 1년에 10강 수업을 2번 하는 것은 납득하기가 힘들다. 수원의 각종 문화센터 등에서는 10강인 경우 3학기를 운영하기도 한다. 쉬지 않고 4학기를 운영하는 곳도 있다. 평생학습이란 차원에서 수강생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히는 것이 대세이다. 박물관에서는 수강생들의 희망 사항을 전향적으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수원박물관 서예반 수업 자료 필자는 서예를 시작한 지 15년이 지났다. 해서체를 배우며 서예에 입문한 후 예서체, 행서체, 초서체를 익혔다. 서체 중에서도 초서체가 취향에 맞아 줄곧 초서체만 썼다. 어느 정도 붓을 다룰 수 있으면서 '광개토태왕비문'의 글씨체를 익혔다. 광개토태왕비문은 서기 414년의 글씨체인데 당대 최강국인 고구려의 기상이 들어가 있어 강건하면서도 웅장하고 고졸하지만 담박한 아름다움이 있는 글씨, 전혀 기교를 부리지 않은 글씨이다. 이런 글씨를 제대로 쓰려면 붓을 잡은 지 최소한 10년 이상의 내공이 필요하다. 이 글씨는 한글 고체인 훈민정음 서체와 자형이 비슷해 증거는 없지만, 당시 집현전 학자들이 광개토태왕비문을 봤을 개연성이 있기도 하다. 서한 시대의 채옹(132-192)은 "글씨는 자연에서 비롯되었다. 자연이 이미 생김에 여기에서 음양이 나왔고 음양이 이미 생김에 따라 형세가 나오게 되었다."라며 서예가 자연에서 나왔음을 말했다. 서체에는 자연이 들어있고 음양이 들어있다. 글씨를 쓰기에 앞서 이러한 자연의 원리를 이해해야만 서예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수원박물관 서예반 수업 모습 서여기인(書如其人)이란 말이 있는데, 글씨가 바로 그 사람이라는 뜻이다. 글씨에 그 사람의 인격이 담겨있는 것이다. 글씨를 쓸 때는 마음가짐을 정갈하게 하고 인격을 수양하는 자세로 써야한다. 손 글씨 보다 컴퓨터 자판을 많이 사용하는 현대인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말이다. 필자는 3학기째 금문(金文)을 익히고 있다. 금문이란 은나라 시대에 청동기에 새긴 글씨체로 갑골문에서 발전한 글씨체이다. 문자학(文字學)적으로 한자가 탄생하고 발전해가는 초기의 역사를 알 수 있다. 금문은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면서 다양하게 변했는데 이를 대전(大篆)이라 하고 진나라 때 소전(小篆)으로 통일되었다. 소전에 이어 예서체가 나왔고 초서, 행서, 해서체가 등장했다. 서예역사나 문자학 측면에서 초기 한자의 모습을 봐야만 현재 사용하고 있는 해서체의 원형과 뜻을 이해할 수 있다.
금문으로 쓴 '검이불루 화이불치'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금문으로 쓰고 있는데 간혹 마음에 드는 글귀나 의뢰받은 글을 쓰기도 한다. 이번 학기에는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라는 글을 써봤다. 이 글은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나오는 말로 백제 시조 온조왕이 궁실을 새롭게 지은 것을 평한 것이다. 정도전의 삼봉집에도 비슷한 말이 나온다. 궁원(宮苑)의 제도는 사치하면 반드시 백성을 수고롭게 하고 재정을 손상시키는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고, 누추하면 조정에 대한 존엄을 보여 줄 수가 없게 될 것이다. 검소하면서도 누추한 지경에 이르지 않고, 화려하면서도 사치스러운 지경에 이르지 않도록 하는 이것이 아름다운 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검소란 덕의 유이고, 사치란 악의 큰 것이니, 사치스럽게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검소해야 할 것이다.
금문으로 쓴 '검이불루 화이불치 삼국시대 이후 우리나라의 예술품, 건축물 등 문화 전반에 철저하게 스며든 철학이 바로 '검이불루 화이불치'인 것이다. 이런 글을 쓰면서 우리나라의 귀중한 문화유산의 정체성을 관통하는 선조들의 정신을 배우게 된다. 오늘날 K-문화의 뿌리가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유형, 무형유산과 문화적 전통을 바탕으로 K-문화를 꽃피우며 문화강국으로 도약하고 있다. 서예는 단순히 글씨만 쓰는 게 아니라, 우리 역사와 문화적 자긍심을 느끼는 기회이기도 하다. 광개토태왕비문의 글씨를 쓰면서 대륙을 호령했던 조상의 기상을 느끼는 것처럼 서예는 예술의 차원을 넘어 나의 정체성을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 연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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