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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할미산성 안성 죽주산성 답사
2025-11-10 15:14:47최종 업데이트 : 2025-11-10 15:14:45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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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과 시대의 삶, 찾아가는 미래 – 성곽 프로젝트' 답사, 용인 할미산성 (사)화성연구회는 지난 6월 14일 '성곽과 시대의 삶, 찾아가는 미래 – 성곽 프로젝트'라는 주제로 2025 경기도문화유산활용사업을 시작해 지난 11월 8일 현장 답사를 끝으로 마무리했다. 이번 경기도문화유산활용사업은 경기도에 분포한 '경기도기념물'인 성곽을 대상으로 했다. 경기도에 분포한 성곽 중 경기도기념물은 20곳이 있다. 5번의 이론 수업에서는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등 시대별 성곽의 특징을 알아봤다. 2번의 성곽 답사를 통해 다물성곽연구소 한정규 소장은 10월 25일 '한성백제를 호위한 산성'이라는 주제로 파주의 오두산성, 연천의 호로고루성, 당포성, 11월 8일 '신라의 북진 거점 산성'이라는 주제로 용인의 할미산성, 안성의 죽주산성, 용인의 처인성을 답사하며 성곽 위치를 통해 전략적 중요성, 역사적으로 구조와 축조 기술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알아봤다. 경기도에 분포한 신라 산성의 정체성을 이해하려면 소백산맥 남쪽과 북쪽, 남한강 상류인 영월부터 충주 지역, 남한강을 따라 한강에 이르는 5-6세기 고구려와 신라의 관계와 국경선이 어떻게 변했는지 자세히 알아야 한다. '성곽과 시대의 삶, 찾아가는 미래 – 성곽 프로젝트' 답사, 용인 할미산성 성벽 1979년 발견된 충주고구려비는 안 보이는 글자가 많아 언제 세워졌는지 판독에 어려움이 있었다. 여러 근거를 바탕으로 449년과 480년 설이 있었다. 이 당시에는 명백히 고구려가 충주지역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397년에 세웠다는 최근의 연구결과가 나왔다. 첨단장비를 동원해 글자를 판독한 결과 비 제목에 '영락 7년(永樂, 광개토태왕 7년)'이라는 글자가 판독되었다. 고구려가 397년 충주지역을 차지하고 있어야만 당시의 역사적 사건이 모순 없이 해결된다. 399년 백제와 왜가 신라에 침입해 신라왕은 고구려왕에 귀의해 구원을 요청했다. 400년 광개토태왕은 보병과 기병 5만을 보내 신라를 구원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충주지역이 고구려 영토가 아니었다면 고구려 군사가 어떻게 소백산맥 남쪽에 있던 신라를 구원할 수 있었겠는가? 최소한 충주지역과 충주지역 동쪽이 고구려 영토였음을 알 수 있다. '성곽과 시대의 삶, 찾아가는 미래 – 성곽 프로젝트' 답사, 용인 할미산성에서 바라본 석성산 신라는 고구려를 배반하고 433년 백제와 동맹을 맺었다. 이 당시에는 고구려와 신라의 국경선이 소백산맥이었을 것이다. 450년 실직(강원도 삼척)에서 신라군이 고구려 장수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해 고구려와 신라는 적대관계로 변했다. 468년 고구려가 신라의 실직성을 함락해 실직군을 설치하고 하슬라주(강원도 강릉)에 편입해 동해, 삼척 지역을 고구려 영토로 만들었다. 470년 신라는 보은에 삼년산성을 축성하고 고구려와의 전쟁에 대비했다. 475년 고구려는 백제의 한성을 함락하고 금강 유역까지 진출했다. 481년 고구려는 소백산맥을 넘어 신라의 호명성 등 7성을 함락하며 경상북도 흥해(경주 북쪽)까지 진출했다. '성곽과 시대의 삶, 찾아가는 미래 – 성곽 프로젝트' 답사, 안성 죽주산성 광개토태왕(391-413)과 장수왕(413-491) 시기의 고구려는 동아시아의 절대 강자였다. 세월이 흘러 505년 신라는 빼앗겼던 실직을 회복했다. 551년 백제는 한강 하류 6군, 신라는 한강 상류 죽령 이북 고현 이남 10군을 점령했다. 553년 신라 진흥왕은 백제가 차지했던 한강 유역을 빼앗고 신주를 설치했다. 553년 이후 고구려와 신라가 한강, 임진강 유역을 경계로 대치했다. 이러한 역사적 전개 과정에서 5세기 후반에 보은의 삼년산성, 문경의 고모산성, 상주의 견훤산성을 축성했고 6세기에 정선의 고성리산성, 영월의 정양산성, 대야산성, 단양의 온달산성, 적성산성, 충주의 충주산성 등을 남한강 남쪽에 축성했다. 이후 신라가 북진하는 과정에서 여주의 파사산성, 안성의 죽주산성, 용인의 할미산성을 축성했다. '성곽과 시대의 삶, 찾아가는 미래 – 성곽 프로젝트' 답사, 안성 죽주산성 남문 지난 8일 첫 번째로 용인의 할미산성을 답사했다. 할미산성은 영동고속도로가 지나가는 백현의 북쪽 선장산(349m) 정상을 둘러싼 테뫼식 석축산성이다. 경안천, 탄천, 신갈천 등 하천과 중요한 교통로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다. 백현 남쪽에는 석성산(471.3m) 정상과 능선을 둘러싼 석축산성인 석성산성과 봉수대가 있다. 석성산 봉수대는 조선 시대 5거제 봉수 노선 중 제 2거 노선으로 삼남 지방의 봉수가 안성 망이산 봉수에서 결집한 후 용인 건지산 봉수를 거쳐 석성산 봉수, 성남 천림산 봉수, 한양 목멱산 봉수로 이어졌다. 1796년 수원화성이 축성된 후에는 석성산 봉수 신호를 수원화성 봉돈에서도 받았다. 용인 처인성 안성의 죽주산성은 영남대로가 조령과 추풍령으로 갈라지는 분기점에 위치하고 있어 삼국시대부터 전략적 요충지였고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도성 방어에 중요한 산성이었다. 송문주 장군이 몽골군을 격퇴한 현장이었고 임진왜란 때도 격전지였다. 성곽 답사를 통해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성곽의 역사와 전쟁의 역사를 알아보았다. 가을날 유익한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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