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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의 조경가, 정조를 만나다
영흥수목원 특별기획전, 12월 31일까지 열려
2025-11-11 15:11:19최종 업데이트 : 2025-11-12 12:01:44 작성자 : 시민기자   강영아

'조선의 최고의 조경가, 정조' 특별기획전

'조선의 최고의 조경가, 정조' 특별기획전



깊어가는 가을, 수원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영흥수목원을 찾았다. 이곳에서 올해의 마지막을 장식할 특별한 기획전 '조선 최고의 조경가, 정조'가 열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걸음을 재촉했다. 현재의 수원을 있게 한 '수원의 아버지' 정조대왕의 깊은 철학과 예술적인 감각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제22대 임금 정조대왕. 우리는 그를 개혁 군주, 애민 군주로 기억하지만, 이번 전시는 그의 또 다른 면모, 자연과 조경을 사랑한 예술가로서의 모습을 섬세하게 조명하고 있다.
 

영흥수목원 방문자센터 2층 숲향기홀에서 지난 4월 15일부터 12월 31일까지 이어지는 이 전시는 '왕의 정원', '신의 정원', '정조가 사랑한 식물' 세 가지 주제로 나뉘어 정조의 조경 세계를 소박하지만 알차게 풀어내어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단순한 왕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연과 사람, 그리고 역사를 조화롭게 엮어낸 한 위대한 '조경가'의 삶을 따라가는 여정이었다.
 

1부. 왕의 정원: 삶의 공간에 담긴 정치철학

전시는 먼저 1부 '왕의 정원'으로 관람객을 안내한다. 정조대왕이 세손 시절부터 왕위에 오른 후 생활하고 국정을 돌봤던 주요 공간들이 소개된다. 정조의 숨결이 닿았던 궁궐과 화성의 정원을 만날 수 있다. 평생을 머물렀던 창경궁과 경희궁, 창덕궁 그리고 그의 꿈이 담긴 계획 도시 수원화성까지. 정조의 생활 공간에 조성되었던 정원을 소개한다. 단순한 건물을 넘어,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했던 정조의 공간 철학이 느껴진다. 서궐인 경희궁과 동궐인 창덕궁, 창경궁의 특징과 얽힌 일화들이 흥미롭다.
 

특히, 정조의 원대한 꿈이 담긴 수원화성 부분은 눈여겨볼 만했다. 성곽 내부 공간뿐만 아니라, 백성을 사랑하고 농업을 장려했던 정조의 애민정신을 엿볼 수 있는 축만제, 만석거 등의 저수지 조경 시설까지 함께 조명하고 있다.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진 않지만 격이 떨어지지 않게 도시를 조성하라고 지시했던 정조의 깊은 뜻이 느껴진다. 수원화성이 단순한 방어 시설이 아닌, 치밀하게 계획된 '정원 도시'였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화성행궁의 조경 시설물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화성전도를 보고 있는 관람객

화성행궁의 조경 시설물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화성전도를 보고 있는 관람객


관람객 김민지 씨(30대)는 "수원화성 하면 건축물만 생각했는데, 축만제나 만석거 같은 농업 관련 시설도 정조의 조경 철학이 담긴 공간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백성의 삶까지 생각한 조경이라니, 감동적이네요."

 

2부. 신의 정원: 효심으로 빚은 조경 예술

다음으로 이어진 2부 '신의 정원'은 정조의 '효심'을 따라간다.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정조의 지극한 효심이 꽃피운 사후세계와 관련된 조경 공간들이다.
 

특히 사도세자의 묘소인 '영우원'을 조선 최고의 명당으로 꼽히던 수원 화산으로 옮기고 '현륭원'이라 이름 붙인 일화는 정조의 애틋한 효심을 웅변한다.


아버지의 묘를 '용이 서린 기운'의 수원 화산으로 옮기고, 현륭원(융릉), 원찰 용주사 등을 조성하며 이 모든 조경에 '용(龍)'의 상징을 심어 왕권과 연결시키고자 했던 정조의 계획이 놀랍다.


특히, 경모궁 조경 기록에는 1,220그루의 나무와 풀이 세심하게 기록되어 있었다고 한다. 정조의 조경은 자연에 대한 사랑을 넘어, 정치적 이상과 효심을 담아 영원히 기억되길 바라는 설계였다. 이 공간들은 정조에게 있어 가장 신성하고 중요한 정원이었을 것이다.


수원화성박물관이 제공한 영상자료를 통해 현륭원 조성에 얽힌 이야기를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는데, 용이 여의주를 가지고 노는 형상으로 풍수지리까지 고려해 산을 뒤로하고 연못을 앞에 조성한 장엄한 설계는 정조가 단순한 '식목왕'이 아니라 자연의 이치를 꿰뚫는 '조경의 대가'였음을 증명한다. 묘소와 사당의 변천 과정도 한눈에 볼 수 있어, 격변의 시대를 살았던 정조의 고뇌와 결단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3부. 정조가 사랑한 식물: 취향 속에 담긴 실용과 수양

전시의 중앙, 가장 시선을 끄는 3부 '정조가 사랑한 식물'에서는 정조의 식물 취향을 깊숙이 들여다본다. 정조가 수원에 다수 식재하도록 했던 연꽃은 한지 공예 작품으로, 사시사철 푸른 기개를 상징하는 소나무는 분재로 그 매력을 뽐낸다.

 

관람객이 정조가 사랑한 식물들을 유심히 보고 있다.

정조가 사랑한 식물들을 관람객이 유심히 보고 있다.

 

소나무는 건축 자재로서도 중요하게 여겨 정조가 직접 식재 및 관리를 지시한 기록이 많다고 한다. 그런데 정조가 가장 좋아했던 식물은 의외로 석류로, 정조가 좋아한다고 직접 밝힌 유일한 식물이라고 한다. 석류는 꽃이 피는 시기가 모내기 때이고, 열매가 맺는 시기가 추수 때와 같아 실용적인 식물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더 놀라운 것은, 정조가 창덕궁 앞에 석류 분재 수백 개를 학익진 모양으로 배치하여 군사 연구에 활용하고, 암살자 침입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수단으로도 삼았다는 이야기다. 또한 파초의 생태적 속성을 자아 수양의 방편으로 삼아 직접 <파초도>를 남길 정도였다니, 정조는 식물을 단순한 아름다움이 아닌 실용, 철학, 심지어 군사 전략에까지 활용한 진정한 '식물의 군주'였던 것이다.
 

정조 筆 파초도, 보물 743호, 동국대학교 박물관 소장

정조 筆 파초도, 보물 743호, 동국대학교 박물관 소장


미디어 아트 '창덕궁 후원의 사계'와 왕좌의 체험 포토존

메인 전시 관람 후에는 놓칠 수 없는 미디어아트 영상, '정조의 안식처, 창덕궁 후원의 사계절'이 상영된다. 국가유산청이 제작한 이 3D 영상은 정조의 안식처였던 창덕궁 후원의 사계절 아름다움을 생동감 있게 담아낸다.
 

정조의 주 활동이었던 부용지 일대의 봄 풍경을 시작으로 정조의 증조부 숙종의 연꽃 사랑이 담긴 애련지의 여름과 정조가 신하들과 유상곡수연(굽어도는 물에 술잔을 띄워놓고 그 술잔이 자기 앞에 오면 시를 읊으며 놀던 놀이)을 즐긴 옥류천 일대의 가을 풍경, 그리고 눈 내리는 연경당 일원의 풍경을 담았다.
 

봄의 생명력, 여름 연꽃의 고요함, 가을 단풍의 풍류, 그리고 겨울의 정적인 아름다움까지 정조의 시선을 따라 궁궐 후원의 사계절을 걷는 듯한 황홀경에 빠져든다.
 

"사방팔달의 큰 길에도 한가함이 있으니, 마음이 한가롭다면 굳이 강호를 찾아가고 산림에 은거할 필요 있으랴."

영상과 함께 흐르는 이 글귀는, 번잡한 궁궐 안에서도 자연을 통해 심신의 평화, 곧 '한가함'을 찾았던 정조의 깊은 내면을 대변하는 듯하다. 그의 정원은 단순한 꾸밈이 아닌, 통치를 위한 '쉼'이자 '사색'의 공간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부용지와 규장각 주변을 비롯한 후원의 감춰진 정원들을 사계절의 빛과 색으로 만끽하는 시간은 마치 궁궐 정원으로 순간 이동한 듯한 기분을 선사했다. 
 

정조대왕 체험 포토존

정조대왕 체험 포토존


숲향기홀 한켠에 마련된 '정조대왕 체험 포토존'도 인기였다. 임금의 어좌가 재현되어 있고, 곤룡포와 익선관까지 준비되어 있어 일월오봉도 앞에서 잠시 정조가 되어보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많은 관람객이 환한 웃음으로 기념사진을 남기는 모습에서, 역사 속 인물과의 친밀감을 느낄 수 있었다.

 

정조효원에서 전시의 여운을 잇다

전시 관람을 마친 후에는 꼭 영흥수목원 내 '정조효원'에 들러보자. 전시의 여운을 직접 자연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정조의 애민정신이 담긴 정자 덕화당과 동락정, 그리고 '온 백성을 두루 살피겠다'는 의미를 담은 정조의 호 '만천명월주인옹'이 새겨진 돌담은 그 자체로 정조의 철학이 담긴 조경 예술품이다.
 

이곳에서는 정조가 사랑했던 식물들을 실제로 볼 수 있으며, 특히 2024년 가을 국가유산청에서 분양받은 천연기념물 후계목 2주(창덕궁 향나무 후계목, 화성 융릉 개비자나무 후계목)와 화성행궁 삼정승 느티나무 후계목 등이 있어 역사적 의미를 더한다. 전국의 아름다운 수목을 식재하고 관리했던 정조대왕의 업적이 수목원 곳곳에 살아 숨 쉬는 듯했다.
 

영흥수목원 내 전통정원 , 정조효원에 가을빛이 선연하다

영흥수목원 내 전통정원, 정조효원에 가을빛이 선연하다


이번 특별기획전은 정조의 도시 수원에서, 정조의 안식처였던 창덕궁 후원의 사계절을 느껴보고 그의 깊은 효심과 미적 감각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다. 화려함보다는 절제된 아름다움,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했던 정조의 조경 세계를 통해, 우리는 오늘날 도시와 정원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보게 된다.

 

영흥 수목원의 인근 주민인 박영수(60대) 씨는 "정조효원을 거닐면서 전시 내용을 떠올려보니, 나무 하나하나, 정자 하나하나에 정조의 마음이 담겨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깊은 가을,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여유를 찾게 되는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단순한 역사 전시를 넘어, 한 위대한 군주가 자연을 통해 자신의 정치 철학, 효심, 그리고 예술적 감각을 어떻게 구현했는지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귀한 자리였다.
 

특별기획전이 열리고 있는 영흥수목원 숲향기홀

특별기획전이 열리고 있는 영흥수목원 숲향기홀


올해 12월 31일까지 계속되는 이 특별한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은 정조가 꽃피운 조선 정원의 아름다움과 철학을 오감으로 체험하며 자연과 역사의 조화를 생각하는 계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영흥수목원의 가을 명소에서, 조선 최고의 조경가 정조를 만나 그의 탁월한 예술적 감각과 깊은 인간적 면모에 감성적으로 젖어보는 것은 어떨까.

 

특별기획전 '조선 최고의 조경가, 정조'는 수원 영흥수목원 방문자센터 2층 숲향기홀에 방문하면 무료로 볼 수 있다. 만약 영흥수목원 속 정조효원에 방문하고 싶다면 입장료(성인 4000원, 청소년 2500원, 어린이 1500원, 수원 시민 할인)를 내고 들어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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