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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유관순만 알았다... 8호실 감방 동료 '어윤희, 임명애, 김향화'를 아시나요?
수원여성문화공간 '휴', 알려지지 않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재조명한 역사기행
2025-11-14 10:08:21최종 업데이트 : 2025-11-14 13:16:23 작성자 : 시민기자   길선진

유관순열사기념관 앞에서 이번 역사·문화 버스투어 참가자들이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유관순열사기념관 앞에서 이번 역사·문화 버스투어 참가자들이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지난 12일 수원여성문화공간 '휴'가 마련한 '역사·문화 버스투어'에 시민 40여 명이 참여했다. 맑게 갠 하늘 아래, 참가자들은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부터 조선 선비의 숨결이 깃든 민속마을까지, 하루 동안 밀도 높은 시간 여행을 떠났다.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8호실의 숨겨진 영웅들

유관순 기념관에 들어서는 순간, 공기는 경건함으로 무거워졌다. 참가자들은 18세 소녀의 결기가 담긴 사진과 기록 앞에서 발걸음을 늦췄다.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외치는 유관순 열사의 모습이 조각된 동상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외치는 유관순 열사의 모습이 조각된 동상

 

해설사는 유관순 열사의 삶을 "짧지만, 가장 깊고 뜨거운 삶"이라고 소개했다. 특히 1919년 서울 만세운동과 서대문 감옥 여옥사 8호실에서 이어진 '옥중 만세운동'은 참가자들의 심장을 울렸다.
 

"1920년 3월 1일, 8호실에서 유관순 열사가 먼저 만세를 외쳤습니다. 이어 옆방, 또 그 옆방… 옥 전체가 흔들릴 만큼 만세가 번졌고, 감옥 밖 시민들까지 거리로 뛰쳐나와 만세를 외쳤습니다."


서대문 전차를 멈추게 할 만큼 수많은 시민이 동참한 이 '옥중 만세운동'은 한 명의 영웅이 아닌, '함께한 모두'의 역사였다. 
 

수원여성문화공간 '휴'와 함께한 역사기행은 우리가 익히 아는 유관순 열사의 곁을 지켰던, 그러나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8호실의 동료들을 재조명했다. 학생, 어머니, 시각장애인, 그리고 기생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독립을 외쳤던 평범하지만 위대한 여성들의 이야기다.


독립운동 관련 전시관에서 해설사가 유관순 열사의 생애와 당시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을 설명하고 있다.

독립운동 관련 전시관에서 해설사가 유관순 열사의 생애와 당시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을 설명하고 있다.

 

"내가 배포하겠소" 개성 만세운동의 불씨, 어윤희

"누군가는 이 일을 해야 한다면, 내가 하겠습니다." 어윤희 선생의 삶은 기구했다. 16살에 혼인했으나, 남편이 3일 만에 동학농민전쟁터에서 전사했다. 홀로 개성에 정착한 그녀는 3·1운동 당시, 모두가 두려워 망설일 때 독립선언서 배포를 자처하며 개성 지역 만세운동의 불씨를 당겼다.
 

해설사는 "독립운동은 누군가의 선언과 배포, 조직이 필요한 일이었다"며 "모두가 몸을 사릴 때 '내가 하겠다'고 나선 어윤희 선생의 용기가 있었기에 개성의 만세가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갓난아기와 함께 수감된 어머니, 임명애

임명애 선생은 파주에서 남편과 함께 만세운동을 하다 수감되었다. 더욱 가슴 아픈 사실은, 그녀가 만삭의 몸이었다는 것이다. 감옥에서 아이를 낳을 수 없어 잠시 풀려나 출산한 뒤, 갓 태어난 아기를 안고 다시 감옥으로 들어와야 했다. 남편마저 수감되어 아기를 돌볼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른도 죽어 나가는 혹독한 감옥에서 아기는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해설사는 "8호실 동료들의 위대한 연대가 아기를 살렸다"고 말했다. "당시 배급은 목숨만 겨우 붙일 정도의 양이었습니다. 하지만 감방 동료들은 그 밥을 반으로 쪼개 '이거 먹고 아기 젖 물려야지'라며 임명애 선생에게 건넸습니다."
 

유관순 열사 역시 한겨울 꽁꽁 언 아기 기저귀를 새벽에 몰래 자기 배에 품어 체온으로 말린 뒤, 저녁에 아기에게 채워주었다는 일화는, 8호실이 단순한 감방이 아닌 뜨거운 동지애가 살아 숨 쉬던 공간이었음을 증명한다.


"수원 기생 30명, 경찰서 앞에서 만세" 김향화

"우리 수원 분들이라면 김향화 선생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해설사가 수원 기생이었던 김향화 선생의 이야기를 꺼내자 참가자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가난 때문에 기생이 되었지만, 그녀의 민족의식은 누구보다 뜨거웠다.
 

김향화 선생은 동료 기생 30여 명을 이끌고 당시 가장 공포스러운 장소였던 수원 경찰서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서슬 퍼런 일제 권력의 심장부에서 태극기를 펼쳐 들고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


해설사는 "당시 가장 천대받던 계층이었던 기생들이 목숨을 걸고 만세를 외친 것"이라며 "이는 3·1운동이 신분이나 계층을 초월한 전 민중적 항거였음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순국선열들의 위패가 모셔진 추모각에서 참가자가 묵념을 올리고 있다.

순국선열들의 위패가 모셔진 추모각에서 참가자가 묵념을 올리고 있다.

 

 평범한 이들이 역사의 주인공이었다

8호 감방에는 이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두 눈은 잃었지만, 나라 사랑하는 마음은 잃지 않았다"며 앞장선 시각장애인 신영식 선생도 있었다. 해설사는 "3·1운동에 참여한 이들은 어떤 특별한 영웅이 아니라, 바로 우리처럼 평범했던 보통의 민중들이었다. 그들 모두가 역사의 주인공"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유관순 열사는 옥중 만세운동 몇 달 뒤인 1920년 9월 28일, 모진 고문으로 인한 장기 파열로 순국했다. 이번 역사기행은 우리가 누리는 오늘의 자유가 유관순 열사, 그리고 그녀와 함께했던 이름 모를 수많은 동료의 고귀한 희생 위에 서 있음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시간이었다.


물길과 은행나무가 어우러진 외암마을 초입 전경. '살아있는 민속박물관'이라 불릴 만큼 전통가옥과 자연 경관이 조화롭다.

물길과 은행나무가 어우러진 외암마을 초입 전경. '살아있는 민속박물관'이라 불릴 만큼 전통가옥과 자연 경관이 조화롭다.

 

고요한 돌담길에서 만난 '신독(愼獨)'의 정신

다음 여정은 아산 외암민속마을. 고즈넉한 돌담길을 걸으며 조선의 시간 속으로 들어갔다. 해설사는 이곳에서 조선 선비들의 정신인 '신독(愼獨)'을 화두로 던졌다.
 

"신독이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바른 마음과 자세를 지키는 삶의 태도입니다. 이것이 바로 조선 선비들이 추구한 자기 성찰의 자유였습니다."


조선 후기 관직층의 주거 문화를 보여주는 영암군수댁.

조선 후기 관직층의 주거 문화를 보여주는 건재고택(영암군수댁).

 

수백 년간 예안 이씨 집성촌의 전통을 지켜온 마을. 참가자들은 문화재로 지정된 '건재고택(영암군수댁)'의 고아한 정원과 고택을 거닐며 "조선의 집이 이토록 아름답다는 걸 처음 느꼈다"며 감탄했다.


노민호 강사는 역사적 배경과 민족 정체성, 조선 시대 신독(愼獨) 정신까지 쉽고 유머러스하게 설명하며 참가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노민호 강사는 쉽고 유머러스하게 설명하며 참가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역사를 '살아있게' 만든 해설사의 '번외 이야기'

이번 여행의 백미는 단연 해설사의 깊이 있는 설명이었다. 참가자들은 식민지배의 맥락, 태국이 식민지를 피한 이유 등 다각적인 역사 구조를 배울 수 있었다.
 

특히 노민호 강사가 수원시민들을 위해 풀어놓은 '수원 이야기'는 큰 호응을 얻었다.
 

"여러분이 매일 이용하는 수원의 화장실 문화가 사실은 심재덕 시장님으로부터 시작된 세계적인 도시 운동이었다는 것 아시나요? 하수처리장, 컨벤션센터에도 다 도시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참가자들은 "우리가 사는 도시에 이런 뒷이야기가 있는 줄 몰랐다"며 흥미로워했다.
 

"역사를 보러 온 게 아니라, 느끼러 왔다"

버스 안에서는 종종 웃음이 터졌고, 기념관에서는 고요한 침묵이 흘렀으며, 돌담길에서는 깊은 사색이 이어졌다.
한 참가자는 "유관순 열사의 삶을 들으니 가슴이 먹먹했다.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되어 울컥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유관순 열사의 뜻을 기리기 위해 모두가 두 손을 들고 외친 '대한독립 만세'의 순간

유관순 열사의 뜻을 기리기 위해 모두가 두 손을 들고 외친 '대한독립 만세'의 순간

 

이번 버스투어는 단순한 견학을 넘어, 우리가 어떤 희생 위에 서 있는지, 또 어떤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가야 하는지 돌아보게 하는 '살아있는' 역사 교육이었다.
 

이번 역사·문화 버스투어를 주관한 수원여성문화공간 '휴'는 앞으로도 시민들이 삶과 역사를 연결하는 다양한 문화·교육 프로그램을 이어갈 예정이다. 더 자세한 프로그램 정보는 수원여성문화공간 '휴' 홈페이지(https://suwonhue.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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