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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령전에서 '제273주년 화령전 정조대왕 탄신제향' 열려
운한각 현판 순조 글씨로 바꿔야
2025-11-14 10:53:09최종 업데이트 : 2025-11-14 10:53:07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화령전 운한각

화령전 운한각


지난 11일 오전에 화령전 운한각 앞에서 '제273주년 화령전 정조대왕(정조선황제) 탄신제향'이 열렸다.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가 주최하고 사단법인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이 주관하고 정조대왕 충효사상 선양회가 후원했다. 제향 섭행단체는 화령전봉향회가 맡았다. 11월 11일은 음력 9월 22일로 정조대왕이 탄생한 날이다.

이날 탄신제향은 화창한 늦가을에 포근한 날씨 속에서 전향례(조선시대 국가 제사에서 왕이 직접 축문과 향을 헌관에게 전달하는 의식)를 시작으로 초헌례, 아헌례, 종헌례로 이어졌다. 일반적인 조선왕릉 제향, 종묘제례, 향교, 서원, 궐리사 석전대제, 고유제 등과 비슷한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진행자에 의하면 탄신제향은 기록에 근거해 진행하는 것이며 홀기(제향의 진행 순서)도 갖추고 있다고 했다. 제향은 집례가 홀기를 낭독하면서 차례로 진행된다. 필자는 수원화성 성신사 고유제, 정조대왕함 고유제 등을 진행하면서 기록을 통한 고증작업과 고유제에 참여하고 있어 왕릉 제향이나 사직단 고유제, 향교, 궐리사의 석전대제 등의 의례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있다.

화령전 운한각 앞에서 열린 '제273주년 화령전 정조대왕(정조선황제) 탄신제향'

화령전 운한각 앞에서 열린 '제273주년 화령전 정조대왕(정조선황제) 탄신제향'


정조대왕은 1752년 9월 22일에 아버지 사도세자와 어머니 혜경궁홍씨의 둘째 아들로 창경궁 경천준에서 태어났다. 1755년에 소학을 읽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그야말로 천재였던 것 같다. 1759년 2월에 왕세손에 책봉되었고 1776년 3월 10일 경희궁 숭정문에서 제22대 왕위에 올랐다. 

1789년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현륭원으로 모셨고 1793년 수원부의 이름을 화성으로 바꿨다. 1794년 1월부터 1796년 9월까지 수원화성을 축성하고 10월 16일 낙성연을 열었다. 1800년 6월 28일 창경궁 영춘헌에서 승하했다. 정조대왕은 1789년부터 1800년까지 13차례 수원행차를 하면서 현륭원을 참배했다. 

1795년 윤2월 9일부터 16일(양력 3월 29일-4월 5일)까지 어머니를 모시고 8일간 행차했다. 9일 창덕궁을 떠나 10일 저녁 화성행궁에 도착했다. 11일에는 수원향교 대성전에 전배했고, 화성행궁에서 문무과 별시를 거행했다. 12일에는 어머니와 함께 현륭원을 참배하고 화성장대에서 주간 및 야간 군사훈련을 지휘했다. 

화령전 운한각 앞에서 열린 '제273주년 화령전 정조대왕(정조선황제) 탄신제향'

화령전 운한각 앞에서 열린 '제273주년 화령전 정조대왕(정조선황제) 탄신제향'


13일에는 화성행궁 봉수당에서 어머니 회갑잔치를 베풀어 드렸다. 14일에는 신풍루에서 사민(홀아비, 과부, 고아, 자식 없는 노인)과 진민(가난한 사람)에게 쌀을 나누어 주었고 낙남헌에서 양로연을 베풀어 드렸다. 방화수류정 등 수원화성을 시찰하고 득중정에서 활쏘기를 하는 등 바쁜 일정을 보내고 15일 귀경길에 올라 16일 배다리를 건 창덕궁에 도착했다.

정조대왕의 이름은 산(祘)이고, 자는 형운(亨運), 호는 홍재(弘齋)이다. 사후의 묘호는 정종(正宗)이었는데 1897년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격상된 후에 정조(正祖)로 격상되었고 선황제(宣皇帝)로 추존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과 복잡한 의례를 모르면 이름과 묘호를 구분하기가 힘들다.

화령전

화령전


사도세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영조는 1762년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였지만, 세자의 위호를 회복시켜주고 사도(思悼)'라는 시호를 내리고, '수은(垂恩)'이라는 사당의 칭호를 내려주었다. 정조가 즉위한 후 '장헌(莊憲)'이라는 시호를 소급하여 올리고, 궁호를 '경모(景慕)', 원호를 '영우(永祐)'라고 고쳤다. 수은묘에서 영우원으로 격상한 것이다. 

1789년 영우원을 수원으로 옮기면서 현륭원으로 이름을 고쳤다. 1897년 추존 황제가 되어 묘호는 장조(莊祖), 시호는 의황제(懿皇帝)가 되었고 현륭원(顯隆園)이 융릉(隆陵)으로 격상되었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복잡한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현륭원'과 '융릉'을 구분하지 못하고 '현릉원'이라 부르는 경우가 있고, 현륭원이 왜 융릉이 되었는지 모르는 경우가 있다. 

화령전

화령전


이날 탄신제향에 참석한 수원시민은 "탄신제향, 종묘제례는 향교나 궐리사 석전대제에서 절하는 방법, 절차 등이 약간 다릅니다. 각각 역사가 있는 홀기를 가지고 있는데 격식의 차이인지는 모르겠지만 기록을 검토해 봐야겠습니다."라고 의식의 차이에 대해 말했다.

화령전 운한각(雲漢閣)은 정조의 어진을 모신 정전이다. 운한각에는 원래 순조가 쓴 현판이 걸려 있었다. 그런데 언제인가 박정희 대통령의 글씨로 바뀌었다가 현대 서예가인 정도준이 쓴 글씨로 바뀌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순조의 글씨로 걸어야 한다. 화령전의 정체성과도 부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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