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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길이 이렇게 아름다웠나 《수원 팔색길》 사진전 개막
13명의 시선이 담은 계절의 색, 수원의 시간을 다시 읽다
2025-11-20 11:21:29최종 업데이트 : 2025-11-20 11:21:26 작성자 : 시민기자 김상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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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팔색길》 사진전 전시 포스터 찬바람이 골목을 파고드는 11월의 끝자락. 예술공간 아름 2층 전시실 문을 열자, 입구 정면 벽을 가득 채운 첫 번째 사진들이 먼저 시선을 끌었다. 바람이 아직 옷깃에 남아 있었지만, 사진 속 팔색길의 짙은 색감과 낮은 조명이 그 냉기를 서서히 덮어 주었다. 전시장 벽면에는 계절마다 달라지는 팔색길의 색감이 차례대로 놓여 있었다. 모두 팔색길에서 건져 올린 장면이었다. 팔색길은 2014년 조성된 여덟 개의 테마 길로 옛길·하천·산길을 이어 만든 수원의 대표 생태 동선이다. 전시장 속 사진들은 그 길의 계절과 결을 그대로 품고 있었다. 《수원 팔색길》 사진전 전시 전경
올해 전시에 참여한 13인의 사진가는 이 길을 직접 걷고 머물고 기다리며 카메라를 들었다. 전시장에는 새벽 안개가 내려앉은 하천, 노란 단풍이 길을 덮은 둑길, 도시와 산자락이 만나는 경계 등이 한 벽면에 이어지고 있었다. 한 장면에 몇 분씩 시선이 머물러도 새로운 결이 보일 만큼 섬세한 작업들이다. 《수원 팔색길》 사진전 전시 전경/캡션이 없어 오히려 자유롭게 관람이 가능하다 이번 전시의 사진들은 팔색길에서 느껴지는 시간의 흐름을 담아내고 있다.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 낸 순간의 표정과 사람과 자연이 함께 살아온 도시의 결, 그리고 우리가 지나치기 쉬운 일상의 표면 아래 숨어 있던 감각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수원 팔색길》 사진전 전시 전경/캡션이 없어 오히려 자유롭게 관람이 가능하다 13명 작가의 시선은 하나의 길을 여러 갈래의 이야기로 확장한다. 강현자 작가는 새벽 안개가 팔색길을 덮은 순간을 장노출로 담아냈고 이연섭 작가는 하천 옆 산책로를 걷는 노부부의 뒷모습을 부드러운 채도로 포착했다. 또 박종철 작가는 도시와 자연이 만나는 경계—산책길 옆 공업용 배관과 갈대가 동시에 들어온 장면—을 흥미롭게 보여주었다. 이들의 사진은 팔색길을 '걷기 코스'에서 수원을 읽어내는 도시 서사의 지도로 바꾸었다. 어느 한 장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수원의 다양한 표정이 서로 다른 감각과 시선이 겹쳐지며 비로소 전체를 이루고 있다. 홍채원 작가의 흑백 사진 작품 수원을 기록하는 사진가회는 2008년 창립 이후, 꾸준히 도시를 기록해 온 단체다. 삶의 곁을 스치는 사물, 오래된 풍경, 도시의 변화와 흐름을 성실히 담아온 이들의 축적된 작업이 올해의 《수원 팔색길》 전시에서 한층 깊어진 형태로 펼쳐지고 있다. 이번 정기회원전과 같은 기간, 예술공간 다움에서는 '올해의 작가 이선주' 개인전이 마련되어 있다. 같은 팔색길을 주제로 하되 또 한 번 감성적 깊이를 확장시키는 전시다. 이선주 작가의 작품은 '머무름'에 가까운 시선으로 다가온다. 잠들어 있던 풍경을 깨우는 듯한 침착한 빛, 한 장면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는 것이 느껴지는 밀도 높은 감각이 인상적이다. 마치 팔색길이라는 공간을 또 하나의 서정으로 번역해 내는 듯하다. 정기회원전이 넓은 도시를 펼쳐 보이는 지도라면, 이선주의 개인전은 그중 한 장면을 감성적으로 풀어낸 시집 같다. 자세히 보아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우리는 종종 도시를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 바쁘고, 익숙하고,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의 경로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번 《수원 팔색길》 전시는 조금 천천히 걸으면 무엇을 만날 수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사진가들은 익숙한 길을 낯선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 길에 쌓여 있던 도시의 기억들을 끌어올린다. 수원의 골목, 산길, 물길, 오래된 담장과 그 옆을 스치는 바람까지 기록의 대상이 되고 감정의 풍경이 된다. 그 사진들 앞에 선 필자는 어느새 나의 '팔색길'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학교에 가기 위해 매일 지나던 길, 한때 화실이 자리했던 골목, 계절에 따라 표정이 달라지던 하천변. 도시의 기억은 개인의 기억과 만나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다. 《수원 팔색길》 사진전 전시 전경/캡션이 없어 오히려 자유롭게 관람이 가능하다 수원을 기록하는 사진가 회(수기사)는 도시의 변화와 삶의 흐름을 꾸준히 바라보며 기록을 통해 도시와 사람을 잇는 역할을 해왔다. 현재 이병권 회장 아래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이 활동은 '기록'이란 행위가 결국 사람을 향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팔색길에 담긴 빛과 풍경은 결국 이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수원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곳, 기록함으로 사랑하게 되는 도시 수원의 모습 2025년 정기회원전 《수원 팔색길》은 그래서 더욱 특별한 전시로 다가온다. 걷는 사람이 많아지면 길은 이야기를 품는다. 그 이야기를 기록하는 이들이 있다면 도시는 기억을 갖게 된다. 예술공간 아름의 전시장에 놓인 사진 한 장 한 장은 관람객을 팔색길의 시간 속으로 부드럽게 안내하고 있다. 때로는 빛이 부서지는 하천으로 이따금 오래된 돌담로로 때로는 가을 잎이 바람에 흔들리던 순간으로 도시는 기록되어 있었다. 전시장을 나서자 다시 차가운 공기가 볼을 스쳤다. 방금 전까지 사진 속에서 보던 따뜻한 골목과 달랐지만, 그 차가움 덕분에 오히려 도시의 결이 또렷하게 느껴졌다. 도시를 기록하는 일은 이곳을 사랑하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작품 설명이 없어서 관람객이 스스로 속도를 정해 걸으며 볼 수 있는 전시였다. 예술공간 다움 전시 포스터 전시 정보 기간: 2025. 11. 18(화) – 11. 30(일) 장소: 예술공간 아름(Art space ARUM) /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834, 2층 주최: 수원을 기록하는 사진가회(수기사) 참여작가(13명): 강관모, 강현자, 고인재, 김미준, 김삼해, 류영임, 박종철, 서금석, 이병권, 이선주, 이연섭, 한정구, 홍채원 특별전: 올해의 작가 이선주 개인전(동 기간, 예술공간 다움) ![]() 연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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