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정조 이산(李祘)과 의빈성씨 덕임의 정(情), 판소리로 빛나다
팔달문화센터 수원예술대학, ‘정조의 시대 예술로 피어나다’
2025-12-04 11:29:25최종 업데이트 : 2025-12-04 11:29:24 작성자 : 시민기자   진성숙

 

 인사말하는 박정봉 소리꾼

인사말하는 박정봉 소리꾼강연에 집중하는 참가자들

강연에 집중하는 참가자들

지난 3일 오후 팔달문화센터에서는 시민 20여명이 모인 가운데 역사에 우리전통음악을 곁들인 판소리강연이 있었다. 앞서 지난주에는 2회에 걸쳐 서주호 국가유산지킴이께서 '수원화성, 정조의 이상을 짓다'란 제목으로 정조가 어떤 세상을 꿈꾸었는가와 그에 따른 수원화성건축기술의 백미들을 소상히 알려주었다. 이처럼 수원예술대학이란  제목으로 5가지의 테마로 정조시대를 둘러 싼 아름다운 문예사조를 이해하고 감성을 느껴보는 10회의 강연을 마련한 것이다.

 

이날 강사로 나선 박정봉님은 자신을 (전통을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인 소리꾼)으로 소개한다. 전통이란 무엇일까. 오래 된 것이 현재까지 생명력을 가지는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는 판소리음악극을 하는 단체의 대표이자 국악협회 수원지부장이기도 하다. 원래 연극을 공부하였는데 뭔가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을 느끼다 판소리의 매력에 빠져 이 길로 접어들게 되었단다. 정조와 의빈성씨의 이야기를 판소리공연과 예술적 해석으로 쉽게 이해하는 시간을 가져보고 그리고 동시대의 전통예술이란 주제에 대하여도 공부해보자고 말한다.

 

정조의 개혁에 관한 주제로 소리로 열창하다

정조의 개혁에 관한 주제로 소리로 열창하다판소리음악극을 영상으로 보다

판소리음악극을 영상으로 보다

그는 우선 우리전통음악인 판소리의 특징에 대하여 개략적인 설명을 하여 이해를 돕는다. 판소리 다섯바탕은 현재 전승되는 춘향가, 심청가, 흥부가, 수궁가, 적벽가로 이루어져 있다. 이중 수궁가는 토끼가 용궁으로 잡혀와서 죽을 위기에 처하였는데 밖에다가 간을 두고 왔다며 꾀를 내어가지고는 육지로 나와 탈출하며 욕을 들입다 하는 재미난 작품이고 적벽가는 삼국지의 적벽대전을 배경으로 한 작품인데 전쟁통에 이름도 없이 죽어야 했던 병사들의 이야기가 담긴 애환도 느껴진다.

 

그럼 판소리는 언제부터 불리어졌을까. 기록으로 춘향가의 유래는 조선영조때 유진환의 '만화집'이라는 책에서 춘향가 사설이 기록되어 있다 한다. 판소리는 성량도 커야 되고 서양에서는 소프라노, 알토 그리고 남자는 베이스, 바리톤, 테너 이렇게 있는데 판소리는 혼자 모든 걸 다 해야 하니 대단하다. 오로지 북을 치는 고수에 의지하여 몇시간을 심지어 8시간 반짜리 춘향가 판소리도 있다 하니 놀랍다.

 

더 나아가 판소리를 구성하는 3요소를 살펴보면

 

소리: 장단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

아니리: 노래가 아닌 말로 상황과 내용을 설명 묘사하는 부분

발림: 부채나 몸짓표정등으로 장면을 연기해 이해를 돕는 몸짓이라 볼수 있다. 그리고 관객들의 추임새가 양념처럼 곁들여지는 걸 빼트릴 수 없다.

 이산과 성덕임의 러브스토리를 감칠맛있게 스토리텔링 하다

이산과 성덕임의 러브스토리를 감칠맛있게 스토리텔링 하다비극적 스토리에 마음이 젖다

비극적 스토리에 마음이 젖다

정조와 의빈성씨의 사랑은 '조선왕실의 가장 아름답고 슬픈 사랑'이라 일컬어진다. '의빈성씨는 미모뿐 아니라 글씨와 바느질이 뛰어났으며 총명하고 온순하며 말을 아꼈다' 란 기록이 있는 걸 알 수 있다.

정조는 아버지를 잃은 지 얼마되지 않아 폐세자의 아들로서 외가로 내침을 당하는데 (얼마후 영조의 지혜로 큰아버지의 아들로 입적되어  궁에 다시 들어가지만) 이때 혜경궁홍씨와 찾아 간 외가에서 어린 덕임을 만난다. 덕임의 아버지가 홍씨가문의 청지기였던 것이다. 그 후 시간이 흘러 덕임은 궁녀로 입궁하게 되는데 궁녀였던 그녀를 무척 아껴서 정조는 즉위 직후 1776년 후궁으로 삼는다. 처음 하사받은 소용에서 후궁으로선 최고지위인 의빈에까지 올랐다. 정조는 그녀를 매우 총애하여 하루중 시간을 쪼개어 그녀의 처소에 들르곤 했다고 전해진다. 승정원일기에는 내의를 보내어 성씨의 건강을 살피게 했다는 기록이 자주 나온다고 한다.

 

성씨는 정조의 큰 아들 문효세자를 낳고 모두가 기뻐했으나 연이어 찾아 온 비극으로 그녀의 인생은 매우 짧았다. 그녀는 출산 후 22일만에 병에 걸려 안타까이 사망한다. 지금으로 보면 사인이 해질림(속병)으로 결핵이나 산후합병증으로 짐작된다고 한다. 문효세자도 만 4살에 죽고마니  정조의 상실감이  어떠했을까.
 

정조와 의빈성씨의 이야기가 특별한 이유는 세자와 그 어머니를 잇달아 잃는 크나큰 비극으로 정조의 정치적 고독과 개인적 상처가 더욱 도드라져 그 상처의 깊이가 가늠하기 어려웠을 터라 짐작이 가기 때문이다. 그녀가 죽은 뒤에 '내 마음이 찢어지는 듯 하다'고 적고 신하들에게도 '슬픔이 극하여 말을 잇기 어렵다'고 탄식한다.

 

강연이 끝나고 단체사진

강연이 끝나고 단체사진팔달문화센터 수원예술대학 프로그램 안내

팔달문화센터 수원예술대학 프로그램 안내

아무것도 부러울 것 없을 것 같은 제왕의 지위에 있었지만 무엇하나 제대로 가질수 없는 안타까운 세월로 만 47년을 살았던 그의 인생은 어떤 빛깔이었을까. 어려서 겪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비극과 끊임없는 암살위협과 참척의 슬픔인 의빈성씨 모자의 죽음과 다른후처인 유빈성씨도 출산하다 죽는데 무수한 죽음을 겪는 모습이 너무 비참하고 슬퍼보이지 않는가. 그 정면으로 상처투성이 인간 이산이 보인다.

박정봉 강사는 직접 소리도 하고 음악극의 영상화면도 곁들여보여주면서 점점 참가자들을 이야기의 심연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시름깊었던 한 인간으로서 정조의 생애를 조명해보니 연민의 정을 금할수 없고 결국 일찍 승하함으로서 그가 계획한 꿈의 세상도 제대로 실현시킬수 없었다. 한 참가자는 "다 아는 이야기지만 이렇게 직접 음악을 듣고 연기마당을 보니 더욱 실감이 되어 마음이 짠해온다. 슬픔을 극복하고 승화된 사랑을 마음에 품어 성군이 되신 정조대왕의 넓은 품이 새삼스럽게 위대하게 느껴진다"며 안타까운 소감을 말한다.

 

다음시간에는 이어서 정조의 4대 개혁과 정치적 식견, 주변인물들에 대하여 공부하게된다.

 

팔달문화센터: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수원천로 336

대표전화: 031-257-2967

 

 

 
진성숙님의 네임카드

팔달문화센터, 정조시대 예술, 판소리 음악극, 박정봉, 진성숙

연관 뉴스


추천 5
프린트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

독자의견전체 0

SNS 로그인 후, 댓글 작성이 가능합니다. icon 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