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되살아난 정조의 검무, 230년 전 꿈이 오늘 무대에 서다
12월 4일 정조테마공연장, ‘칼검 춤무’ 만석…숨을 삼키며 지켜본 생동의 검무
2025-12-06 14:42:32최종 업데이트 : 2025-12-06 14:42:30 작성자 : 시민기자   이영관

출연진 5명 공연의 한 장면

출연진 5명 공연의 한 장면


12월 4일 오후 7시, 수원 화성행궁 광장의 정조테마공연장은 250석 전석이 가득 찼다. 차가운 올겨울 첫눈과 차가운 바람 위로는 관객들의 숨죽인 기대감이 맴돌았고, 무대 위에서는 새 울음소리를 모티프로 한 잔잔한 배경음이 공연장을 채우며 230년 시간을 넘어 설렘을 불러냈다.

기획 1795 화성검무 복원사업단, 주최·주관 정조인문예술재단(이사장 박흥식), 후원 (사)화성연구회와 (사)다산연구소, 연출·대본 지기학이 함께한 '칼검(劍) 춤무(舞)'. 시민기자인 필자가 직접 촬영한 사진 속 무대는, 조선 후기의 기품과 정조대왕의 이상을 다시 한 번 현재로 소환해냈다.


검무예인 윤자경

검무예인 윤자경


진찬연의 기억을 꺼내다

1795년(을묘년), 정조대왕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기념해 화성행궁 봉수당에서 성대한 진찬연을 열었다. 그 자리에서 선보였던 '검무(劍舞)'는 단순한 군무(軍舞)가 아니라, 효심과 국정철학이 뒤섞여 탄생한 상징적 예술이었다. 당시의 검무는 여성 무용수들이 검을 들고 군복을 입은 채 역동적인 무예적 동작을 펼치는, 지금의 온화하고 절제된 '현대 검무'와는 완전히 다른 형태였다.
 

신윤복의 「쌍검대무」

신윤복의 「쌍검대무」


이번 공연은 박제가의 「검무기」, 신윤복의 「쌍검대무」, 「무예도보통지」의 쌍검 검법 체계, 그리고 화성행차 의궤 등 방대한 사료를 바탕으로 정조대의 검무를 원형에 가깝게 복원한 것이 특징이다.

 

"칼은 부드럽고 춤은 날카롭다" — 8개의 장면으로 엮은 '칼검 춤무'

배우 서승원의 사회와 무예연구가 김영호의 해설과 함께 무용·무예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8개의 장면은 고증과 예술적 재해석을 모두 담아냈다.

 

검녀(劍女) — 군복을 입고 등장한 검무 예인들의 절제된 행보가 무대를 정돈했다.

무제(無際) — 경계 없는 무예와 춤의 결합, 동작의 흐름이 구름처럼 이어졌다.

검무랑(劍舞郞) — 남성적 기운이 살아 있는 검의 궤적을 춤선으로 풀어낸 장면.

검선(劍仙) 김광택 — 실존 인물 김광택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서사적 퍼포먼스.

검술 시범 — 방어·공격을 위한 10가지 실전 동작을 재현하며 관객의 탄성을 자아냈다.

쌍검보 13세(勢) — 두 검의 분할·합류·전환이 빠르게 이어지며 원형 검무의 역동성이 돋보였다.

쌍검보 총보 — 무예적 긴장감이 극대화된 장면으로, 검과 검이 맞부딪히는 순간 객석이 고요해졌다.

칼검·춤무 공동 안무 — 춤과 무예,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며 피날레를 장식했다.
 

검무예인 신미경

검무예인 신미경

검무예인 신미경, 윤자경의 공동 검무

검무예인 신미경, 윤자경의 공동 검무


공연의 흐름은 안내자 서승원의 부드럽지만 핵심적인 질문과 무예연구가 김영호의 정확한 해설이 연결되어 관객에게 사료적 맥락과 장면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전달했다.

 

세 명의 예인, 두 사람의 대결, 그리고 한 시대의 재현

20년 이상 무용과 무예의 경계를 넘나들어 온 김재성·신미경·윤자경 검무예인은 각기 다른 개성의 검선(劍線)을 그려냈다. 특히 신미경·윤자경 두 예인이 마주 서서 대결하듯 펼친 쌍검대무 장면에서는 검 끝의 바람 소리가 그대로 들릴 만큼 긴장감이 고조됐다.

 

김재성의 검무랑 장면에서는 남성적 무력(武力)이 춤의 아름다움과 결합하여 원형 검무의 위엄을 다시 확인하게 했다. 무예연구가 김영호의 검술 시범은 실제 무예가의 체력과 기술을 그대로 드러내며 "조선 시대 검무는 무공을 예술화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몸으로 증명해 보였다. 
 

무예연구가 김영호가 검무예인 김재성의 검무를 지켜보고 있다.

무예연구가 김영호가 검무예인 김재성의 검무를 지켜보고 있다.

출연진 네 명의 검무 시범

출연진 네 명의 검무 시범


관객 250명, 숨죽인 만석

이날 공연은 사전 예약 단계에서 이미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시작과 동시에 객석은 조용히 내려앉았고, 검이 그어내는 공간의 선마다 관객의 시선이 쏠렸다. 무대 위에 울려 퍼지는 새 울음소리 같은 효과음은, 정조가 꿈꾼 나라가 깃드는 듯한 신비로움을 불러일으켰다.

 

공연이 끝나자 객석 곳곳에서 "이런 검무는 처음 봤다", "춤도 무예도 아닌 새로운 장르다"라는 감상이 이어졌다. 박흥식 이사장은 "정조 시대 예술의 정신과 생동감을 복원하는 길을 앞으로도 계속 넓혀가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출연진이 모두 나와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출연진이 모두 나와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축하내빈 기념사진. 우측에서 세번째가 정조인문예술재단 박흥식 이사장

축하내빈 기념사진. 우측에서 세번째가 정조인문예술재단 박흥식 이사장


되살아난 정조의 꿈

'칼검 춤무'는 단순한 전통 재현 공연이 아니라, 조선 후기 예술과 국가경영철학이 담긴 한 장면을 지금 이 시대에 다시 세워놓은 작업이었다. 정조대왕이 꿈꿨던 나라—강인하고도 아름답고, 무예와 예술이 공존하던 그 이상(理想)이 무대 위에 살아났다.

 

필자는 이날 무대를 보며 230년 전 봉수당에서 검을 든 기녀들의 숨결을 느꼈다. 역사 속의 검은 춤이 되었고, 춤은 철학이 되어 다시 관객 앞에 섰다. 누군가 말했던 것처럼, "되살아난 정조의 꿈"을 우리가 직접 본 밤이었다.

이영관님의 네임카드

정조테마공연장, ‘칼검 춤무’, 1795년, 진찬연 검무, 화성행궁, 이영관

연관 뉴스


추천 0
프린트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

독자의견전체 0

SNS 로그인 후, 댓글 작성이 가능합니다. icon 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