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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화면 대신 가슴에 새긴 소리... 남상일의 '놀다 歌 Show'"
2025년의 끝자락, 수원 정조테마공연장을 달군 우리 소리의 희로애락
2025-12-08 14:30:40최종 업데이트 : 2025-12-08 14:30:39 작성자 : 시민기자 강남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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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오후, 정조테마공연장의 고즈넉한 풍경이 관객을 맞이한다. 12월 6일 오후, 수원 정조테마공연장은 차가운 겨울바람도 식히지 못한 열기로 가득 찼다. '국악계의 아이돌'이라 불리는 명창 남상일의 콘서트 《남상일과 놀다 歌 Show》를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의 얼굴에는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
설렘의 증표. 이날 공연은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남상일의 티켓 파워를 입증했다. 공연 시작 전, 로비는 이미 만 원이었다. 가족, 단체 단위로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가족과 함께 온 이순규(매교동) 님은 "부모님이 남상일 씨를 좋아하시는데, 이번 기회에 아이들에게도 우리 문화를 접하게 해주고 싶어서 왔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또한 13명 단체 관람을 온 엄희섭(호매실동) 님은 "평소 아침마당 등 TV에서만 보던 분을 실제로 보게 되어 무척 설렌다"며, "수원에 이런 좋은 공연장이 있어 자주 찾는데, 오늘 공연도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본 공연은 사진과 영상 촬영이 철저히 제한되었다. 기록을 남기려는 욕심을 내려놓자, 오히려 렌즈라는 필터 없이 오직 두 눈과 귀로 무대 위의 아티스트와 오롯이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공연 시작 직전, 점차 빈자리를 찾아볼 수 없는 객석. 폭풍전야 같은 긴장감과 기대감이 공존했다. 시작부터 파격이었다. 조명이 켜지고 연주가 시작되었지만, 무대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웅성거림도 잠시, 객석 뒤편 계단에서 우렁찬 소리가 터져 나왔다. 남상일은 무대 뒤가 아닌 객석 계단을 걸어 내려오며 깜짝 등장해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냈다.그는 구수하고 익살스러운 <각설이 타령(장타령)>을 부르며 관객들과 일일이 눈을 맞추고 내려왔다. 물리적인 거리뿐만 아니라 마음의 거리까지 단숨에 좁힌 영리한 연출이었다. 격식 있는 국악 공연이 아니라, 제목 그대로 모두가 어우러져 노는 '놀이판'은 그렇게 객석 한가운데서 시작되었다. 한바탕 웃음으로 객석을 뜨겁게 달군 남상일은 공연 중반부로 접어들며 소리꾼의 '깊이'를 유감없이 꺼내 보였다. 인생의 사계절과 무상함을 노래하는 단가(短歌) <사철가>가 공연장에 울려 퍼지자, 들썩이던 객석은 순식간에 몰입하며 숨을 죽였다. 이날 무대에서는 국악과 가요의 경계를 허무는 특별한 시간도 마련되었다. 조용필의 명곡 <허공>이 국악 반주 위에 얹어진 것이다. 대중가요지만 남상일 특유의 구성진 '목'을 타고 흐르는 <허공>은 원곡과는 또 다른 애절한 색채(Color)로 관객의 심금을 울렸다. 또한 판소리 <흥부가> 중 박 타는 대목에서는 관객이 곧 흥부의 가족이 되어 톱질하며 웃음과 신명이 교차하는 희로애락의 진수를 맛보기도 했다. 공연의 절정은 단연 민요 메들리였다. <진도 아리랑>의 구슬픈 듯 흥겨운 가락에 이어 <쾌지나칭칭나네>, <뱃노래>가 울려 퍼지자 점잖게 앉아 있던 중장년층 관객들조차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듯한 기세였다. 화려한 조명보다 빛난 것은 관객을 들었다 놨다 하는 소리꾼의 공력(功力)이었다. 모든 에너지를 쏟아낸 후 관객들에게 인사하는 남상일과 연주단. 무대를 향해 아낌없는 박수와 환호를 보내는 관객들. 공연이 끝난 후, 로비에서 만난 관객들의 얼굴은 공연 전의 기대감이 '확신'과 '만족'으로 바뀐 모습이었다. 이날 서울에서 처가 방문 차 수원을 찾았다가 공연을 관람했다는 송민근 씨를 만났다."수원 공연장의 정갈한 매력에 빠졌다"라며 밝게 웃는 관객 송민근(서울) 씨. 송 씨는 "서울의 대형 공연장은 복잡한데, 이곳은 아담하면서도 정갈해 집중이 훨씬 잘 됐다"라며, "무대와 객석이 가까워 아티스트와 직접 소통하는 느낌을 받았다. 수원 갈비와 통닭만큼이나 맛깔난 공연이었다"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의 말처럼 이날 공연은 아티스트와 관객, 그리고 공간이 완벽하게 어우러진 한판이었다.공연이 끝난 후, 어둠이 내려앉은 정조테마공연장. 크리스마스트리의 불빛이 공연의 여운처럼 반짝인다. 공연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했음에도, 공연의 잔상(殘像)은 그 어떤 디지털 이미지보다 선명하다. 2025년을 마무리하는 시점, 남상일의 소리는 지친 일상에 위로를 건네고 다가올 새해를 맞이할 에너지를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기록보다 기억이 더 아름다울 수 있음을 증명한, 말 그대로 제대로 '놀다' 간 시간이었다.※ 다음 공연 안내 국악의 열기, 이자람이 잇는다 남상일의 흥겨운 무대가 남긴 여운을 이어가고 싶다면, 오는 12월 20일(토) 오후 4시에 열리는 이자람의 <바탕>을 주목하자. '사천가', '억척가' 등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창작 판소리의 대가' 이자람이 같은 장소인 정조테마공연장을 찾는다. 이자람 <바탕> 포스터 남상일의 무대가 대중과 호흡하는 '신명'이었다면, 이자람의 무대는 판소리 본연의 깊이와 현대적 감각이 어우러진 진한 '울림'을 선사할 예정이다. (문의: 수원문화재단 정조테마공연장 031-290-35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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