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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그리다’, 색으로 기억되는 탄자니아 – 헨드릭 릴랑가 展
수원 영선갤러리에서 만나는 아프리카의 일상과 꿈
2025-12-19 10:42:00최종 업데이트 : 2025-12-19 10:41:58 작성자 : 시민기자 김상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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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선갤러리 특별기획전 '행복을 그리다' 수원시 영통구 덕영대로 골목 끝, 조용한 건물 2층에 자리한 영선갤러리 문을 열고 들어서면, 겨울 공기와는 다른 온도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흰 벽면을 가득 채운 그림들은 강렬한 빨강·노랑·초록으로 눈을 사로잡고, 화면 속 사람들은 웃고 떠들며 춤추고 있다. 버스와 자동차, 코끼리와 기린, 집집마다의 지붕과 나무까지 뒤엉켜, 마치 한 장의 큰 축제 현장을 통째로 잘라 걸어 둔 듯한 인상을 준다. 영선갤러리는 2025년 12월 10일부터 2026년 2월 28일까지 탄자니아 출신 작가 헨드릭 릴랑가 특별기획전 〈행복을 그리다〉를 선보인다.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의 골목에서 출발한 그의 그림은 세계 여러 미술관을 거쳐 이제 한국 초등학교 3학년·5학년 미술 교과서에까지 실린 작품이 되었다. 필자 역시 아이가 초등 3학년이었을 때, 먼저 교과서 속에서 릴랑가의 그림을 만났다. 이후 아이와 함께 인사동을 찾았다가 한 갤러리에서 실제 작품을 마주한 날, 우리는 그림 속 아프리카 원주민의 삶과 문화, 그들이 사는 집과 거리, 그곳의 공기까지 상상하며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교과서 속 한 페이지에서 시작된 만남이, 이번 겨울에는 수원 시민에게로 한층 더 가까이 다가온 셈이다.
핸드릭 릴랑가의 알록달록한 에나멜 작품
헨드릭 릴랑가의 그림 앞에 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역시 '색'이다. 릴랑가는 탄자니아에서 1960년대에 등장한 대중 회화 양식 '팅가팅가(Tingatinga)' 전통 위에서 작업을 이어 간다. 합판이나 보드 위에 에나멜 물감을 올려 평면적인 구도와 선명한 원색, 반복되는 인물과 동물을 그려 내는 스타일이 특징이다. 여기에 그는 색을 잘게 쪼개 겹쳐 쓰고, 패턴을 촘촘히 밀어 넣어 화면 전체를 리듬감 있게 흔들어 놓는다. 붉은 바탕 위에 파란 인물과 노란 자동차가 얹히고, 초록 나무와 보라색 지붕이 뒤섞인다. 화면을 채운 색의 덩어리들이 서로 부딪히면서도 묘한 균형과 조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헨드릭 릴랑가의 조각작품 미술사에서는 이런 방식을 '컬러풀 모노톤(colorful mono tone)'이라고 부른다. 여러 색을 쓰지만 화면 전체가 하나의 톤으로 묶여, 마치 단색화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기법이다. 아프리카 미술 특유의 강렬한 색감과 릴랑가만의 리듬이 만나는 지점이다. 멀리서 보면 한 곡의 경쾌한 음악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면 선 하나, 패턴 하나까지 빼곡히 채워진 화면이 작가의 집요한 노동과 치열한 시선을 증명한다.
헨드릭 릴링가의 에나멜 작품과 조각작품
가난하지만 결코 불행하지 않은 사람들– 릴랑가가 발견한 아프리카의 휴머니티 릴랑가의 화면은 언제나 사람들로 붐빈다. 마을 축제를 그린 〈Festival〉, 온 가족이 둘러앉은 〈Happy family〉, 화려한 옷차림으로 무대에 선 〈Fashion show〉, 사파리 버스와 동물이 함께 등장하는 〈Safari〉까지. 작품 속 인물들은 누구 하나 포즈를 취하거나 영웅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약간은 투박하고 과장된 얼굴이지만, 그 안에는 삶을 버티게 하는 힘과 유머가 담겨 있다.
핸드릭 릴랑가의 가족과 공동체(Family and Community)를 주제로 한 작품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아프리카 사람들은 어렵다고 해서 자신을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의 말을 남긴 바 있다. 실제로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빈곤'의 이미지와는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전깃불이 부족해도, 물을 긷기 위해 먼 길을 걸어야 해도, 화면 속 사람들의 얼굴에는 웃음과 장난기가 떠다닌다.
영선갤러리 전시장 전경
전시장 한쪽에는 초등 미술 수업 시간에 활용하기 좋은 작품들이 걸려 있다. 축구를 하는 아이들, 학교에 가는 버스, 시장에서 장을 보는 사람들 같은 장면이다. 별도의 설명이 없어도 아이들은 그림 속 인물을 가리키며 "이 사람은 지금 뭐 하고 있을까?", "여기서는 어떤 노래가 들릴까?" 하며 스스로 이야기를 이어 간다. 한 장의 그림이 자연스럽게 '그림책 읽기'가 되는 순간이다.
핸드릭 릴랑가의 이번 전시는 특히 가족 관람객에게 권할 만하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보자면 화면은 거대한 그림책 한 장을 펼쳐 놓은 듯 보인다. 반대로 어른들에게는 우리가 일상에서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장면이 많다. 집, 밥, 함께 웃을 수 있는 사람들.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삶의 중심은 이미 충분히 단단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는 정말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작 "나는 행복하다"고 말하는 데에는 어쩐지 서툴다.
키스해링과 피카소에게 영감을 준 조지 릴랑가의 작품(핸드릭 릴랑가의 외할아버지)
전시 정보 ![]() 연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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