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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 정조테마공연장에서 만난 소리꾼 이자람의 판소리 <바탕>
12월 20일(토), 한옥 공연장에서 체험한 판소리의 현재, 한바탕의 시간 
2025-12-22 11:17:34최종 업데이트 : 2025-12-22 11:17:31 작성자 : 시민기자   안선영
수원화성 정조테마공연장에서 판소리 공연 <바탕>으로 한바탕 제대로 놀아본 시간이다.

수원화성 정조테마공연장에서 판소리 공연 <바탕>으로 한바탕 제대로 놀아본 시간이다.


주말 오후 4시, 수원화성 정조테마공연장에서 판소리 공연 <바탕>을 만났다. 연말의 오후, 공연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에는 이미 소리를 향한 기대가 실려 있었다. 제목처럼 '한바탕 논다'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 무대는 설명보다 체험으로 먼저 증명해 보였다.

공연은 완결된 서사를 전달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소리꾼과 고수, 그리고 관객이 함께 만들어가는 시간이라는 점! 객석에 앉아 있는 순간부터 관객은 이미 공연의 일부가 되었고, 그 사실은 무대가 시작되자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중요무형유산 제5호 판소리 <적벽가>와 <춘향가>의 이수자인 이자람 소리꾼의 무대.

중요무형유산 제5호 판소리 <적벽가>와 <춘향가>의 이수자인 소리꾼 이자람의 무대.


무대에 선 이는 소리꾼 이자람이다. 두번째 소리를 시작하기에 앞서 판소리가 어떤 장르인지부터 관객에게 말을 건넨다. 세계 어디에도 없는 장르이며, 소리꾼과 고수, 그리고 관객이 셋이서 함께 만드는 음악이라는 말은 설명이라기보다 선언에 가깝게 들렸다.

판소리를 '보는 공연'이 아니라 '함께 만드는 예술'로 인식하게 만드는 이 도입부는 이후 이어질 무대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관객에게 판소리가 작동하는 방식을 무대 위에서 직접 보여주었기에, 판소리 공연이 처음인 이들도 낯설지 않게 빠져들 수 있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추임새를 넣어봤을 만큼, 관객 모두가 자연스럽게 함께 즐기게 되는 분위기였다.

살면서 처음으로 추임새를 넣어봤을 만큼 관객 모두가 함께 즐기는 분위기였다. 판소리의 힘이란!


추임새를 요청하는 장면은 관객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다. 판소리의 본질을 복원하는 과정에 가깝다. 끄덕임, 숨소리, 웃음까지도 소리의 일부가 되며, 무대 위의 호흡은 객석의 반응을 따라 실시간으로 변한다.

관객은 점점 '듣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소리를 만드는 사람'이 되었다. 공연이 진행될수록 무대와 객석의 경계는 느슨해지고, 소리는 그 사이를 오가며 살아 움직인다. 이때 판소리는 과거의 예술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생성되는 현재형의 음악이 아닐까?

커튼콜 사진 촬영이 가능해, 오늘 무대를 완성한 소리꾼과 고수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었다.

커튼콜 사진 촬영이 가능해, 오늘 무대를 완성한 소리꾼과 고수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었다.


판소리 공연 시리즈 중 하나인 <바탕>은 판소리 다섯 바탕 가운데 춘향가와 심청가의 주요 대목을 엮어 보여준다. 춘향가는 동초제 계보로 이어진 출연가의 마지막 장면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이미 결말을 알고 있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소리는 그 장면을 다시 현재로 불러낸다. 익숙한 서사임에도 불구하고 귀를 기울이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심청가는 곽씨 부인의 죽음 이후 심봉사의 절망과 젖동냥 장면에서 출발해, 시간이 흐른 뒤 청이가 자라 아버지를 대신해 다시 동냥에 나서는 대목을 지나 장승상댁 부인으로 이어지는 서사의 결을 짚는다. 이자람은 방대한 이야기를 압축하거나 요약하기보다, 감정이 가장 깊게 흔들리는 지점을 정확히 선택해 무대 위에 올렸다. 이야기의 흐름은 자연스럽고, 감정의 결은 또렷하게 남는다.

소리를 시작하기 전과 후, 그리고 중간중간 설명이 필요한 지점마다 덧붙여지는 해설 덕분에 이해에 어려움은 없었다. 소리를 듣는 즐거움도 컸지만, 전래동화를 듣듯 옛 이야기를 다시 반복해 듣고 싶어지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설명과 소리가 어긋나지 않고 함께 흐르며, 관객을 이야기 속으로 차분히 끌어들였다.

티켓을 찾는 순간 안내문이 함께 제공되어, 공연의 의미와 프로그램을 미리 살펴볼 수 있었다.

안내문이 무료로 제공되어, 공연의 의미와 프로그램을 미리 살펴볼 수 있었다.

이자람은 소리 사이사이에 배움의 계보를 분명히 밝힌다. 첫 스승과 그 스승의 스승, 돌아가신 오정숙 선생님과 은희진 선생님의 이름이 자연스럽게 언급된다. 이 이름들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의 무대 위에서 다시 살아난다. 그녀는 자신이 무대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흐름을 흉내 내고 이어받고 있음을 숨기지 않는다. 소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보다, 이어받은 것을 성실하게 통과시키는 태도. 그 겸손은 소리의 결에도 고스란히 스며 있었다.

<바탕> 공연에서 설명과 소리는 분리되지 않는다. 왜 이 대목이 여기서 나오며, 왜 이 곡조가 선택되었는지에 대한 해설은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한 보조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소리를 더 깊게 듣게 만드는 장치로 작동한달까? 심청가에서 설렁제, 권마성재에 대한 언급은 판소리가 과거에도 수많은 음형과 성음을 실험해온 예술임을 보여준다. 갑자기 다른 장르가 튀어나오는 듯한 낯섦은 판소리의 개방성을 드러내며, 이 장르가 고정된 형식이 아님을 다시 확인시켰다.

공연의 후반부로 갈수록 이 무대가 왜 '한바탕'인지가 또렷해진다. 관객은 이미 이야기를 알고 있지만 다음을 궁금해한다. 다 아는 이야기인데도 모르게 되는 상태, 그 상태가 이어지기에 판소리는 8시간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연말을 맞아 정조테마공연장에도 트리의 빛이 밝아오며, 크리스마스와 연말에 가볍게 찾기 좋은 공간으로 느껴졌다.

연말을 맞아 정조테마공연장에도 트리의 빛이 밝아오며! 크리스마스와 연말에 가볍게 찾기 좋은 공간으로 느껴졌다.


올해 정조테마공연장의 다양한 시리즈 중에서 직접 만난 공연은 <웅산 X 난장>과 이자람의 <바탕>, 두 작품이었다. 장르도 결도 다른 무대였지만, 한옥 공연장이라는 공간이 만들어내는 듣는 맛은 분명하게 공통으로 남았다. 소리가 벽에 부딪히지 않고 자연스럽게 모였다가 퍼지는 구조 덕분에, 음악과 말이 또렷하게 전달되었고 관객은 소리의 결을 온전히 따라갈 수 있었다.

공연을 보고 나면 작품보다 공간이 먼저 기억에 남는 경우도 있는데, 정조테마공연장은 소리로 공간의 의미를 증명해 보였다. 전통과 현대가 무리 없이 만나는 이 무대에서, 올해의 두 공연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잘 듣는 경험'을 남겼다. 내년에는 또 어떤 프로그램이 이 공간을 채울지, 자연스럽게 다음 무대를 기대하게 된다.

[정조테마공연장 이용 안내]
○ 장소 :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817
○ 운영시간
화–금 : 13:00 – 17:00
토·일 : 10:00 – 17:00
월 : 정기휴무
● 주차 : 관람객 전용 주차장 없음(인근 공영주차장 이용)
○ 전화 : 0507-1444-3578
○ 홈페이지 : https://www.swcf.or.kr/?p=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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