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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립미술관 무료공연, 2025 윈터 페스티벌 ‘뮤지엄 라디오’ 체험기
한국근현대미술 전시의 여운 위에, 보이는 라디오로 만난 연말 풍경
2025-12-22 13:59:50최종 업데이트 : 2025-12-22 13:59:47 작성자 : 시민기자   안선영
한국근현대미술과 현대미술을 함께 조망할 수 있는 전시가 수원시립미술관에서 이어지고 있다.

한국근현대미술과 현대미술을 함께 조망할 수 있는 전시를 수원시립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다.


수원 행궁동 골목을 지나 수원시립미술관에 들어섰을 때, 이날의 방문 목적은 비교적 분명했다. 지난 10월, 이미 전시를 한 차례 관람했기에 이번에는 기록을 남기기보다 작품 그 자체에 집중해보고 싶었다. 수원시립미술관에서는 현재 한국근현대미술과 현대미술을 함께 조망할 수 있는 전시가 진행 중이다. 

나혜석, 박수근, 이중섭, 장욱진, 천경자 등 한국근현대미술의 흐름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고, 동시에 회화·사운드·문학이 교차하는 현대미술 전시도 이어진다. 한 시대에 머무르지 않고 시선을 자연스럽게 이동하게 만드는 구성이다. 수원전시회라는 말이 주는 편안함과 밀도가 함께 느껴지는 이유다.

연말을 맞아 수원시립미술관이 준비한 겨울 축제 프로그램, <뮤지엄 라디오>

연말을 맞아 수원시립미술관이 준비한 겨울 축제 프로그램! 무료 공연으로 만난 <뮤지엄 라디오>이다.


전시를 마치고 내려오는 길, 로비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2025 윈터 페스티벌 <뮤지엄 라디오> 안내문이 눈에 들어왔다. 무료공연이라는 설명과 함께 '보이는 라디오'라는 단어가 적혀 있다. 공연이라면 으레 소리가 먼저 들리기 마련인데, 로비는 놀라울 만큼 조용했다. 소리가 거의 없는 공연이라는 점이 오히려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냥 지나치기엔 아쉬운 분위기였다.

이날 진행된 <뮤지엄 라디오>는 수원시립미술관이 연말을 맞아 준비한 겨울 축제 프로그램이다. 재즈, 어쿠스틱 기타, DJ 공연까지 취향에 따라 골라 들을 수 있도록 구성되었고, 모든 무대는 무선 헤드폰을 착용한 채 감상하는 '사일런스 공연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관객은 공연에 집중해도 되고, 작품을 관람하며 헤드셋 속 노래를 배경 음악처럼 즐길 수도 있다. 미술관이라는 공간과 이런 방식이 차분하게 맞물리는 지점이다.

각자의 귀에 맞춰 소리를 고를 수 있어, 음악과의 거리를 스스로 정하는 나만의 라디오 같은 시간.

각자의 귀에 맞춰 소리를 고를 수 있어, 음악과의 거리를 스스로 정하는 나만의 라디오 같은 시간.


서서 공연을 지켜 보고 있노라니, 안내를 받아 헤드셋과 사탕을 건네받고 자리에 앉았다. 헤드셋을 착용하는 순간, 공간의 결이 달라졌다. 미술관 로비는 여전히 조용한데 귀 안에서는 음악과 목소리가 또렷하게 흐른다. 공연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었고, 시간대마다 분위기가 달랐다. 재즈 보컬과 피아노, 시티팝과 가요 디제잉, 어쿠스틱 기타 공연, 캐롤과 가요가 이어지며 연말의 공기를 완성했다. 머무르는 한 시간 동안 내 앞의 관객은 여러 번 바뀌었고, 공연과 전시, 이동과 머묾의 경계는 느슨하게 풀려 있었다.

인디 가수 안희수의 공연이 이어지는 동안, 여러 사연과 그에 어울리는 노래들이 차분히 이어졌다.

인디 가수 안희수의 공연이 이어지는 동안, 여러 사연과 그에 어울리는 노래들이 차분히 들려왔다.


내가 머문 시간인 오후 2시를 조금 넘긴 시각부터 3시 30분까지는 인디 가수 안희수의 공연이 이어졌다. 기타 한 대와 목소리만으로 채워진 무대는 겨울과 잘 어울렸다. 어떤 관객은 헤드셋을 끼고, 어떤 관객은 그냥 생으로 노래를 들었다. 헤드셋은 개인별로 볼륨 조절이 가능해 각자의 거리감으로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한편에서는 믹싱을 담당하는 스태프가 계속해서 소리를 조절하고 있었고, 이 조용한 공연이 결코 느슨하게 운영되는 자리가 아니라는 점이 전해졌다.

공연 중간에는 사연이 소개되었다. 사전에 신청을 받은 이야기들이 음악 사이로 흘러나오는 시간! 기억에 남는 사연은 9개월 아기를 키우고 있는 부부의 이야기이다. 서로 다른 곳에서 살던 두 사람이 수원대학교에서 만나 캠퍼스 커플이 되었고, 아이를 낳아 지금은 수원에서 살고 있다는 이야기. 남편이 9개월 동안 매일 칼퇴근해준 것이 고맙다는 사연에, 나 역시 오래전의 시간을 떠올리게 되었다. 지금은 아이가 12살이 되었지만, 9개월일 때가 여전히 생생하다. 현장에 있던 그 가족이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장면까지 이어지자, 보이는 라디오는 관객과 무대를 잇는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관이라는 공간 안에서 전시와 공연이 한자리에서 겹쳐지며 완성된 이색적인 경험이다.

미술관이라는 공간 안에서 '전시'와 '공연'이 한자리에서 겹쳐지며 완성된 이색적인 경험!


이어 소개된 사연은 망포역 인근 피아노 학원에서 올해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50대 관객의 이야기이다. 늦깍이 학생을 가르치느라 힘들 선생님에게 전하고 싶었던 감사 인사를 사연으로 남겼다고. 이에 안희수는 자신도 음악을 서른 살에 시작해 처음에는 걱정이 많았지만, 어느덧 7년이 지났다고 털어놓았다. 이야기가 노래로 이어지면서, 무대는 점점 사람 냄새가 나는 공간이 되었다.

공연이 끝난 뒤, 한편에서 팬과 인사를 나누는 모습까지도 이 겨울 축제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화려한 장치 없이도 충분히 따뜻한 시간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순간이다. 전시를 보러 왔다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의 무료공연과 마주한 하루였다.

전시를 따라 걷다 보면 숨은 그림찾기처럼 하나씩 발견하게 되는 머물기 좋은 공간들이 곳곳에 있다.

전시장을 따라 걷다 보면 숨은 그림찾기처럼 하나씩 발견하게 되는 머물기 좋은 공간들이 곳곳에 있다.


수원시립미술관은 전시 외에도 머물기 좋은 공간이 많은 곳이다. 1층 카페는 입장권 없이도 이용할 수 있어 숨은 명소처럼 자주 찾게 된다. 커피 맛과 분위기 모두 문화생활을 하는 듯이 근사해서 일반 카페처럼 이용하기 좋다. 1층 계단과 로비에 있는 전시 공간은 유료 전시를 본 뒤 잠시 쉬어가기 좋은 장소이고, 2층 무인도서관 역시 입장권 없이 이용 가능해 조용히 책을 읽고 싶은 날에 추천할 만하다.

연말에서 새해로 이어지는 시간 속에 특별한 기억이 하나 더해졌고, 문화생활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었다.

연말에서 새해로 이어지는 시간 속에 특별한 기억이 하나 더해졌고, 문화생활이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었다.


미술관은 작품을 감상하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이렇게 일상의 속도를 잠시 늦춰주는 장소이기도 하다. 각자의 헤드셋을 통해 흘러나오는 음악과 사연은 전시의 여운 위에 또 하나의 기억을 얹어주었다. 수원시립미술관의 겨울은 그렇게 소리 없이, 그러나 충분히 따뜻하게 깊어지고 있었다.

개관 10주년을 맞은 올해, 수원시립미술관은 전시와 프로그램 모두에서 한층 넓어진 결을 보여주었다. 전시를 보고, 음악을 듣고, 머물며 쉬어갈 수 있었던 시간에 자연스레 감사한 마음이 남는다. 다가오는 11주년의 수원시립미술관 역시 일상의 틈에 조용한 설렘을 더해주기를 기대해본다.

[수원시립미술관 이용 안내]
○ 주소 :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833 (행궁동)
○ 운영시간 : 화–일 10:00–18:00 (입장 마감 17:00)
○ 휴관일 : 매주 월요일, 1월 1일
● 관람료 : 전시별 상이 (기획전 유료 / 일부 공간 및 프로그램 무료)
○ 주차장 : 미술관 전용 주차장 이용 가능 (유료)
○ 홈페이지 : https://suma.suwon.go.kr
○ 전화번호 : 031-5191-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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