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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만나는 시민배심법정』 군중 속에서 생각하는 법을 배우다
시민과 함께한 영화 <12명의 성난 사람들> 속 배심의 시간
2025-12-24 10:46:46최종 업데이트 : 2025-12-24 10:46:44 작성자 : 시민기자   허지운

수원시미디어센터

수원시미디어센터 외관(수원시 팔달구 창룡대로 64)


수원시가 마련한『영화로 만나는 시민배심법정』 행사가 지난 23일 오후 2시 수원시미디어센터(수원시 팔달구 창룡대로 64)에서 열렸다.『영화로 만나는 시민배심법정』은 영화를 매개로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민주주의의 당사자가 되어보는 경험을 제안하는 자리였다. 영화관의 불이 꺼지고 흑백 화면이 켜졌을 때, 이것이 단순한 '고전 영화 감상'의 시간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영화로 만나는 시민배심법정 영화 상영관

영화 <12명의 성난 사람들> 상영 전『영화로 만나는 시민배심법정』행사 진행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상영된 작품은 1957년 제작된 시드니 루멧 감독의 <12명의 성난 사람들>. 살인 혐의로 기소된 한 소년의 생명이 걸린 재판 이후, 12명의 배심원이 평결을 위해 한 공간에 모이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첫 투표에서 '유죄'가 압도적으로 우세한 상황 속에서, 단 한 명의 배심원 8번만이 "합리적 의심이 남아 있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택한다. 그의 태도는 강변도, 설득도 아닌 '잠시 멈춰 다시 생각해 보자'는 제안에 가까웠다.

 

영화는 화려한 법정 장면 대신, 밀폐된 배심원실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인물들의 표정과 말, 침묵에 집중한다. 선풍기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무더운 방 안에서 배심원들은 점점 예민해지고, 논쟁은 감정과 기억, 개인적 상처로 번져간다. 증인의 말 한마디, 범행 도구의 형태, 소년의 알리바이를 다시 살펴보는 과정은 단순한 추리가 아니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다가왔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배심원들 중 일부가 자신의 경험과 분노를 사건에 투영하며 판단을 고집하는 장면이었다. 영화는 그 모습을 비난하지도, 미화하지도 않는다. 다만 토론이 이어질수록 감정과 사실이 분리되고, 확신이 흔들리는 과정을 차분히 따라간다. 만장일치의 '무죄' 평결이 내려지는 순간보다 더 오래 남은 것은, 그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지극히 어렵고 힘든 시간이었다.


영화 관람 후 진행된 시민들과의 영화 이야기

영화 관람 후 진행된 시민들과의 영화 이야기

 

영화 상영 후 이어진 시민 토크는 스크린 속 이야기를 현실로 끌어왔다. 김소연 시민소통연구자의 진행으로 시작된 대화는 "이 영화가 왜 지금 우리에게도 유효한가"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확장됐다. 참석자들은 70년 가까이 지난 영화가 오늘날 한국 사회의 갈등 구조, 다수의 압력, 소수 의견에 대한 불편함을 그대로 비추고 있다는 점에 고개를 끄덕였다.

 

패널로 참석한 김성호 영화평론가는 <12명의 성난 사람들>이 당시 미국 사회의 평균적인 시민상을 배심원 12명에게 고르게 배치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흐르는 땀, 쏟아지는 폭우, 점점 좁아 보이는 공간은 배심원들의 심리적 압박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며, 극단적인 편견이 등장했을 때 조차 집단이 그 발언을 거부하고 등을 돌리는 장면에서 "인간 사회에 남아 있는 이성의 힘"을 읽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해설을 듣고 나니 영화 속 정적인 장면들이 더욱 선명하게 머릿속에 떠올랐다.


나는 어떤 배심원일까

'나는 영화 속 어떤 배심원과 닮았을까?' 라는 질문에 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어진 참여형 질문은 관객을 수동적인 감상자에서 토론의 주체로 끌어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배심원은 누구인가', '나는 어떤 배심원과 닮았는가'라는 질문에 시민들은 각자의 선택과 이유를 나눴다. 편견 없는 문제 제기를 상징하는 배심원 8번을 선택한 이들이 많았지만, 소수 의견에 힘을 보탠 배심원 9번이나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고 판단을 바꾼 배심원 4번에 자신을 대입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흥미로웠던 점은 일부 시민이 끝까지 반대 의견을 고수했던 배심원 3번이나 태도가 가벼워 보였던 배심원 12번을 언급하며, 사회에는 불편한 존재와 다른 속도의 사람이 함께 있어야 토론이 성립된다는 관점을 제시한 부분이었다. '옳은 선택'보다 '다양한 존재가 남아 있는 공론장'의 중요성이 자연스럽게 공유됐다.


수원시 시민배심법정 소개

수원시 시민배심법정 소개 영상

 

토론은 수원시의 시민참여 제도인 시민배심법정 소개로 이어졌다. 김은정 소통기획팀장은 시민배심법정이 유·무죄를 판단하는 제도가 아니라, 시민의 상식과 토론을 통해 정책과 사회적 갈등의 합의점을 모색하는 참여형 제도라고 설명했다. 한 공간에 모여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의견을 나누고, 끝까지 토론을 이어간다는 점에서 영화 속 배심원제와 닮아 있었다. 다만 만장일치가 어려울 경우 일정 수준의 다수결을 인정하고, 판사 출신 판정관이 중립적으로 진행을 돕는다는 점은 현실 제도의 특징으로 소개됐다.

 

행사에 참여한 한 시민은 "영화를 보면서 배심원이란 역할이 단순히 의견을 내는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듣고 스스로를 의심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며 "군중의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판단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했다"고 말했다.


영화티켓

<12명의 성난 사람들> 영화 티켓


『영화로 만나는 시민배심법정』은 민주주의를 설명하기보다 느끼게 한 시간이었다. 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은 누군가의 말 앞에서 쉽게 판단을 내리기보다 잠시 멈춰 서는 일, 확신을 붙잡기보다 한 번 더 의심해보는 용기, 그리고 불편함 속에서도 끝까지 토론의 자리를 지키는 태도가 민주주의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사실을 조용히 일깨워줬다. 상영관의 불이 켜지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발걸음 속에서도 질문은 계속 남아 있었다. 언젠가 다시 마주하게 될 판단의 순간 앞에서 나는 어떤 시민의 모습으로 서 있을지에 대한 물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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