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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 편으로 미리 만난 시민배심원법정
'12명의 성난 사람들'이 던진 질문, 우리는 어떤 시민이 되어야 할까
2025-12-24 14:25:00최종 업데이트 : 2025-12-24 14:24:59 작성자 : 시민기자   심성희
수원시미디어센터에서 진행된 이번행사. 진행순서와 영화티켓

수원시미디어센터에서 진행된 이번행사. 진행순서와 영화티켓

지난 12월 23일 화요일 오후 2시, 수원시미디어센터에서 <영화로 만나는 시민배심원법정>행사가 열렸다. 이번 행사는 사전 새빛톡톡 신청 접수를 통해 시민들의 참여로 진행되었으며, 향후 수원시가 본격적으로 도입을 준비 중인 시민배심법정을 앞두고 마련된 의미 있는 자리였다. 

필자 역시 지난 8월, 시민예비배심원 공개추첨에 지원했지만 아쉽게 선정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이번 행사는 '배심원'이라는 역할을 영화라는 매개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시민으로서의 책임과 태도를 되짚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미디어센터에 마련된 상영영화 포토존

미디어센터에 마련된 상영영화 포토존

이번 행사에서 1957년작 법정 드라마 <12명의 성난 사람들>을 함께 관람했다. 살인 혐의로 기소된 한 소년의 유무죄를 두고, 이름조차 공개되지 않는 12명의 배심원이 단 하나의 방에서 토론을 벌이는 이야기다. 

빠른 전개도, 자극적인 장면도 없는 흑백영화. 처음에는 솔직히 다소 지루했고 졸음이 몰려오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가 중반을 넘어가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유죄가 당연하다'는 다수의 의견 속에서, 단 한 명의 배심원이 "합리적 의심이 있다"고 말하며 던진 질문 하나가 토론의 방향을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이후 영화는 사건 자체보다도 사람들의 편견, 감정, 경험, 그리고 판단 방식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과연 우리는 얼마나 공정하게 판단하고 있는지, 다수의 의견에 휩쓸리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질문하게 된다. 
영화 관람 후 휴식시간, 참여자들은 12명의 배심원 중 인상 깊은 배심원 2명을 선택했다.

영화 관람 후 휴식시간, 참여자들은 12명의 배심원 중 인상 깊은 배심원 2명을 선택했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대사는 배심원 8번의 말이다. 
"누가 당신에게 사람 목숨을 가지고 장난칠 권리를 줬소."
이 대사는 법정 안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시민의 판단, 시민의 공감, 시민의 참여 모두에게 향하는 질문이다. 

영화 관람 후 약 40분간 관객들과 함께하는 토론 시간이 이어졌다. 
이날 진행은 김소연 시민소통 연구자가 맡았고, 패널로는 김성호 영화평론가, 사회는 김은정 소통기획팀장이 함께했다. 

토론 주제는 △영화 한줄평 △가장 인상 깊었던 배심원 △우리는 어떤 배심원(시민)이 되어야 하는가(자질과 태도)였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QR코드를 스캔하여 의견 작성, 혹은 투표를 실시간으로 진행해 결과를 보며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QR코드를 스캔하여 의견 작성, 혹은 투표를 실시간으로 진행해 결과를 보며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영화 관람 후, 함께 의견을 나누는 시간

영화 관람 후, 함께 의견을 나누는 시간


영화 제목과 달리, 12명의 배심원 모두가 화가 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들은 너무나 현실적인 시민의 얼굴을 하고 있다. 특히 12번 배심원은 테니스공, 탁구공처럼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며 분위기를 살핀다. 강한 의견보다는 다수의 눈치를 보며 표를 바꾸는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는 인물이다. 

김성호 영화평론가는 "이 영화는 법정 영화라기보다 인간에 대한 영화"라며, "배심원 각각의 성격과 사회적 지위는 감독이 의도적으로 배치한 장치이며, 판단이 얼마나 개인의 삶과 경험에 영향을 받는지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영화 속 12명의 배심원은 건축가, 회사원, 노동자, 노인, 이민자 등 다양한 계층을 대표한다. 성급한 결론을 내리는 사람, 개인적 분노를 투사하는 사람, 타인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는 사람도 있다. 반면 끝까지 질문을 던지고, 증거를 다시 살피며, 소수 의견을 존중하려는 배심원도 등장한다. 감독은 이를 통해 민주주의는 제도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임을 말하고 있는 듯했다. 
참여자들이 영화 한줄평 작성한 내용이 대형 스크린에 실시간으로 나타났다.

참여자들이 영화 한줄평 작성한 내용이 대형 스크린에 실시간으로 나타났다.


수원시 첫 시민배심법정, '과정'이 중요하다
이번 행사는 수원에서 처음으로 본격 추진되는 시민배심법정을 앞두고 마련된 사전 공론의 장이기도 했다. 실제 예비배심원으로 선정된 시민도 행사에 참여해 다양한 의견을 나눴다. 

김은정 소통기획팀장은 "시민배심법정은 결과보다도 과정이 중요하다"며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시민들이 충분히 듣고, 질문하고, 숙고하는 경험 자체가 민주주의의 실천"이라고 설명했다.

기획 담당자의 이야기처럼, 영화 속 배심원 토론 과정은 시민배심법정이 지향하는 모습과 맞닿아 있었다. 
빠른 결론보다 충분한 숙의, 감정보다 사실, 다수결보다 책임 있는 판단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다. 

시민배심법정을 앞두고, 왜 영화 <12명의 성난 사람들>이었을까? 수원시는 본격적인 시민배심법정 운영을 앞두고, 시민들이 제도를 어렵지 않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영화라는 매개를 선택했다. 그 중심에 놓인 작품이 바로 1957년작 흑백영화 <12명의 성난 사람들>이다. 왜 수많은 영화 중 이 작품이었을까. 그리고 이 영화를 통해 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행사 기획을 담당한 수원시 관련 부서 담당자에게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은정 소통기획팀장이 실제 시민배심법정은 어떻게 운영되는지 설명하고 있다.

김은정 소통기획팀장이 실제 시민배심법정은 어떻게 운영되는지 설명하고 있다.

Q. 시민배심법정을 소개하는 첫 프로그램으로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시민배심법정은 '누가 맞고 틀리다'를 빠르게 결정하는 제도가 아닙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시민들이 충분히 토론하고, 숙고하며 판단하는 과정이 핵심이죠.
<12명의 성난 사람들>은 그 과정을 가장 밀도 있게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법률 지식이 없어도, 시민 누구나 배심원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가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습니다. 

Q. 영화가 1957년 작품이고, 흑백영화라는 점이 부담이 되지는 않았나요?
오히려 그 점이 장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영화는 화려한 장치나 자극적인 연출 없이, 오직 대화와 논리, 태도만으로 이야기를 끌고 갑니다. 시민배심법정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현대적인 기술이나 제도보다 중요한 건,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판단 방식이거든요. 시대를 초월해 지금 봐도 유효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Q. 이 영화를 통해 시민들에게 꼭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판단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메시지입니다.
영화 속 배심원들은 이름도 없이, 단지 번호로 불립니다. 하지만 그들의 선택은 한 사람의 생명을 좌우할 만큼 무겁습니다. 시민배심법정에 참여하는 시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다수의 의견에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질문하며 판단해야 한다는 점을 시민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Q. 시민배심법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시민의 태도는 무엇인가요?
'정답을 맞히려는 태도'보다 '과정을 존중하는 태도'입니다.
영화 속 배심원 8번처럼, 처음부터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중요한 건 끝까지 듣고, 질문하고, 자신의 생각을 점검하는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시민배심법정은 참여 그 자체가 민주주의의 연습이기 때문에 완벽한 결론보다 성실한 토론이 더 중요합니다. 

Q. 이번 '영화로 만나는 시민배심원법정' 행사를 마친 소감은 어떠신가요?
시민들의 반응을 보며 확신이 들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나눈 토론에서, 시민들이 배심원의 입장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나라면 어땠을까"를 고민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시민배심법정은 제도를 도입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런 공론의 경험이 쌓일 때, 비로소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영관을 꽉 채워 앉은 참여 시민들의 모습

상영관을 꽉 채워 앉은 참여 시민들의 모습


토론을 들으며 필자 역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한때 새빛톡톡에서 시민제안 글을 볼 때, 마일리지에 눈이 멀어 댓글에 기계적으로 '공감합니다'라고 남기던 시기가 있었다. 깊이 읽지도, 충분히 고민하지도 않은 채 말이다. 

영화 속 배심원들처럼, 시민의 판단 또한 가볍게 소비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여는 숫자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이며, 공감 역시 책임을 동반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어떤 시민배심원이 되어야 할까
<12명의 성난 사람들>은 묻는다. 당신은 다수에 편승하는 사람인가, 질문을 던지는 사람인가.편견에 사로잡힌 시민인가, 타인의 삶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시민인가.

영화는 말한다. 판단에는 책임이 따른다고. 시민배심법정은 단순한 참여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라는 사실을 이 영화와 이번 행사는 분명히 보여주었다. 

영화가 끝나도 질문은 남는다. 그리고 그 질문은 이제, 수원시 시민배심법정을 통해 현실에서 이어질 것이다. 판단하는 시민이 아닌, 숙의하는 시민으로 나아가기 위한 첫걸음. 영화로 만난 시민배심원법정은 그 출발선에 서 있다. 이제 질문은 스크린 밖, 우리 각자의 일상에서 이어져야 한다. 

수원시 시민배심법정은 가장 평범한 사람들의 가장 특별한 결정이다.

수원시 시민배심법정은 가장 평범한 사람들의 가장 특별한 결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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