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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을 사유하다, 다산을 만나다
일월수목원 기획전시 ‘정원가, 다산’_ 자연을 읽고 마음을 가꾸는 조선의 정원 철학
2026-01-19 11:01:02최종 업데이트 : 2026-01-19 11:00:56 작성자 : 시민기자 김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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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월수목원 1층 기획전시 '정원가, 다산' 일월수목원에서 열리고 있는 기획전시 「정원가, 다산」은 조선 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을 '사상가'가 아닌 '정원가'의 시선으로 조명한다. 관람객은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정원이 단순한 조경 공간이 아니라 삶을 정돈하고 마음을 가꾸는 장소였음을 알게 된다. 다산이 서울 명례방에 거주하던 시절 조성한 죽란시사(竹欄詩社) 모임은 번잡한 한양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한 최소한의 피난처였다. 전시 설명에 따르면 다산에게 정원은 자연을 소유하는 공간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숨 쉬며 자신을 돌아보는 공간이었다. 선비로서의 품위를 지키고, 삶의 균형을 회복하기 위한 실천의 장이 바로 정원이었다는 점이 인상 깊다. 전시는 조선시대 최초의 정원 모임으로 알려진 죽란시사를 소개하며, 정원이 개인의 은거 공간을 넘어 교류와 풍류의 장소였음을 전한다. 꽃이 피는 계절마다 모여 술을 나누고, 시를 짓고, 자연의 변화를 섬세하게 감각하던 선비들의 모습은 오늘날의 '정원 문화'와도 맞닿아 있다. ![]() 빈벽에 드리운 국화 그림자 _ 국영시서
이번 전시에서 가장 인상적인 공간은 다산 정약용의 독특한 식물 감상법을 시각적으로 풀어낸 장면이다. 특히 '국영시서(菊影詩序)'를 바탕으로 구성된 전시는 다산이 국화를 단순한 관상용 식물이 아닌 사유의 대상으로 대했음을 보여준다. 다산은 밤이 되면 촛불을 켜고 국화 화분을 바라보며, 실물보다 빈 벽에 드리운 국화의 그림자를 감상했다. 사물의 본질을 직접적인 형태가 아닌 그림자와 여백을 통해 읽어내는 방식이었다.
국영시서 설명 전시 공간에 마련된 도식과 설치물은 이러한 개념을 관람객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촛불, 국화 화분, 벽면에 맺히는 그림자의 관계를 따라가다 보면, 3차원의 세계가 2차원의 이미지로 전환되는 순간을 체험하게 된다. 이는 자연을 단순히 '보는 것'에서 나아가, 관계 맺고 해석하는 행위임을 일깨운다. 다산의 정원은 그렇게 자연을 감상하는 법이자, 세상을 읽는 하나의 방법이 된다. 그림 속 식물과 정원 속 식물 _ 차경기법 이와 함께 전시는 다산의 감상 태도를 차경기법(借景技法)이라는 정원 개념으로 확장해 설명한다. 차경은 정원 안에 있는 것만이 아니라, 정원 밖의 풍경까지 끌어들여 하나의 장면으로 완성하는 기법이다. 다산에게 차경은 시각적 장치에 머무르지 않았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소유하지 않고, 빌려와 감상하며 의미를 더하는 태도였다. 국화의 실체보다 그림자를 바라보고, 가까운 화분 너머의 공간까지 사유의 대상으로 삼았던 그의 시선은 차경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 차경기법 설명 조선의 정원에서 오늘의 수목원으로 「정원가, 다산」전은 단순히 과거를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일월수목원이라는 현대적 공간 속에서 다산의 정원 철학을 다시 불러내며, 오늘날 정원의 의미를 확장한다. 다산이 자연을 관찰하며 마음을 닦았듯, 수목원 역시 쉼과 사유의 장소가 될 수 있음을 전시는 조용히 말한다.
정원에서 꽃을 감상하고, 연못가에서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자연을 매개로 관계를 맺던 조선의 선비 문화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빠르게 소비되는 정보와 자극 속에서, 다산의 정원은 '천천히 바라보는 법'을 다시 가르쳐 준다. 자연을 이용하거나 장식하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인식했던 그의 태도는 기후 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다. 기획전시실 내부 일월수목원 기획전시 「정원가, 다산」은 정약용을 새로운 얼굴로 만나는 자리이자, 정원이 품을 수 있는 깊이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전시다. 자연을 읽고 마음을 가꾸는 일, 그 오래된 질문이 수목원 한켠에서 오늘도 조용히 이어지고 있다. 전시장을 나오며 정원이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됐다. 그동안 수목원은 '보기 좋은 공간' 혹은 '산책하기 좋은 장소'로 인식해 왔지만, 「정원가, 다산」을 통해 정원은 삶을 다스리는 태도이자 사유의 방식일 수 있음을 느꼈다. 국화의 실체보다 그림자를 바라보며 의미를 찾았던 다산의 시선은, 빠르게 답을 찾으려는 오늘의 일상과는 정반대의 속도였다. 일월수목원의 이 전시는 자연을 감상하는 법을 넘어, 자연 앞에 서는 우리의 자세를 묻는다. 잠시 멈춰 서서 바라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일. 다산의 정원은 그렇게 지금의 우리에게도 조용한 질문을 건네고 있었다. <일월수목원> ○홈페이지: https://www.suwon.go.kr/web/iwarbor/index.do ○위치: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일월로 61 (천천동) ○운영 시간: 09:30 ~ 17:30 (월요일 휴관) ○입장료: 성인(19세 이상) 4,000원, 청소년(13∼18세) 2,500원, 어린이(7∼12세) 1,500원 수원시민 할인 요금 적용(성인 2,0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1,000원) ○전시 온실 및 정원 공간도 상시 관람 가능 ○수목원 내 여러 전시·정원 프로그램들이 계절별로 운영됨 ![]() 연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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