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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두드려 만든 양철 양동이, 할머니의 평생 보물
수원화성박물관 '성안 사람들의 살림살이 이야기'... 행궁동 주민들의 삶이 전시가 되다
2026-01-30 17:34:21최종 업데이트 : 2026-01-30 17:34:18 작성자 : 시민기자 강남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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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전경 및 입구 수원화성박물관 열린문화공간 후소에서 특별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2025년 10월 30일부터 올해 4월 12일까지 6개월 동안《성안 사람들의 살림살이 이야기》를 볼 수 있다. 왕이나 양반의 물건이 아니라 수원화성 안 행궁동에서 살았던 평범한 주민들이 실제로 쓰던 물건들을 모았다. 어머니의 손길이 닿은 식생활 유물 전시장에 들어서자, 식생활 코너에는 남수동에 살던 이병희 할머니(1937년생)가 쓰던 밥그릇과 냄비가 있다. 이 할머니는 23살에 군인과 결혼했다. 시동생 6명과 자녀 6명까지 합쳐 열 명이 넘는 대가족을 혼자 돌봐야 했다. 빛바랜 사기그릇과 법랑 냄비에는 그 시절 고단했던 살림살이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매일 큰 냄비에 밥을 짓고, 김치를 담그고, 반찬을 만들었을 할머니의 모습이 그려진다. 주생활 코너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낡은 양철 양동이다. 찌그러지고 녹슬었지만 이 양동이에는 특별한 이야기가 있다. 장안동에 살던 박복순 할머니(1929년생)는 17살에 시집갔다. 남편은 평생 말이 없던 사람이었다. 할머니가 남편에게 평생 받은 선물은 딱 하나, 이 양철 양동이였다. 남편이 직접 양철을 두드려 만들어준 것이다. 투박한 손잡이, 울퉁불퉁한 표면이지만 할머니에게는 세상 어떤 물건보다 소중한 보물이었다. 혼수품 1호, 낡은 싱어 재봉틀 다음 공간으로 이동하니 가장 먼저 낡은 재봉틀이 눈에 들어왔다. 싱어(SINGER)라는 글자가 선명하다. 검은색 페인트는 여기저기 벗겨졌고 바퀴는 녹슬었다. 하지만 1960~70년대만 해도 이 재봉틀은 결혼할 때 꼭 가져가야 하는 혼수품 1호였다. 옷을 사 입기보다 직접 만들어 입던 시절, 어머니들은 밤늦게까지 이 재봉틀 앞에 앉아 가족 옷을 만들었다. 재봉틀 옆에는 다리미와 인두, 다듬잇방망이가 놓여 있다. 전기다리미가 아니라 숯불을 넣어 쓰던 다리미다. 다듬잇방망이는 옷감을 두드려서 부드럽게 만드는 도구다. 가족을 위해 밤늦게까지 일했던 어머니들의 손길이 느껴진다. 생계를 책임졌던 도구, 재봉틀과 학예사 전시를 기획한 조성우 학예사는 "이 재봉틀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한 가정의 생계를 책임졌던 물건"이라고 설명했다. 기성복이 귀하던 시절, 재봉틀 하나로 가족 옷을 모두 만들어야 했다. 학교 교복부터 아버지 작업복까지 어머니의 손길을 거쳐 탄생했다. 이 전시가 특별한 이유는 물건마다 주인의 이름과 이야기가 있다는 점이다. 박물관에 있는 유물들은 대부분 누가 썼는지 모른다. 하지만 여기 있는 물건들은 다르다. 행궁동에 살던 주민들이 직접 박물관에 기증한 것들이다. 지역 매체 '골목 잡지 사이다'가 주민들로부터 받은 물건들이 수원박물관으로 옮겨져 이번 전시가 가능했다. 기획 의도를 설명하는 조성우 학예사 조성우 학예사는 "화려한 성곽 뒤에 가려져 있던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왕실 유물이나 비싼 문화재는 없지만, 진짜 사람들의 진짜 삶이 담긴 물건들이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가족을 위해 땀 흘렸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낯선 물건들이다. 재봉틀을 처음 보는 10대 다듬이질이 뭔지 모르는 20대도 많다. 하지만 그래서 더 봐야 한다. 불과 한두 세대 전 사람들의 삶이 지금과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가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그분들이 어떻게 우리를 키워냈는지 이해할 수 있다. 평범한 백성들의 일상이 담긴 전시실 전경 수원화성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화려한 성곽이 유명하다. 하지만 성곽만 중요한 게 아니다. 그 안에서 매일 밥 짓고, 옷 만들고, 아이 키우며 살았던 평범한 사람들의 삶도 중요하다. 왕이 만든 계획도시였지만, 실제로는 평범한 백성들이 땀 흘려 일하며 살던 마을이었다. 1970년대 주택을 개조한 전시 공간 '후소' 전시장이 있는 '열린문화공간 후소'는 1970년대 주택을 고쳐서 만든 곳이다. 2층에는 미술사학자 오주석 선생이 쓰던 책상과 책, 안경이 그대로 보관돼 있다. '후소'는 오주석 선생의 호다. '그림을 그리려면 흰 바탕이 먼저 있어야 한다'라는 뜻이다. 화려한 꾸밈보다 본질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1층에 전시된 투박한 물건들과 잘 어울린다. 화려하지 않아도 된다. 비싸지 않아도 된다.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물건이 모여서 역사가 된다. 남편이 두드려 만든 양철 양동이, 대가족 밥을 짓던 큰 냄비, 밤새 옷 만들던 재봉틀. 이런 물건들이 바로 우리의 진짜 역사다. 수원화성 성안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후소에서 기다리고 있다. 《성안 사람들의 살림살이 이야기》 전시 홍보 포스터 《성안 사람들의 살림살이 이야기》 ○ 기간 : 2025년 10월 30일(목) ~ 2026년 4월 12일(일) 09:00~18:00(17:30까지 입장) ○ 휴무 : 매주 월요일(공휴일 또는 연휴인 경우 그 다음날) ○ 장소 : 열린문화공간 후소 1층 전시실 (수원시 팔달구 행궁로 34-2, 남창동) ○ 요금 : 무료 ○ 예약 : 자유 관람 ○ 해설 : 사전 문의 ○ 내용 : 수원화성 성안 행궁동 주민들이 사용했던 재봉틀, 다리미, 밥그릇, 양철 양동이 등 생활용품을 의식주로 나눠 전시 ○ 대상 : 전체 관람 ○ 주최 주관 : 수원화성박물관 열린문화공간 후소 ○ 주차 : 화성행궁 주차장, 남창동 임시주차장 ○ 누리집 : https://hsmuseum.suwon.go.kr ○ 문의 : 031-228-3022~3 ![]() 연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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