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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얗게 빛나고 검게 그을린 빛의 연대기
나와 세상을 다시 이어주는 검고 하얀 물결, 수원시립미술관 소장품전
2026-02-13 11:50:27최종 업데이트 : 2026-02-13 11:50:26 작성자 : 시민기자 강남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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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립미술관 1전시실 입구 수원시립미술관 1전시실 입구에 들어서면 고요하면서도 팽팽한 긴장감이 온몸을 감싼다. 전시장 내부는 화려한 색채가 사라진 자리에 오직 흑과 백 대비만이 존재한다. 필자가 방문한 시간은 전시 첫날 오전이라 관람객이 거의 없어 전시장 내부에는 묘한 정적이 흘렀다. 덕분에 인파에 방해받지 않고 작품 하나하나가 건네는 묵직한 대화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었다. 이번 소장품전 《블랑 블랙 파노라마》는 단순히 미술관 소장품을 꺼내 보여주는 행사를 넘어선다. 갈등이 일상이 된 우리 사회를 향해 '우리는 결국 연결되어 있다'는 메시지를 거대한 물결처럼 펼쳐 보인다. 전시 이름에는 흥미로운 배경이 담겨 있다. 흰색을 뜻하는 블랑과 검은색을 뜻하는 블랙은 정반대 색처럼 보이지만, 어원상 '빛나다' 혹은 '타다'라는 같은 뿌리에서 시작되었다는 해석이 따른다. 하얗게 타오르는 불꽃과 그 자리에 남은 검은 재가 결국 떼려야 뗄 수 없는 하나의 과정인 셈이다. 세상을 흑과 백으로만 나누어 보던 딱딱한 시선이 작품들 사이를 걸으며 조금씩 부드러워지는 경험을 선사한다. 전시실 입구에서 바라본 흑과 백의 고요한 파노라마 전경 전시장 공간 연출은 관람객 발걸음을 천천히 늦추게 만든다. 조명은 오직 작품이 필요한 곳에만 최소한으로 쓰였고, 이 덕분에 흰 벽면과 검은 작품들이 만드는 조화가 더욱 돋보인다. 전시장 전체는 마치 한 폭의 긴 그림을 보듯 연결되어 있다. 작품 사이 미묘한 여백을 따라 걷다 보면, 작품마다 곁들여진 상세한 설명문이 관람객을 반긴다. 이 설명문들은 작가가 사용한 재료나 제작 과정을 친절하게 일러주어, 나만의 감상에 깊이를 더하는 훌륭한 길잡이가 된다. 설명 속 내용을 눈앞 작품과 대조하며 감상하다 보면 기획자 의도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지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숯의 물성과 생명력을 담아낸 이배 작가의 작품 작품들 속에는 작가들이 쏟아부은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것은 이배 작가 작업이다. 작가는 나무가 불을 통과해 숯이 되는 성질을 예술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숯 조각을 캔버스에 붙이고 수없이 닦아낸 화면은 분명 검은색인데도 거울처럼 빛을 반사한다. 다 타버려 쓸모없어 보이는 재료에서 이토록 강인한 생명력을 끌어올린 작가 집념이 캔버스 너머로 전해진다. 흑연과 그을음이 층층이 쌓여 만들어낸 입체적인 흑색 화면 김수철 작가 〈신비로운 직관〉 앞에서도 발길이 멈춘다. 작가는 흑연과 그을음, 돌가루를 여러 겹 쌓아 깊은 흑색 화면을 만든 뒤 이를 다시 긁고 연마했다. 설명문을 읽으며 작품을 보니 매끈한 평면이 아니라 빛을 흡수하고 반사하는 입체적인 지형이 눈에 들어온다. 존재가 생성되는 깨달음의 시간을 함께 통과하길 바란다는 작가 목소리가 묵직하게 다가온다. 종이의 물성과 기억의 흔적을 결합한 최필규 작가의 작품 최필규 작가 〈흔(痕): 시간을 담다 15-9〉 역시 설명문을 통해 진가를 발견하게 되는 작품이다. 작가는 종이를 구기거나 찢고 나열하는 행위를 통해 시간 흔적을 축적했다. 어린 시절 할머니 댁에서 본 성줏대와 창호지 기억을 종이 물성과 결합했다는 설명을 읽고 나면, 평면적인 화면은 어느새 기억과 시간 흔적이 머무는 입체적인 공간으로 변한다. 신문지의 글자를 지워내며 수행의 시간을 기록한 최병소 작가의 작품 최병소 작가 작품 앞에서는 절로 숨소리가 조심스러워진다. 작가는 신문지 위에 볼펜과 연필로 수없이 선을 그어 글씨를 지워나갔다. 종이가 닳아 구멍이 날 정도로 반복된 이 흔적은 정보가 넘쳐나는 피로한 세상 속에서 예술가가 온몸으로 견뎌낸 끈기 기록이다. 글자가 모두 사라진 자리에는 오직 검은 선 묵직한 존재감만이 남는다. 깨진 도자기 파편을 이어 붙여 상처를 치유로 바꾼 이수경 작가의 작품 이수경 작가 〈번역된 도자기〉 연작은 이번 전시에서 가장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대목이다. 작가는 버려진 도자기 파편들을 금박으로 정성스럽게 이어 붙여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보통은 상처를 숨기려 애쓰지만, 작가는 오히려 그 상처를 금빛으로 빛나게 드러냈다. 버려진 조각들이 서로를 의지하며 하나의 새로운 예술품으로 거듭나는 모습은 우리 삶 관계를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전시장 중앙, 작품을 응시하는 관람객과 벽면을 따라 흐르는 전시의 호흡 이번 전시를 기획한 조은 학예사는 "이번 전시는 작품에 드러나는 표면적인 이미지만을 살피는 빠른 관람보다 체류를 전제로 한 감상법을 제안한다"라는 마음을 전했다. 그는 "작가가 반복과 중첩, 필사와 축적, 긋기와 지우기 같은 수행적인 방식 안에서 단절을 넘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지를 살필 수 있을 것"라며 이번 전시 의미를 설명했다. 갈등이 깊은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이 이 거대한 흐름을 따라 걸으며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되찾기를 바란다는 학예사 말에서 이번 기획 진심이 느껴진다. 전시의 마무리를 향해 나가는 길목, 마지막까지 이어지는 흑백의 조화 복잡한 세상 속에서 잠시 멈춰 서고 싶은 이들에게 이 전시는 더할 나위 없는 생각 쉼터가 된다. 작품 사이 거닐며 고요함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은 지친 일상에 작지만 강한 위로를 건넨다. 흑과 백이 나누는 대화는 결국 우리 삶 화해와 세상을 보는 눈을 넓혀주는 소중한 통로가 될 것이다. 단순히 눈으로 보는 전시가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이 특별한 물결에 몸을 맡겨보기를 권한다. 2026 수원시립미술관 소장품전 《블랑 블랙 파노라마》 포스터 2026 수원시립미술관 소장품전 《블랑 블랙 파노라마》 ○ 기간 : 2026년 2월 12일(목) ~ 2027년 3월 1일(월) ○ 시간 : 하절기(3월~10월) 10:00~19:00, 동절기(11월~2월) 10:00~18:00 관람 종료 1시간 전까지 입장 가능, 매주 월요일 휴관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그 다음 날 휴관) ○ 부문 : 소장품전 ○ 장르 : 복합(회화, 조각, 설치, 영상 등) ○ 작가 : 이배, 고산금, 이수경, 최병소, 이순종 등 20여 명 ○ 구성 : 수원시립미술관 소장품 약 20점 ○ 대상 : 전체 관람 ○ 예약 : 자유 관람 ○ 요금 : 성인 4,000원, 청소년 2,000원, 어린이 1,000원 (수원시민 25% 할인) ○ 장소 : 수원시립미술관 제1전시실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833) ○ 주차 : 미술관 내 지하 주차장 이용 가능 ○ 홈페이지: https://suma.suwon.go.kr ○ 문의 : 031-5191-3800 ![]() 연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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