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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게임 한 판에 웃음이 피어난다
수원시, ‘도란도란 더즐거운 놀이마당’… 놀이로 되찾는 어르신의 관계와 기억
2026-02-17 08:02:42최종 업데이트 : 2026-02-17 08:02:40 작성자 : 시민기자   이난희

보드게임 놀이마당 프로그램 중 하나인 '토끼 경주'의 한 장면이다.

보드게임 놀이마당 프로그램 중 하나인 '토끼 경주'의 한 장면이다.
 

보드게임 한 판에 피어나는 웃음

지난 2월 12일, 찬 공기가 남아 있던 금요일 오전, 수원 광교노인복지관 분관 두빛나래에는 연신 웃음소리가 번졌다. 보드게임 말판 위로 작은 말들이 움직이고, 참가자들의 손끝에서는 망설임과 기대가 교차했다. 수원시 지역 어르신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참여형 여가 프로그램 '2026년 도란도란 더즐거운 놀이마당' 현장이다.

 

만 60세 이상 어르신 16명이 참여하는 이 프로그램은 2월 한 달 동안 매주 금요일 진행되며, 보드게임을 통해 신체와 인지를 동시에 자극하고 자연스러운 관계 형성을 돕는 데 목적이 있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어르신들은 처음에는 조심스러운 표정이었지만, 게임이 시작되자 금세 서로 순서를 알려주고 방법을 알려주는 등 이름을 부르고 웃음을 나누었다.
 

보드게임을 즐기는 어르신들의 모습에서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한 동심이 느껴진다.보드게임을 즐기는 어르신들의 모습에서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한 동심이 느껴진다.
보드카드를 집어 드는 어르신들의 손끝에서는 신중함이 느껴졌다.  보드카드를 집어 드는 어르신들의 손끝에서는 신중함이 느껴졌다.
 

놀이 앞에서 나이는 잠시 잊힌다

프로그램의 시작은 보드게임 소개에 앞선 '동화 읽기' 시간이었다. 화면에는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를 새롭게 각색한 동화가 띄워졌고, 강사가 이야기를 들려주자 어르신들은 어린아이처럼 집중해 귀를 기울였다. 보드게임 상자 속 토끼 캐릭터를 보며 어르신들 사이에서는 "옛날 이야기랑은 또 다르네"라는 웃음 섞인 반응도 나왔다.


'토끼 경주' 동화를 들려주자 어르신들은 마치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집중해 듣고 있다.

'토끼 경주' 동화를 들려주자 어르신들은 마치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집중해 듣고 있다.
 

문득 떠오른 것은 세월이 만들어낸 아이러니였다. 한때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손주들에게 동화를 읽어주던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시간이 360도 돌아, 젊은 세대가 어르신들을 위해 이야기를 들려주는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세대의 역할이 자연스럽게 바뀌었지만, 누군가의 이야기를 함께 듣고 공감하는 순간만큼은 여전히 따뜻했다.

 

담당인 양희진 사회복지사는 "어르신들이 게임을 아이들만의 놀이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보드게임은 즐거움과 인지 활동을 동시에 제공할 수 있다"며 "무언가를 잘해야 한다는 부담보다 함께 웃고 어울리는 시간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프로그램의 기획의도를 설명했다.

 

양희진 사회복지사가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를 설명하고 있다.

양희진 사회복지사가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를 설명하고 있다.
 

기억보다 먼저 돌아오는 웃음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김영언 강사는 "보드게임은 규칙을 기억하고 선택하는 과정을 반복하게 만들어 자연스럽게 인지 기능을 자극한다"며 "공부가 아니라 놀이로 접근하기 때문에 어르신들의 참여도가 높다"고 말했다.


김영언 강사가 어르신들에게 '더즐거운 놀이마당' 보드게임 규칙을 차근차근 안내하고 있다.

김영언 강사가 어르신들에게 '더즐거운 놀이마당' 보드게임 규칙을 차근차근 안내하고 있다.
 

참여 어르신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분홍색 머리로 눈길을 끈 80대 염명자 할머니는 "처음엔 규칙이 기억나지 않아 걱정했는데 옆에서 알려주고 같이 웃다 보니 금세 친해졌다"며 "집에 있으면 하루 종일 말 한마디 안 할 때도 있는데 여기 오면 웃느라 시간이 금방 간다"고 말했다.

 
참여 소감을 묻자 염명자 할머니는 금세 브이(V)자를 들어 보이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참여 소감을 묻자 염명자 할머니는 금세 손가락을 들어보이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70대 박정인 할머니 역시 "집에서는 TV만 보다 하루가 지나가곤 했는데, 여기서는 게임도 하고 선생님의 옛날 이야기도 들으니까 너무 즐겁다"며 "생각보다 시간이 훨씬 빨리 간다"고 전했다. 또 다른 참가자 A씨는 "말판 위에서 서로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일상의 활력이 된다"고 말했다.

 

이날 프로그램이 끝난 뒤 어르신들과 진행자들이 함께 찍은 단체 사진에는 어색함 대신 편안한 표정이 담겨 있었다. 처음 만났던 사람들 사이에는 어느새 자연스러운 친밀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프로그램이 끝난 뒤 참여 어르신들이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프로그램이 끝난 뒤 참여 어르신들이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지역 자원으로 만드는 지속 가능한 복지

이번 놀이마당은 복지관과 지역 교육 자원이 협력해 운영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복지관은 공간과 참여자 모집, 운영을 담당하고, 교육 전문 기관은 프로그램 진행을 맡는다. 별도의 큰 예산 없이 지역 안에서 가능한 자원을 연결해 어르신들의 삶의 질을 높이려는 시도다.

 

복지관 관계자는 "작은 프로그램이지만 어르신들의 표정 변화는 확실하다"며 "놀이를 통해 관계를 회복하고, 관계 속에서 건강을 키우는 방식이 앞으로 지역 복지의 중요한 방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보드게임 한 판으로 시작된 금요일 아침. 누군가에게는 잊고 있던 기억을 불러오고, 누군가에게는 오랜만의 대화를 선물하는 시간이다. '도란도란 더즐거운 놀이마당'은 오늘도 어르신들의 손끝과 마음속에 잠들어 있던 웃음과 관계를 조심스레 깨워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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