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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에서 만나는 흑과 백의 깊이! 수원시립미술관 2026년 첫 전시 <블랑 블랙 파노라마>
행궁 본관 1전시실에서 펼쳐지는 18인의 작업, 2027년 3월 1일까지 개최
2026-02-19 11:00:28최종 업데이트 : 2026-02-19 11:00:26 작성자 : 시민기자   안선영
작품을 보기 전, 전시가 던지는 질문부터 마주하는 시간이다.

작품을 보기 전, 전시가 던지는 질문부터 마주하는 시간이다.


지난해 수원시립미술관은 개관 10주년을 맞아 다양한 특별전을 선보였다. 완성도 높은 전시가 이어졌던 만큼 올해 첫 전시에 대한 기대도 커졌다. 더 놀랄 수 있을까 싶었지만, 전시장 문을 여는 순간 그 생각은 금세 사라졌다.

안으로 들어서자 아이가 먼저 말했다. "와, 흑백 요리사 생각난다!" 웃음이 나면서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색을 덜어낸 공간이 만들어내는 밀도와 집중감이 그 말과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검은 벽면과 절제된 조명 속에서 작품들이 이어지듯 펼쳐지고 시선은 다음 장면으로 흐른다. 전시장 전체가 하나의 화면처럼 연결되며, 말 그대로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수많은 선으로 이루어진 풍경 앞에서, 아이의 시선은 작은 디테일을 따라 천천히 여행을 시작한다.

수많은 선으로 이루어진 풍경 앞에서, 아이의 시선은 작은 디테일을 따라 천천히 여행을 시작한다.


여러 번 찾았던 미술관이지만 이번 전시는 시작부터 분위기가 다르게 느껴졌다. 화려한 색 대신 정제된 공기가 공간을 채우고, 조용한 긴장감이 흐른다. 전시장이라기보다 정갈하게 정돈된 공간에 들어선 듯한 인상이다. 불필요한 요소가 덜어진 자리에서 작품의 표면과 질감이 또렷하게 드러난다.

한 걸음 멈추면 농도가 달라지고, 몇 걸음 옮기면 또 다른 장면이 이어진다. 아이랑 그림 하나를 두고 앞으로 뒤로, 또 옆으로 얼마나 많이 자리를 옮겼는지 모르겠다. 감상하는 대상이라기보다 걸으며 경험하는 흐름에 가깝다. 흑과 백 외에는 색이 거의 보이지 않는데도 단조롭지 않다. 덜어낸 덕분에 시선은 더욱 선명해지고, 절제된 공간 안에서 감각이 또렷하게 살아난다.

문지르고 덧그린 흔적, 이어 붙인 결들이 화면 위에 겹겹이 쌓이며 시간의 밀도를 만들어낸다.

문지르고 덧그린 흔적, 이어 붙인 결들이 화면 위에 겹겹이 쌓이며 시간의 밀도를 만들어낸다.


<블랑 블랙 파노라마> 전시는 고산금, 석철주, 이배, 이수경, 최병소, 최수환 등 18명의 작가가 참여해 회화·조각·사진·공예·영상 등 20여 점의 소장품을 선보인다. 재료와 표현 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표면에 남겨진 흔적들은 공통된 감각을 만들어낸다. 시간이 쌓여 완성된 결과라는 점에서 하나의 흐름처럼 이어진다.

멀리서 보면 단순한 면처럼 보이던 작품도 가까이 다가가면 전혀 다른 모습이 드러난다. 표면에 남은 결, 덧붙인 흔적, 겹겹이 쌓인 층이 깊이를 만든다. 액자 속 그림은 더 이상 평면이 아니라 시간을 머금은 공간처럼 느껴진다. 무엇을 그렸는지보다, 어떻게 쌓여왔는지를 바라보게 되는 순간이다.

흔적이 모여 풍경을 이루듯, 가까이 다가가면 수없이 반복된 작은 글자가 보인다.

흔적이 모여 풍경을 이루듯, 가까이 다가가면 수없이 반복된 작은 글자들이 보인다.


전시 제목인 '블랑(Blanc)'과 '블랙(Black)'은 대비되는 색처럼 보이지만, 빛과 불, 연소의 의미와 맞닿은 공통의 어원을 공유한다. 전시는 흑과 백을 분리된 개념이 아니라 하나의 흐름 속에서 이어지는 상태로 바라보도록 제안한다.

밝음과 어둠은 서로를 밀어내기보다 드러내는 관계처럼 느껴진다. 화면 속에서 채움과 여백, 드러남과 남김이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균형은 고요하면서도 울림을 남긴다.

공간 전체가 하나의 장면처럼 흐르며, 전시의 밀도와 집중감을 단번에 느끼게 하는 순간!

공간 전체가 하나의 장면처럼 이어지며, 전시가 말하려는 흐름이 한눈에 전해지는 순간이다.


완성된 이미지를 보여주기보다 재료와 행위가 쌓여 만들어지는 과정을 바라보게 한다. 숯, 도자 파편, 연필, 빛 같은 재료들이 화면 위에 반복적으로 더해지고 이어 붙여지며 작품의 구조를 만든다. 

검게 문질러진 화면에서는 타고 남은 흔적처럼 느껴지고, 깨진 조각을 이어 붙인 표면은 부서짐이 아니라 다시 이어지는 순간이 읽힌다. 빛을 이용한 작업은 하나의 이미지라기보다 숨을 쉬듯 미묘하게 변하는 장면처럼 다가온다. 작품마다 손의 움직임이 반복되며 쌓여온 시간의 밀도가 화면 위에 남아 있다는 점에서 서로 닮아 있기 때문이리라.
 
텍스트가 모여 이루어진 이미지를 바라보며, 읽기와 감상이 하나의 경험으로 겹쳐진다.

텍스트가 모여 이루어진 이미지를 바라보며, 읽기와 감상이 하나의 경험으로 겹쳐진다.


아이와 가장 오래 머물렀던 작품은 이동재 작가의 <아이콘 아바(con_ABBA)>였다. 뮤지컬 '맘마미아' 덕분에 ABBA 노래를 익숙하게 듣던 아이는 가수의 얼굴을 처음 본다며 신기해했다.

작품은 쌀과 콩 같은 곡물, 레진 조각처럼 작은 물질들을 반복적으로 붙여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멀리서 보면 얼굴로 보이지만 다가가면 촘촘히 이어 붙인 조각들의 구조가 드러난다. 하나하나를 따라가다 보면 ABBA 노래 가사가 영어 문장으로 숨어 있다는 사실! 작품을 바라보다가 자연스럽게 노래를 떠올리고 뜻을 짚어보게 되는 뜻밖의 공부 시간이 되었다.

오디오 가이드 번호 앞에 서면, 작품을 듣는 또 하나의 감상이 시작된다.

오디오 가이드 번호 앞에 서면, 작품을 '듣는' 또 하나의 감상이 시작된다.

안내문뿐 아니라 QR을 통해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감상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빠르게 둘러보기보다 머무르는 시간을 전제로 하는 전시다. 적은 재료로도 깊은 울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절제된 구성 속에 축적된 시간과 노력이 고요히 스며 있고, 그 여운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전시장을 나서며 문득 떠오른 생각 하나! 흑과 백은 대비되는 색이라기보다 서로를 드러내기 위한 조건일지도 모른다는 것. 천천히 걸으며 바라볼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빠르게 소비하기보다 잠시 머물며 감각을 열어두고 싶은 날, 이 전시는 그 시간을 기꺼이 내어줄 이유가 되어준다.

<블랑 블랙 파노라마> 전시 기본 정보
○ 주소 :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833 수원시립미술관 행궁 본관
○ 전시 기간 : 2026.02.12 ~ 2027.03.01
○ 관람 시간 : 10:00 – 18:00(동절기) / 10:00 – 19:00(하절기)
● 휴관 : 매주 월요일
○ 관람료 : 성인 4,000원 / 청소년 2,000원 / 어린이 1,000원 (할인 및 감면은 누리집 참조)
○ 누리집 :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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