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 11일 행궁동에 자리한 '산아래 시(詩) 다시공방'에서 이정하 시인의 북콘서트가 열렸다
춘삼월, 봄이다. 봄은 부드럽게 감각을 깨우고 마치 마법에서 깨어나듯 온 세상 구석구석이 살아 있음을 실감하게 만드는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봄이 되면 누구나 한 번쯤 '시를 쓰고 싶다', '시인이 되고 싶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럴 때 '산 아래 시 작은 책방'을 찾아가 보길 바란다. 산 아래 시 작은 책방은 시집 전문 책방이다.
3월 11일 시집 전문 책방 수원 '산아래 시(詩) 다시공방'(팔달구 행궁로 105, 1층 101호)에서 이정하 시인의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 북콘서트가 열린다고 해서 다녀왔다. 이정하 시인은 '연탄 시인'으로 잘 알려진 안도현, '홀로서기'라는 유명한 시를 쓴 서정윤과 함께 대구 출생의 서정 시인이다. 사랑과 감정, 인간관계를 따뜻하고 쉬운 언어로 표현한 시로 30년 넘게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좁은 책방 안에는 얇은 시집들과 다양한 시들이 벽면을 장식하고 있었고, 작은 의자에 20명이 넘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북콘서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정하 시인은 맨 앞에서 새로 들어오는 사람마다 이름을 묻고 자신의 시집에 사인을 해주며 반갑게 맞이했다.

(우측)이정하 시인과 대담자 정다겸 시인
이번 북콘서트는 이정하 시인을 초청 작가로 모시고 그의 시를 낭송하며, 시에 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듣는 시간으로 진행됐다. 진행은 정다겸 시인이 맡았다. 이정하 시인은 시를 쓸 당시의 나이를 언급하기도 하고,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로 진솔하게 이야기를 풀어냈다. 청중들은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박수를 보내고 감탄을 연발하며 훈훈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어갔다.
식전 공연과 시 낭송은 북콘서트에 참여한 이들이 재능과 목소리를 보태 함께 만들어가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정하 시인은 자신의 시를 낭송하는 참가자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눈을 살짝 감기도 하고, 시를 되새기듯 잠시 회상에 잠기기도 했다. 이날 낭송된 작품으로는 '사랑의 이율배반', '험난함이 내 삶의 거름이 되어', '낮은 곳으로', '비 오는 간이역에서 밤열차를 탔다', '그대 굳이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한 사람을 사랑했네' 등이 있다.
이와 함께 대담자로 나선 정다겸 시인은 이정하 시인에게 언제 시인이 되었는지, '험난함이 거름이 된 삶의 경험', 인생과 사랑 이야기 등 청중이 궁금해할 만한 질문을 재치 있게 던졌다.

<그대 굳이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를 낭송한 최심영 참가자
이날 '그대 굳이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를 낭송한 최심영 참가자는 "저는 호스피스 말기암 환자를 대상으로 가정 방문을 하는 전담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며 "평소 이정하 시인의 시를 좋아해서 어렵게 반차를 내고 참여하게 됐습니다. 여기 오신 분들 모두 행복한 시간 보내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대 굳이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 이정하
그대 굳이 아는 척하지 않아도 좋다.
찬 비에 젖어도 새잎은 돋고
구름에 가려도 별은 뜨나니
그대 굳이 손 내밀지 않아도 좋다.
말 한번 건네지도 못하면서
마른 낙엽처럼 잘도 타오른 나는
혼자 뜨겁게 사랑하다
나 스스로 사랑이 되면 그뿐
그대 굳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시 낭송을 마친 뒤, 정다겸 시인이 "시인님, 저는 '사랑'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지금도 가슴이 설렙니다. 사랑이 무엇일까요?"라고 묻자, 이정하 시인은 "사랑이 뭔지 모른다 카이. 내가 그걸 우째 알겠노"라고 답해 큰 웃음을 자아냈다.
시인은 요즘 젊은 세대의 사랑과 과거 기다림의 시간이 길었던 시절의 사랑을 비교하기도 했다. 요즘 젊은이들은 사랑도, 이별도 비교적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자신의 감정을 분명하게 표현하는 점은 오히려 더 건강하고 당당한 사랑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사랑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편지를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답장을 기다렸고, 그 과정에서 홀로 아파하는 시간을 미덕으로 여기기도 했다. 그러나 시인은 이를 '혼자 골방에서 끙끙 앓는 사랑'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식전 공연 오카리나 연주
또한 이정하 시인은 수많은 사랑 시를 쓰기 위해 책 속에서 사랑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찾아 읽었다고 말했다. 실제 경험이든, 독서든, 상상이든 다양한 상황을 생각하고 경험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예술 창작을 하는 사람은 '마음의 눈'을 떠야 한다고도 했다. 꽃이 아름답다고 해서 꽃만 볼 것이 아니라, 꽃이 지고 난 뒤의 열매와 꽃을 피워내기까지의 과정까지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생각할 때 좋은 시가 나온다고 덧붙였다. AI가 시를 쓰고 고쳐주는 시대이지만, 그럴수록 자신의 경험과 기억이 담긴 이야기를 시에 녹여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거제도에서 온 23세 장영주 씨는 "평소 어머니 책장에서 이정하 시인의 시를 처음 접했다"며 "작가를 직접 보고 싶어 이번 북콘서트를 신청했고, 5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왔다"고 말했다. 이어 "신문을 보고 신청했는데, 작가님을 만날 생각에 아르바이트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왔다"고 덧붙였다.

이정하 시인의 북콘서트 진행 순서
이번 북콘서트를 통해 시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도 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시는 여전히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언어의 마법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이날 뒤풀이 자리에서 만난 한 시민은 "수원이 고향이라 일주일에 한 번은 이 시 전문 서점을 찾아 시를 읽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며 "앞으로 이 공간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활성화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