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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행궁에서 ‘내 고장 국가유산 가꾸는 날‘ 행사 열려
경기, 인천지역 지킴이 단체 100여 명 참여
2026-04-28 11:30:15최종 업데이트 : 2026-04-28 11:30:10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내 고장 국가유산 가꾸는 날' 행사에 참여한 지킴이들이 화성행궁 낙남헌에 모였다.

'내 고장 국가유산 가꾸는 날' 행사에 참여한 지킴이들이 화성행궁 낙남헌에 모였다.


지난 주말 때 이른 불볕더위 속에서도 관람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 화성행궁에서는 '2026년 내 고장 국가유산 가꾸는 날' 행사가 오전 10시부터 화성행궁 낙남헌, 별주 주변에서 열렸다. 화성연구회, 경기, 인천지역 지킴이 단체 회원 100여 명이 참여해 국가유산 보호를 실천했다. 이 행사는 국가유산청과 한국국가유산지킴이연합회가 주관하는 민·관 협력 프로그램이다.

'내 고장 국가유산 가꾸는 날'은 2008년부터 계속하는 행사로 4월과 10월 넷째 주에 전국에 있는 국가유산 현장에서 진행하는 국가유산 가꾸기 자원봉사 활동이다. 국가유산 청소 등 정화 활동, 국가유산 주변 시설물 정비, 화재 방재, 감시 활동 등을 한다. 

이날 화성행궁 낙남헌 옆 동행각 마루에서는 콩댐(불린 콩을 갈아서 들기름 등에 섞어 장판에 바르는 일) 작업을 했다. 나무 마루를 깨끗하게 청소한 이후에 콩댐 작업을 하면 마루가 매끄러우면서도 걸레질을 할수록 윤이 난다. 나무 마루가 썩지 않고 오래 간다. 별주 옆 마당에서는 잡초를 제거했다. 정화 활동 후에는 참가자들을 위한 화성행궁 해설이 진행되었다.

'내 고장 국가유산 가꾸는 날' 행사에 참여한 지킴이들이 콩댐 작업을 하고있다.

'내 고장 국가유산 가꾸는 날' 행사에 참여한 지킴이들이 콩댐 작업을 하고있다.


행사에 참여한 지킴이는 "화성행궁이 조선시대 행궁 중 가장 큰 행궁이라고 들었는데 직접 와보니 서울에 있는 궁궐만큼이나 큰 것 같네요. 제 손으로 직접 국가유산 보호를 체험할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유산의 가치를 알고 체험할 수 있어 뿌듯합니다."라며 앞으로도 이런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했다.

대한건축사협회 회원들 대상 화성행궁 해설

필자는 정화 활동을 마치고 '대한건축사협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화성행궁 해설에 나섰다. 화성행궁 정문인 신풍루 앞에는 무예24기 시범공연이 끝난 후라 복잡했다. 회원들과 함께 유여택으로 가서 해설을 시작했다. 화성행궁 해설에 앞서 정조대왕이 통치하던 시대를 세계사적 관점에서 개략적으로 설명했다. 

"정조대왕이 왕위에 오르던 1776년은 미국이 독립전쟁을 하던 때이고,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현륭원으로 옮기던 1789년은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던 시기였습니다. 유럽에서는 칸트, 헤겔, 괴테 같은 사상가들과 베토벤 같은 음악가가 활동하던 시기였고 조선에서는 박지원, 홍대용, 박제가, 정약용 같은 실학자들이 활동하던 시기였습니다. 청나라는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가 통치하던 '강건성세'라고 하는 전성기였고, 조선은 숙종, 영조, 정조에 이르는 150여 년의 르네상스와 같은 시기였습니다."
 
'내 고장 국가유산 가꾸는 날' 행사에 참여한 지킴이들이 별주에서 잡초제거 작업을 하고있다.

'내 고장 국가유산 가꾸는 날' 행사에 참여한 지킴이들이 별주에서 잡초제거 작업을 하고있다.


1789년 가을에 사도세자의 묘를 서울에서 현륭원으로 이장하면서 그곳에 있던 수원 읍치를 팔달산 동쪽으로 옮기고 화성행궁을 건설했다. 행궁이란 왕이 지방에 행차할 때 임시로 머무는 거처이다. 정조대왕은 이때부터 1800년까지 13차례 현륭원을 방문하면서 화성행궁을 이용했다. 

1793년에 수원부의 이름을 화성으로 바꾸고 화성유수부로 승격시켰다. 이때 처음으로 '화성'이란 이름이 생겨났다. 1794년부터 수원화성 축성을 시작하면서 화성행궁도 대대적인 증축에 들어갔다. '진남루'라고 했던 화성행궁 정문 이름을 신풍루로 바꾸었다. 화성유수였던 조심태가 쓴 진남루 현판 글씨가 조윤형이 쓴 신풍루 현판으로 바뀌었다. 

화성행궁은 1795년에 큰 변화를 맞이했다. 정조대왕이 어머니 혜경궁홍씨를 모시고 윤 2월 9일부터 16일(양력 3월 29일 – 4월 5일)까지 8일간 행차에 나선 것이다. 수원향교 대성전 전배, 문무과 별시 및 합격자 시상, 현륭원 참배, 서장대 주간 및 야간 군사훈련, 봉수당 회갑잔치, 신풍루에서 사민과 진민에 쌀 나눠주고, 낙남헌 양로연 등의 행사가 열렸다.

화성행궁 앞에서 펼쳐진 무예24기 시범공연

화성행궁 앞에서 펼쳐진 무예24기 시범공연


이때의 행사를 재현한 것이 현재의 수원화성문화제인 것이다. 창덕궁부터 수원까지의 행차는 '정조대왕 능행차'로 수원화성문화제의 꽃이 되었고, 어머니를 위한 회갑잔치는 진찬연 재현이 되었다. 양로연 등 당시의 행사가 현대적으로 재해석 되면서 문화제의 콘텐츠가 풍성해졌다.

해설을 들은 한 건축사는 "시대적 상황을 수평적인 관점에서 조명해주니 당시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현판 글씨의 가치와 내력에 대해서도 알게 되어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더 많은 설명을 듣고 싶었는데 시간이 아쉽습니다."라고 말했다.

해설을 하는 동안에도, 해설을 마친 시간에도 행궁과 광장은 버라이어티했다. 파란 생명으로 약동하는 팔달산과 광장의 역동성이 느껴지는 주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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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행궁, 내 고장 국가유산 가꾸는 날, 화성연구회, 지킴이, 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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