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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빛을 지나 검은 전시장으로, 수원시립미술관 ‘블랑 블랙 파노라마’
수원시립미술관 소장품전, 흑과 백 사이에 남은 시간과 재료의 흔적을 보다
2026-04-30 13:04:42최종 업데이트 : 2026-04-30 13:04:17 작성자 : 시민기자 강남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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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입구에 마련된 전시 설명 벽면. 《블랑 블랙 파노라마》의 기획 의도와 전시 개요를 확인할 수 있다. 4월 말 한낮, 수원시립미술관 밖은 밝았지만 1전시실은 다른 속도로 흘렀다. 검은 벽과 낮은 조명 아래 흰 화면과 검은 선들이 간격을 두고 놓였고, 발소리까지 작게 들릴 만큼 고요했다. 검은 벽과 낮은 조명으로 구성된 전시장 전경. 기사 초입의 '한낮의 빛에서 검은 전시장으로 들어가는 느낌'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바깥의 밝은 시간이 전시장 문 앞에서 끊기고,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흑백 화면 속으로 시선이 빨려 들어갔다. 이 공간에서 흰색과 검은색은 색이 아니라, 재료가 지나온 시간과 작가의 손이 남긴 자국으로 읽힌다. 수원시립미술관은 소장품전 《블랑 블랙 파노라마》를 1전시실에서 열고 있다. 전시는 2월 12일 개막해 2027년 3월 1일까지 열린다. 고산금, 김두진, 김수철, 김유정, 박미라, 석철주, 유승호, 유혜숙, 윤세열, 이동재, 이배, 이수경, 이순종, 이여운, 장혜홍, 최병소, 최수환, 최필규 등 18명 작가의 작품 20점을 선보인다. 전시 제목의 '블랑'은 흰색, '블랙'은 검은색을 뜻한다. 전시는 두 색을 밝음과 어둠으로만 나누지 않는다. 흰 표면과 검은 흔적이 한 화면 안에서 서로를 또렷하게 만든다. 이여운의 <복사하기 2>와 윤세열의 <산수—을지로>가 보이는 벽면. 흑백 선과 여백이 강조된 작품 배치를 보여주기에 좋다. 작품을 볼 때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색보다 재료다. 숯, 목탄, 먹, 흑연, 그을음, 도자기 파편, 신문, LED가 작품마다 다른 방식으로 쓰였다. 멀리서는 단색처럼 보이던 화면도 가까이 가면 긁고, 문지르고, 태우고, 이어 붙인 과정이 드러난다. 이배의 <불에서부터>는 캔버스에 목탄으로 만든 작품이다. 목탄은 이미 한 번 불을 지난 재료다. 작품 앞에 서면 검은 면이 불이 지난 뒤 남은 물질처럼 보인다. 조명 방향에 따라 결이 달라지고, 숯의 거친 질감이 다가온다. 이수경의 <번역된 도자기_2019 TVW 5>는 깨진 도자기 조각을 에폭시와 금박으로 이은 작품이다. 흰 도자 파편은 원래 형태를 잃었지만, 서로 붙으며 새로운 몸을 얻는다. 금박은 갈라진 선을 감추지 않고 깨진 자리를 따라 빛을 남긴다. 최병소의 <무제-0160924>는 신문 위에 볼펜과 연필을 반복해 그은 작품이다. 글과 사진을 전하던 신문은 읽을 수 없는 표면으로 바뀐다. 가까이 보면 종이가 눌리고 긁힌 자국이 보인다. 내용은 사라졌지만, 손의 움직임과 시간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김수철의 <신비로운 직관>은 안료, 돌가루, 흑연, 그을음 등을 사용한 작품이다. 멀리서 보면 어두운 덩어리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표면의 높낮이와 빛의 반사가 달라진다. 검은색 안에서도 밝고 어두운 층이 바뀌며, 평면보다 지형에 가까운 화면을 만든다. 유혜숙의 <무제>와 <무제 1(머리)> 가 나란히 놓인 장면. 빛과 검은 덩어리, 흰 화면이 대비되는 장면이라 작품 설명 구간에 어울린다. 유혜숙의 <무제>와 <무제 1(머리)>은 목탄, 파스텔, 콩테, 연필 등이 겹친 화면으로 관람객을 붙잡는다. 큰 머리 형상은 사람 얼굴을 떠올리게 하지만, 머리카락처럼 보이는 결과 문지른 자국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박미라의 단채널 영상 작품 <막간극> 상영 공간. 관람객이 앉아 영상을 감상하는 구조를 설명할 때 적합하다. 박미라의 <막간극>은 흑백 화면과 음향으로 구성된 단 채널 영상이다. 전시장 한쪽 벤치에 앉으면 걷던 관람이 잠시 멈춘다. 영상은 흰색과 검은색이 시간 속에서 움직인다는 점을 느끼게 한다. 이수경의 <번역된 도자기_2019 TVW 5>와 김두진의 <대지-엄마의 땅> 등이 보이는 전시장 전경. 도슨트 해설하는 모습이 보인다. 현장에서는 도슨트 해설을 듣는 관람객 모습도 눈에 띄었다. 전시실 맞은편 동선에서 해설사는 작품 재료와 제작 방식을 짚으며, 흑과 백이 작품 안에서 어떻게 달라지는지 설명했다. 관람객들은 해설 뒤 다시 작품 앞으로 이동해 표면을 살폈다. 미술관을 자주 찾지 않는 관람객에게도 해설은 좋은 길잡이다. 재료와 반복된 동작을 알고 보면 흰 표면과 검은 화면 속 차이가 보인다. 전시장은 조용하지만 비어 있지 않다. 벽면을 따라 걷다 보면 흰색과 검은색이 작품마다 다른 역할을 한다. 어떤 작품에서 검정은 타고 남은 흔적이고, 어떤 작품에서는 지워진 정보의 자리다. 흰색은 종이와 도자기 표면이 되기도 한다. 관람할 때는 설명문을 모두 읽기보다 전시실을 한 바퀴 돌아보는 편이 좋다. 이후 마음에 남는 작품 앞에서 재료와 제작 방식을 확인하면 감상이 더 분명해진다. 5월 초 연휴에 미술관 나들이를 계획한다면 《블랑 블랙 파노라마》는 차분한 선택지가 될 수 있다. 강한 색채나 큰 소리로 끌어당기기보다, 한 작품 앞에 오래 서 있도록 만드는 전시다. 수원시립미술관 1전시실의 검은 벽과 낮은 조명은 작품을 어둡게 감추지 않는다. 오히려 흰 표면, 검은 선, 긁힌 자국, 이어 붙인 틈을 더 잘 보이게 한다. 잠시 속도를 늦추고 싶다면, 이 전시는 검고 흰 화면 사이에 남은 손의 시간과 재료의 목소리를 들여다볼 수 있는 자리다. 2026 수원시립미술관 소장품전《블랑 블랙 파노라마》 공식 포스터. 전시 기간은 2026년 2월 12일부터 2027년 3월 1일까지다. 2026 수원시립미술관 소장품전 《블랑 블랙 파노라마》 ○ 기간 : 2026년 2월 12일(목) ~ 2027년 3월 1일(월) ○ 시간 하절기(3월~10월) 10:00~19:00 동절기(11월~2월) 10:00~18:00 관람 종료 1시간 전까지 입장 가능 매주 월요일 휴관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그 다음 날 휴관) ○ 부문 : 소장품전 ○ 장르 : 복합 (회화, 조각, 설치, 영상 등) ○ 작가 : 이배, 고산금, 이수경, 최병소, 이순종 등 18여 명 ○ 구성 : 수원시립미술관 소장품 약 20점 ○ 해설 : 매일 오후 2시, 4시 정규 도슨트 운영 (전시장 입구 시작) ○ 대상 : 전체 관람 ○ 예약 : 자유 관람 ○ 요금 : 성인 4,000원, 청소년 2,000원, 어린이 1,000원 (수원시민 25% 할인) ○ 장소 : 수원시립미술관 제1전시실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833) ○ 주차 : 미술관 내 지하 주차장 이용 가능 ○ 홈페이지: https://suma.suwon.go.kr ○ 문의 : 031-228-38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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