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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81주년, 수원화성행차의 의미를 다시 묻다
화성연구회 인문학 강연… 정조의 개혁정신과 무형유산 가치 조명
2026-05-11 13:27:24최종 업데이트 : 2026-05-11 13:27:23 작성자 : 시민기자 진성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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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장모습
강연 전 월례회의에서 최호운 이사장은 "장미가 피는 아름다운 신록의 계절에 멋진 강의를 개최하게 되어 반갑다. 지난달에는 유성재 답사위원장의 엄선으로 서산 답사를 뜻깊게 다녀왔고, 4월 25일 국가유산지킴이 활동도 많은 회원이 참석한 가운데 잘 치러 감사하다. 6월에도 좋은 강의가 기다리고 있으니 기대하셔도 좋다"는 유쾌한 인사말을 전했다.
서주호 건축가의 강연모습
조선 500년 동안 가장 찬란하게 문화의 꽃을 피운 군주는 세종과 정조라고 볼 수 있다. 정조는 즉위한 해 양주 배봉산에 있던 사도세자의 봉호를 수은묘(垂恩墓)에서 영우원(永祐園)으로 높였으며, 1789년 박명원의 상소를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수원부 화산으로 천장한 뒤 현륭원(顯隆園)으로 개칭하기에 이른다. 정조는 재위 기간 총 13차례에 걸쳐 현륭원 전배를 위해 원행에 나섰다. 이 가운데 가장 유명한 원행은 을묘년(1795년)에 있었던 원행으로, 회갑을 맞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화려하고 성대하게 거행하였다. 이 기록은 화성행행도와 『원행을묘정리의궤』에 그림과 글로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수원화성은 군사적인 기능 외에도 상업적 기능을 갖고 있으며 실학 정신이 배어 있는 성곽이다. 또한 동양 성곽으로서는 백미다운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1910년 한일병합 이후 일본이 우리나라의 주권을 빼앗고 문화를 침탈하였다. 그리하여 수원화성행차도 1914년 이후 단절되었고 화성행궁은 낙남헌을 제외하고 대부분 훼손되기에 이른다. 한국전쟁 때는 북한군의 공격으로 창룡문과 장안문이 파괴되었으나, 한편으로는 북한군의 침략 시간을 지연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화성행행도 화성원행도 광복 후 공간의 복원과 수원화성행차의 재현 광복 이후 대한민국은 문화적 상처를 극복하고 민족 정체성을 회복하고자 다양한 복원사업을 전개해 왔다. 수원화성과 화성행궁의 재정비도 이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화성행궁의 복원은 1989년에 시작하여 2024년에 완료되었는데 무려 35년이 걸렸다. 심재덕 전 시장을 비롯한 수많은 인재와 인력이 동원되어 노력한 결과이다. 수원화성 성곽은 1975년부터 복원이 시작되어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이는 정조가 꿈꾸었던 이상도시의 복원과 문화유산 가치의 재발견이라는 상징성을 지닌다. 수원화성행차도 1975년 화홍문화제라는 이름으로 구현되기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수원화성의 역사문화적 가치는 정치·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부모에 대한 효심이라는 동양적 철학을 담고 있어 정신적·철학적 가치를 지닌 성으로 볼 수 있다.
서 박사는 이제 수원화성 원형도 대부분 복구되었고 기록문화유산의 세계유산 등재도 이루었지만 아직 우리의 할 일이 남아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정조대왕 화성행차의 전통을 이어가고 이를 유네스코 무형유산으로 등재하는 일이 그것이다. 무형 세계유산은 현재 한국·중국·일본 세 나라에 집중되어 있으며 우리나라는 종묘제례악 등 23건이 등재되어 있다고 한다. 관과 시민이 함께 어우러지는 수원화성행차가 무형세계유산에 등재된다면 아름다운 마침표를 찍게 되는 것 아니겠는가.
6월에 열리는 우리소리의 진수를 찾아
건축이란 많은 것이 어우러진 종합예술이다. 230여 년 전 우리가 사는 수원 땅에 꽃피운 아름다운 성곽과 행궁, 그리고 이를 둘러싼 유형·무형의 아름다움을 되찾고 지켜가는 일은 우리의 막중하고도 신성한 의무인 것만 같다. 한편 화성연구회와 정조인문재단은 6월부터 '우리 소리의 진수를 찾아'라는 대주제로 총 6회의 강연을 이어갈 예정이다. 천년의 숨결을 품은 우리 소리와 삶의 애환을 음악적으로 승화시킨 우리 소리의 세계를 시민 누구나 함께 들을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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