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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 화서문에서 화성장대, 화양루까지
(사)화성연구회 모니터링 활동
2026-05-14 09:39:41최종 업데이트 : 2026-05-14 09:39:40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수원화성 화서문, 홍예에서

수원화성 화서문, 홍예에서

지난 12일 오후 (사)화성연구회 모니터링분과에서는 수원화성 화서문에서, 서북각루, 서포루, 화성장대, 화양루까지 모니터링을 실시했다. 전날까지 일기예보에서는 비가 내릴 것으로 예상했는데 당일이 되니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화서문 홍예 안에 앉아서 수원화성 축성의 철학적 정체성을 설명하는 것으로 모니터링을 시작했다. 1793년 12월 8일 정조대왕은 "보기에 아름답기만 하고 견고하지 못하면 참으로 좋지 않고, 보기에 아름다워야 또한 지키고 적을 막아 물리치는 데 도움이 된다. 혹 바라볼 때의 아름다움 때문이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지키는 데에도 도움 되는 바가 없지 않다. 대개 누첩의 웅장하고 미려함은 선인들의 적의 기세를 빼앗기 위한 방법이 되기에 충분한 것이다. 바로 소하가 말한'웅장하고 미려하지 않으면 무게나 위엄이 없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나는 장려함이 귀한 것이 아니라 견고함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수원화성 축성 방향을 제시했다. 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웅려탈기 고금미제(雄麗奪氣 古今美制)'이다. '웅장하고 미려한 것도 족히 적의 기세를 빼앗기 위한 방법이 되기에 충분하니 고금의 아름다운 제도를 화성에 모두 갖추도록 하라.'이다. 

수원화성 서북각루

수원화성 서북각루


백제의 아름다움을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라고 한다. 서예에서 '위이불범 화이부동(違而不犯 和而不同, 같은 획이 나오면 서로 어긋나게 하되 침범하지 않고, 서로 화합하기는 하되 똑같이 하지는 않는다.)'이라는 말도 아름다움에 관한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화서문 현판은 원래 채제공이 썼는데 1930년대 이후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1907년에 헤르만산더가 찍은 사진에는 오른쪽이 떨어져 기울어진 현판이 보이고 글씨도 읽을 수 있다. 이후에는 연대를 추정할 만한 사진이 없다가 1961년 사진에 현재의 '화서문' 현판 글씨가 달렸는데 글씨에 변형이 생겨 새로 쓴 글씨인 것 같은데 기록이 없다.
수원화성 화성장대에서

수원화성 화성장대에서



서북각루 마루에 앉아있으니 대유평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다. 각루(角樓)란 성벽의 모서리에 설치하던 시설물로 성곽에서 조망하기에 가장 좋은 곳에 위치해 적의 동태를 살피고 감시하기 좋은 곳에 있다. "여기서 북쪽으로 만석거까지 모두가 논이었는데 1795년 봄에 개척한 국영농장인 대유평 이었습니다. 지금은 모두 주택가로 변했지만 1960년대까지만 해도 논이었습니다." 상전벽해라는 말이 실감 난다.

수원화성 화성장대 방향 성 밖

수원화성 화성장대 방향 성 밖


팔달산 둘레길에서 성 밖으로 나가 화성장대 가는 길에 서포루에서는 수원화성의 포루(砲樓)에 대해 설명했다. 현재 포루는 원형과 많은 차이가 있는데, 포루가 무너지기 전 옛 사진을 통해 원형을 추정할 수 있다. 화성성역의궤 기록과 복원한 실물이 다르지만, 벽돌로 쌓은 포루의 몸체 형태는 알 수 있다. 지붕의 형태는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태이다. 5개의 포루 중 3곳은 우진각 지붕으로 복원했고 북동포루와 북서포루는 수원화성 시설물의 지붕 중에서 가장 특이한 형태인 안쪽은 맞배지붕이고 밖은 우진각 지붕으로 복원했다.

화성장대에 오르니 대기가 깨끗해 전망이 좋았다. 화성장대에서 동쪽 방향 성벽에 봉돈이 있다. 동쪽으로 계속 연장하면 용인의 석성산이 보이는데 그곳에 봉수대가 있었다. 석성산 봉수는 조선시대 제2로 직봉의 하나로 용인 건지산 봉수에서 신호를 받아 성남 천림산 봉수로 전달했다. 화성행궁이 생기면서 수원화성 봉돈에서도 석성산의 봉수 신호를 받았다.

수원화성 화양루 가는 길 용도

수원화성 화양루 가는 길 용도


수원화성 시설물 중에서도 화성장대는 많은 시련을 겪었다. 1794년 완공 이후 1795년 정조대왕이 직접 군사훈련을 지휘하는 등 잘 보호되다가 일제강점기에 무너졌다. 1971년에 복원공사를 시작했는데 준공 전에 벼락을 맞아 해체하고 복원했다. 이때 한글로 '화성장대'라는 현판을 달았다. 1994년 5월 7일 화재로 소실된 것을 그해 12월 5일 복원하면서 서예가 양근웅 글씨로 현판을 달았다. 2006년 5월 1일 화재로 소실된 것을 2007년 4월 6일 복원했다. 이때 원래 있었던 정조대왕 친필 글씨의 현판을 달았다. 파란만장한 화성장대이다. 몇 년 전에는 1795년 윤 2월에 군사훈련을 지휘하고 지은 정조대왕의 시 현판을 복원해 걸었다. 시 내용이 호방하고 글씨가 멋스럽다.

서포루 앞에 있는 '세계문화유산 화성' 비석, '세계유산 화성'이 맞는 표현이다.

서포루 앞에 있는 '세계문화유산 화성' 비석, '세계유산 화성'이 맞는 표현이다.


이날 모니터링은 화양루에서 마무리했다. 이곳은 서남각루인데 원래는 현판이 있었는지 분명하지 않다. '화양루'라고 편액 했다는 기록으로 봤을 때 현판을 걸었을 것 같기는 한데 현판을 걸었다는 기록이 전혀 없어 알 수가 없다. 동북포루도 '각건대'라고 편액 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현판에 대한 기록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회원 한 분은 "모니터링 중 현판 글씨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줘 건물의 격이 다르게 보입니다. 글씨를 알게 되니 건물의 정체성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서포루 앞에 있는 비석에는 '세계문화유산 화성'이라고 되어있는데 공식 명칭인 '유네스코 세계유산 화성'으로 바꿔야 합니다. 간혹 관광객들이 비석 글씨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것을 봤습니다."라고 비석이 정상적으로 교체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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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화성연구회 모니터링 활동, 수원화성, 화서문, 화성장대, 화양루, 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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