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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땅이 되고, 나무판은 생명을 새겼다
해움미술관 《보편적 실재를 향한 예술의 역주》, 김재홍·류연복 작품으로 만나는 인간과 자연의 자리
2026-05-29 13:20:54최종 업데이트 : 2026-05-29 13:20:51 작성자 : 시민기자   강남철
해움미술관 외벽에 걸린 《보편적 실재를 향한 예술의 역주》 대형 현수막과 입구 전경. 수원 도심을 지나던 중 전시를 발견하게 된 장면을 보여준다.

해움미술관 외벽에 걸린 《보편적 실재를 향한 예술의 역주》 대형 현수막과 입구 전경. 수원 도심을 지나던 중 전시를 발견하게 된 장면을 보여준다.


수원 도심을 지나던 길, 해움미술관 외벽에 걸린 대형 현수막이 먼저 발걸음을 붙들었다. 《보편적 실재를 향한 예술의 역주》전시명 옆에 김재홍과 류연복, 두 작가 이름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 전시는 4월 30일부터 7월 30일까지 해움미술관에서 열린다.

거리에서 마주친 현수막은 곧 전시장 안으로 이어졌다. 안으로 들어서자, 전시명보다 먼저 작품이 만들어 내는 기운이 다가왔다. 한쪽에는 몸과 땅이 겹친 김재홍 회화가 놓여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나무판에 새긴 선과 색으로 자연 생명력을 밀어 올린 류연복 판화가 이어졌다.

전시장을 걷다 보면 두 작가 작품이 왜 한 공간에서 만났는지도 조금씩 보인다. 김재홍은 회화와 그림책을 넘나들며 인간 몸, 자연, 역사적 상처를 그려 왔다. 류연복은 목판화를 중심으로 민중 삶과 자연의 힘을 새겨 왔다. 두 작가는 1980년대 이후 한국 사회 현실, 인간 삶, 자연과 땅의 문제를 작품 중심에 두었다는 점에서 만난다.

김재홍 작품들이 전시장 벽면을 따라 펼쳐진 모습. 몸과 대지가 겹친 대형 회화들이 공간 전체를 묵직하게 채운다.

김재홍 작품들이 전시장 벽면을 따라 펼쳐진 모습. 몸과 대지가 겹친 대형 회화들이 공간 전체를 묵직하게 채운다.


김재홍 작품들이 펼쳐진 공간에서는 거대한 몸의 풍경이 먼저 시선을 붙든다. 멀리서 보면 낮게 이어진 산맥처럼 보인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서면 그것은 인간 몸이다. 몸은 대지처럼 누워 있고, 대지는 다시 몸처럼 굴곡을 드러낸다.

김재홍의 대형 작품 〈장막〉. 산맥처럼 보이는 몸의 굴곡과 상처처럼 이어지는 선이 작품의 핵심 인상을 만든다.

김재홍의 대형 작품 〈장막〉. 산맥처럼 보이는 몸의 굴곡과 상처처럼 이어지는 선이 작품의 핵심 인상을 만든다.


대형 작품 〈장막〉 앞에서는 화면을 가로지르는 선이 오래 남는다. 산등성이 같기도 하고, 몸에 난 상처 같기도 하다. 어둡게 가라앉은 화면 속에서 밝게 드러난 몸은 관람객 앞으로 불쑥 솟아오른다. 아름답다고만 보기에는 불편하고, 고통스럽다고만 보기에는 생명 기운이 강하다.

김재홍 회화에서 몸은 한 개인 신체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땅이고, 역사이며, 우리가 지나온 시간 흔적처럼 보인다. 분단, 전쟁, 폭력, 훼손된 자연을 직접 설명하지 않아도 화면 안 굴곡과 균열은 그런 단어들을 떠올리게 한다.

이 작품들은 멀리서 한 번, 가까이서 한 번 볼 때 더 깊어진다. 멀리서는 산과 구릉이 보이고, 가까이서는 피붓결, 어둠 속 빛, 상처처럼 남은 선이 보인다. 그 사이에서 관람객은 몸이 풍경이 되고 풍경이 다시 몸이 되는 순간을 경험한다.

류연복 작품 전시공간. 붉은 새와 흑백 목판화가 함께 걸려 있어 김재홍 회화 공간과 다른 분위기를 보여준다.

류연복 작품 전시공간. 붉은 새와 흑백 목판화가 함께 걸려 있어 김재홍 회화 공간과 다른 분위기를 보여준다.


김재홍이 그린 어두운 몸 풍경을 지나 류연복 작품들이 이어지는 공간으로 옮기면 전시장 기운이 달라진다. 흑백의 강한 선, 붉은 새, 화면을 뒤덮은 꽃과 나무, 산맥 앞에 선 작은 사람들이 나타난다. 목판화 특유의 칼맛은 거칠지만, 화면은 흩어지지 않고 단단하게 버틴다.

류연복의 꽃나무는 조용히 서 있는 식물이 아니다. 화면 전체를 밀고 나가며 자기 자리를 확보한다. 꽃은 장식이 아니라 터져 나오는 에너지에 가깝고, 나무는 땅과 하늘을 잇는 중심축처럼 서 있다. 자연은 배경이 아니라 작품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붉은 새가 날개를 펼친 작품도 눈길을 잡아끈다. 새는 현실을 벗어나려는 힘처럼 보이고, 산을 다룬 작품에서는 거대한 자연과 작은 인간이 함께 놓인다. 사람은 작게 그려졌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자연 앞에서 인간이 어떤 자리에 서 있는지 묻게 한다.

류연복 목판화가 벽면을 따라 길게 펼쳐진 전시장 모습. 거친 선과 강한 흑백 대비가 목판화 특유의 힘을 드러낸다.

류연복 목판화가 벽면을 따라 길게 펼쳐진 전시장 모습. 거친 선과 강한 흑백 대비가 목판화 특유의 힘을 드러낸다.


류연복 판화는 선을 따라가며 보는 재미가 있다. 나무판을 파고 찍어낸 선은 단순한 윤곽이 아니라 움직임을 만든다. 반복되는 선은 산의 결을 만들고, 굵고 날카로운 선은 나무와 꽃에 힘을 준다. 색이 들어간 작품에서는 여러 층이 겹치며 생명 기운을 더 강하게 밀어 올린다.

두 작가 작품을 나란히 보고 나면, 이번 전시가 단순히 회화와 판화를 함께 놓은 자리가 아니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김재홍이 대지 위에 새겨진 인간의 상처를 회화로 불러낸다면, 류연복은 나무판에 새긴 칼끝으로 시대의 아픔과 자연의 생명력을 함께 일으켜 세운다.

그렇게 보면 전시 제목 '보편적 실재'도 조금 다르게 읽힌다. 처음에는 어렵게 들릴 수 있지만, 작품 앞에 서면 말보다 장면이 먼저 다가온다. 몸의 기억, 땅의 상처, 산과 나무의 힘, 다시 피어나는 꽃의 기운이 전시장 안에서 서로 말을 건넨다.

해움미술관 전시는 규모보다 밀도로 다가온다. 빠르게 보고 지나치기보다 한 작품 앞에서 조금 더 머무는 관람이 어울린다. 김재홍 회화 앞에서는 멀리 물러섰다가 다시 가까이 다가가고, 류연복 판화 앞에서는 선의 방향과 색의 층을 천천히 따라가면 좋다.

필자가 찾은 시간, 전시장은 매우 조용했다. 관람객 발소리보다 작품 앞에 머무는 침묵이 더 크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서 오히려 아쉬움이 남았다. 이처럼 밀도 있는 작품들이 수원 도심 한복판에 걸려 있는데, 더 많은 시민이 이 공간을 찾아 작품 앞에 서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원 도심에서 만난 이 전시는 단순한 전시 안내만으로는 다 담기지 않는다. 두 작가 작품은 자연을 예쁘게 보여 주는 데 머물지 않고, 우리가 어떤 땅 위에 서 있는지, 상처를 지나 다시 살아나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지 묻는다. 해움미술관을 찾는다면 그 질문 앞에 잠시 머물러 볼 만하다.

해움미술관 초대전 《보편적 실재를 향한 예술의 역주》
○ 기간 : 2026년 4월 30일(목) ~ 2026년 7월 30일(목) 10:00~18:00
○ 휴무 : 월요일·공휴일
○ 예약 : 자유 관람
○ 장소 : 해움미술관(수원시 팔달구 매산로 133)
○ 관람료 : 무료
○ 대상 : 전체관람
○ 작가 : 김재홍, 류연복
○ 장르 : 회화, 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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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움미술관, 수원전시, 수원공연, 김재홍, 류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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