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롱드 아트리움, 외젠 들라크루아 ‘캔버스위의 격정’篇
수원SK아트리움, 프랑스 낭만주의 화가 들라크루아를 조명하다
2026-06-01 16:24:36최종 업데이트 : 2026-06-01 16:24:34 작성자 : 시민기자 진성숙
|
|
공연시작 전 관객들이 하나 둘 자리를 채운다.
이날 무대의 중심에는 프랑스 낭만주의의 거장 외젠 들라크루아(1798~1863)가 있었다. 거대한 역사와 인간 감정의 폭풍을 화폭에 담아낸 그는 19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화가다. 특히 1830년 프랑스 7월 혁명을 배경으로 한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혁명의 상징이자 낭만주의 정신의 결정체로 꼽힌다.
외젠 들라크루아가 태어난 1798년의 프랑스는 격동의 한 가운데 있었다. 나폴레옹 제국이 흥망성쇠를 겪고 유럽 전역이 혁명으로 들끓고 있는 마당이었다. 18살의 들라크루아는 미술학교에 입학해 루벤스 및 베네치아 화파의 그림들을 묘사하면서 색채에 대한 감각을 익혀나갔다. 그리고 스물넷의 젊은 나이에 '단테의 조각배'란 대단한 작품을 미술 살롱전에 내놓아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다. 그는 단순한 풍경보다는 역사적 사건이나 문학적 소재를 즐겨 그렸다.
1830년 7월 파리의 거리에 혁명의 함성이 울린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그림의 중앙에는 시쳇더미를 넘어 걸어가는 맨 가슴의 여성이 보인다. 이 자유의 여신은 실제 신이 아니라 자유, 민중의지를 의무화 한 존재이며,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민중들이 투쟁에 가담하고 있는 이 모습이 프랑스 국민정신의 상징이 되었다.
단테의 조각배. 살롱 데뷔작인 셈
무대 해설은 단순한 작품 설명에 머물지 않았다. 조수현 히스토리언은 격변의 시대를 살아간 예술가들의 고독과 우정, 그리고 예술이 시대를 어떻게 증언했는지를 생생히 풀어냈다. 들라크루아의 강렬한 붓놀림 뒤에는 늘 인간 내면의 불안과 자유를 향한 갈망이 존재했다는 설명에 객석은 깊이 빠져들었다. 특히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들라크루아와 쇼팽, 그리고 조르주 상드가 함께했던 예술 공동체의 이야기였다. 그토록 사랑했건만 끝내는 헤어져 쇼팽(결핵으로 39세에 사망)의 장례식에도 오지 않았던 상드. 쇼팽의 '이별의 노래' 연주에 그만 가슴이 먹먹해진다.
19세기 파리의 살롱 문화 속에서 이들은 서로의 예술을 이해하고 영향을 주고받았다. 들라크루아는 쇼팽의 피아노 선율 속에서 색채를 느꼈고, 쇼팽은 들라크루아의 그림에서 음악적 감정을 읽어냈다. 조르주 상드는 그들 곁에서 예술가들의 불안과 열정을 기록했다. 이날 공연에서 피아니스트 김태진은 쇼팽의 작품을 섬세하면서도 깊은 감성으로 연주했다. 잔잔하게 흐르던 선율은 어느 순간 혁명기의 파리처럼 격정적으로 요동쳤고, 객석은 숨소리조차 아끼며 무대에 집중했다. 소프라노 이예니의 목소리는 마치 들라크루아의 붉고 푸른 색채가 음악으로 번역된 듯 강렬한 울림을 남겼다.
들라크루아가 그린 쇼팽과 조르주 상드 무대 후반부에서는 들라크루아의 북아프리카 여행 이야기도 소개됐다. 그는 1832년 프랑스 외교사절단의 일원으로 모로코와 알제리를 방문했고, 그곳에서 본 이국적 풍경과 사람들의 삶은 그의 예술 세계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특히 알제리 여성들의 공간을 그린 작품들은 이후 마티스와 피카소에 이르기까지 현대미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해설자는 "들라크루아가 잠시 마주했던 낯선 세계가 결국 20세기 미술의 문을 열었다"라고 설명했다.
라흐마니노프 앙코르곡이 시작되자 공연장의 공기는 다시 한번 깊은 낭만으로 물들었다. 짧은 선율이 끝난 뒤에도 관객들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들라크루아의 초상화에 대한 경의. 65세에 타계한 그의 장례식 한달 후. 파리의 거장들이 다 모였다
공연 직후 관객들에게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평택에서 왔다는 선은정 씨는 "그림과 음악, 설명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마치 19세기 파리에 다녀온 기분이다. 그 무렵 예술가들의 관계를 이야기처럼 들려줘서 어렵지 않게 몰입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다른 남성관객은 "큰 화면으로 대가의 멋진 그림과 거기에 어울리는 멋진 음악을 같이 감상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란 찬사가 생각난다. 역사를 뒤흔든 강렬한 필치에 경외감을 느끼며 한 장의 대표 그림으로만 알고 있던 들라크루아의 그림과 생애를 이해하게 된 게 참 좋은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들려준다.
이날 공연은 그림과 음악, 역사와 인간이 서로를 비추며 살아 움직인 하나의 '예술 살롱'이었다. 들라크루아의 격정적인 색채와 쇼팽의 서정적인 선율은 시대를 뛰어넘어 수원의 낮 시간에 다시 살아났고, 관객들은 그 낭만의 흔적 속에서 잠시 19세기 파리의 예술가가 되었다. '화가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하는 사람이다' 라는 말처럼 들라크루아는 고정관념에 갇혀 있던 예술의 경계를 넓혔다.
한편, 다음 6월의 살롱 드 아트리움 공연의 주인공은 후기 인상주의 거장 폴 세잔이다. 현대미술의 아버지라 불리는 세잔의 삶과 작품 세계를 오는 6월 24일 시민들과 만나길 기대한다. ![]()
연관 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