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이 이렇게 자랑스러운 나라가 될 줄 몰랐습니다”
해병대 7기 참전용사 윤응엽 선생이 들려주는 전쟁과 인생 이야기
2026-06-16 10:54:24최종 업데이트 : 2026-06-16 10:54:20 작성자 : 시민기자 안승국
|
|
수원보훈요양원 응접실에서 인터뷰에 응하는 윤응엽 선생님 수원보훈요양원 응접실에서 만난 윤응엽(91) 선생님은 화창한 초여름 날씨만큼이나 밝은 표정과 우렁찬 목소리로 기자를 맞았다. 인터뷰가 시작되자 그는 먼저 해병대에 입대하게 된 사연부터 들려주었다. 1951년, 윤 선생님이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이었다. 정부가 해병대 전투요원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지원서를 냈다. 당시 지원 연령 기준은 19세 이상이었지만, 체격이 크고 건장했던 덕분에 나이를 속이고 입대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해병대 7기로 입대한 그는 진해 훈련소에서 500여 명의 동기들과 함께 두 달간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
윤 선생님이 전선에 투입된 것은 1951년이었다. 강원도 도솔산과 김일성고지, 장단 일대 등 격전지에서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 김일성고지 후방에 위치한 스탈린고지 전투에도 참가했다. 당시 개인 화기는 M1 소총이었다. "전쟁 당시 상황을 기록한 자료들을 아직도 집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특히 임진강 일대에서는 해병대가 전략적 요충지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전투를 벌였다. 윤 선생님은 북한군과 중공군을 상대로 싸웠던 기억을 생생하게 떠올렸다.
"많이 배우지는 못했지만 군 생활을 통해 성실함과 책임감을 배웠습니다. 덕분에 평생 남에게 손가락질받지 않고 당당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한편 전투 중 포로로 잡힌 북한군 가운데 어린 청소년들이 적지 않았던 기억도 떠올렸다. "전쟁터에서는 적이었지만 너무 어린 아이들을 보면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윤 선생님의 고향은 황해도 송화군 운휴면이다. "공산정권 아래에서 많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맞기도 많이 맞았어요." 당시 지역의 젊은이들이 향토보위대를 조직해 치안을 지키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그는 1·4후퇴 당시 백령도로 피난을 내려왔다. 가족 일부는 고향에 남았고 형들은 북한군에 끌려가기도 했다. 전쟁은 그의 삶뿐 아니라 가족의 운명까지 바꾸어 놓았다.
"얼마 전 허리 수술을 받은 것 외에는 고혈압이나 당뇨 같은 성인병도 없습니다." 지금도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일어난다. 수면 시간이 많지 않지만 일상생활에 큰 불편이 없다고 한다. "여기가 바로 천국입니다" 현재 윤 선생님은 국가유공자들이 생활하는 수원보훈요양원에서 지내고 있다. 요양원에서는 악극단 공연, 게임 프로그램, 대형 스크린 영화 및 드라마 상영 등 다양한 여가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외부 봉사자들이 간식을 전달하는 일도 많다. 무엇보다 균형 잡힌 식단과 체계적인 건강관리가 입소자들의 만족도를 높이고 있다.
윤 선생님은 "천국이 따로 없다"며 보훈요양원에 감사를 전한다
"원장님을 비롯해 간호사, 사회복지사 선생님들 모두 너무 친절합니다. 힘든 일도 많을 텐데 늘 웃으며 대해주세요. 저는 여기가 바로 천국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다른 참전용사들과 친구가 되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큰 즐거움이라고 말했다. "하루가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지내다 보면 늘 감사한 마음이 생깁니다." 윤 선생님이 말하는 해병대 정신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삶의 자세다. 그는 평생 그렇게 살아왔고, 지금도 믿음과 소망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좋은 시설에서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지원해 준 국가에 감사드립니다. 공기도 맑고 숲도 우거져 있고 옆에는 시냇물도 흐릅니다. 노년을 보내기에 이보다 좋은 곳은 없어요." ![]() 연관 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