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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를 빛낸 인물과 문화유산을 찾아가는 탐방 프로젝트
남양주시 이순지 선생 묘, 정약용 유적지 답사
2026-06-23 11:31:37최종 업데이트 : 2026-06-23 11:31:34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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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시에 있는 이순지 선생 묘 지난 20일 2026년 경기도문화유산활용사업 '경기도를 빛낸 인물과 문화유산을 찾아가는 탐방 프로젝트' 제1강 답사가 남양주시 '이순지 선생 묘', '다산 정약용 선생 유적지'에서 있었다. 하루종일 비가 내리는 가운데 답사의 열기는 뜨거웠다. 이번 2026년 '경기도문화유산활용사업'은 경기도에서 공모한 사업에 (사)화성연구회 국가유산교육위원회의 '경기도를 빛낸 인물과 문화유산을 찾아가는 탐방 프로젝트'라는 기획안이 선정되어 진행한 프로그램이다. 경기도를 빛낸 역사적 인물들의 삶과 업적을 조명하고, 관련 문화유산 현지답사를 통해 직접 탐방함으로써 인물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면서 이를 통해 경기도의 역사와 문화유산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역사적 인물이 지닌 의미와 가치를 현대적 관점에서 탐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1강은 '조선을 빛낸 천문학자, 과학자와 실학자'라는 주제로 이순지 선생 묘, 정약용 선생 묘, 생가 여유당, 실학박물관, 다산 생태공원을 답사했다. 이순지(1406-1465)는 21살에 문과에 급제한 이후 세종대왕의 눈에 들었던 천재형 과학자였다. 세종대왕의 질문에 한양의 위도를 정확히 얘기했는데 세종이 처음에는 의심했다가 중국에서 온 자가 역서를 바치며 한양의 위도가 '38도 강(强)'이란 얘기를 듣고 이순지를 천문학을 관장하게 했다. 남양주시에 있는 정약용 선생 묘 조선 초기에는 독자적인 달력이 없어 일식이나 월식 같은 국가적 천문 행사가 있을 때마다 명나라의 달력에 의존해야 했다. 하지만 중국 달력은 베이징을 기준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한양에서 관측하면 매번 오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이순지가 중심이 되어 완성한 칠정산내편(1442년), 칠정산외편(1444년)으로 인해 조선은 당대 지구상에서 이슬람권, 중국에 이어 독자적으로 천체 운동을 계산할 수 있는 세 번째 나라가 되었다. 당시 천문학은 농업 생산량을 좌우하는 절기를 맞추고 왕조의 정당성을 증명하는 국가 최고의 첨단 과학이었다. 칠정산내외편의 완성은 중국 중심의 천하관에서 벗어나 '우리의 하늘은 우리가 계산한다.'라는 자주적 과학 주권을 선포한 역사적인 저술이다. 칠정산내외편은 서로 다른 천문학 전통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한양을 기준으로 한 독자적 천문 계산'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완벽하게 이루어낸 한 쌍의 걸작이다. 동서양의 지식을 융합해 당대 세계 최고 수준의 정밀함을 달성한 인류 과학사의 위대한 자산이라 할 수 있다. 남양주시에 있는 정약용 선생 묘에서 바라본 한강 칠정산외편의 가장 위대한 가치는 태양과 달의 운동을 계산하는 정확도가 15세기 당시에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칠정산외편은 1년을 1년을 365.242188일(31,556,925초)로 계산했다. 현대 태양력 1년을 초로 계산한 31,556,926초보다 1초가 짧을 뿐이다. 코페르니쿠스(1473-1543)는 1532년에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라는 저서에서 지동설을 주장했다. 갈릴레이(1564-1642)는 1609년에 망원경을 발명했고,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했던 것이 1616년이었다. 이순지는 이들보다 100여 년 앞서 지구가 자전하고 공전한다는 사실을 알았고, 정확한 시간까지 계산해 냈다. 이 정도면 꽤 훌륭하지 않은가. 이순지 선생 묘역을 답사한 후 다산 선생 유적지로 이동했다. 다산 정약용(1762-1836) 선생은 우리에게 너무도 잘 알려진 인물이며 수원과도 친숙한 인물이다. 배다리를 고안하고 수원화성 축성에 참여한 실학자로 500여 권의 저술을 남겼다. 남양주시에 있는 다산 유적지 내의 거중기 다산 선생은 정조와 만나 관직 생활을 했던 1800년까지의 시기, 18년간 강진에 유배되었던 시기, 유배에서 풀려나 고향인 소내(현재 남양주 마재 마을)의 여유당(與猶堂)으로 돌아와 학문을 계속 정리하며 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저술 활동을 이어갔던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민보의',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 '아방강역고', '마과회통' 등의 저술을 통해 조선 사회를 개혁하려는 그의 의지를 보여주었다. 사실에 바탕을 두어 진리를 탐구한다는 태도로, 공리공론에 치우친 성리학 대신 백성의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학문 즉, 실사구시(實事求是)와 경세치용(經世致用)을 실천했다. 오늘날까지도 시대를 관통하는 공직자의 귀감이자 개혁의 상징으로 존경받고 있다. 정약용은 논어를 인용해 '불환빈 환불균(不患貧 患不均)', 백성은 가난보다 공정하지 못한 것에 분노한다고 강조했다. 다산 생태공원 정약용 선생은 조선 왕조가 가진 구조적 모순과 부정부패를 직시하고, 경세유표 서문에서 "털끝만큼 작은 일이라도 병폐 아닌 것이 없으니, 지금에 와서 고치지 않으면 반드시 나라를 망치고야 말 것이다. 이것이 어찌 충신과 지사가 팔짱 끼고 방관할 수 있겠는가."라는 위기의식을 가졌던 선구자였다. 답사에 참여한 수원시민은 "이번 답사를 통해 이순지라는 사람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훌륭했던 분이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는지 아쉽네요. 전체적인 답사 코스와 내용이 알차고 재미있어 다음번 답사에도 반드시 참여하려고 합니다. 답사를 진행한 분들께 감사드립니다."라고 소감을 말했다. '경기도를 빛낸 인물과 문화유산을 찾아가는 탐방 프로젝트'는 전체 6강으로 구성했다. 1강에 이어 2강은 6월 27일 토요일 '명재상, 청백리'라는 주제로 파주시의 황희 정승 유적지와 율곡 이이 선생 유적지'를 답사한다. 답사는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화성연구회 사무실(031-226-7223, 010-7228-7223)에서 선착순으로 접수한다. ![]() 연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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