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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에서 수원화성의 DNA를 찾다
경기도를 빛낸 인물과 문화유산을 찾아가는 탐방 프로젝트
2026-07-07 15:08:44최종 업데이트 : 2026-07-07 15:08:42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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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를 빛낸 인물과 문화유산을 찾아가는 탐방 프로젝트, 남한산성 침괘정 지난 4일 2026년 경기도문화유산활용사업 '경기도를 빛낸 인물과 문화유산을 찾아가는 탐방 프로젝트' 제3강 답사가 광주시 남한산성, 청량당, 신익희 선생 생가터에서 있었다. 장마가 시작되기 전 7월 초의 무더위 속에서도 답사의 열기는 뜨거웠다. (사)화성연구회가 주관하는 이번 탐방 프로젝트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수원화성의 탁월하고 보편적인 우수성을 객관적인 측면에서 다른 문화유산과 비교 검토하는 것은 물론, 축성 인물들의 역할을 역사적으로 검토하는데에도 있다. 문화유산 비교답사를 통해 수평적인 관점에서 비교하고 문화상대주의적 관점에서 '우리의 것이 최고다'라는 교만이나 모순에 빠지지 않기 위한 여정이기도 하다. 시대를 초월한 문화유산을 객관적인 시각에서 볼 수 있어야 그 문화유산의 정체성과 가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수원화성과 남한산성의 비교답사는 동일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란 측면보다 훨씬 중요한 면이 있다. 남한산성은 수원화성에 비해 역사가 천년이나 앞서고 몽골전쟁,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의 전쟁을 겪으면서 산성의 취약했던 부분을 곧바로 수축하는데 반영해 우리나라 산성의 보고라 여겨지고 있다. 경기도를 빛낸 인물과 문화유산을 찾아가는 탐방 프로젝트, 남한산성 수어장대 남한산성의 암문, 장대, 포루, 치 등을 직접 관찰하면 남한산성의 DNA가 어떻게 수원화성에 이식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특히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의 홍이포 공격에 취약했던 것을 보강해 남한산성 동쪽에는 외성을 쌓았고 남쪽에는 옹성을 쌓았다. 남한산성에는 5개의 옹성이 있는데 이 옹성은 수원화성의 용도가 되었다. 3강에서는 남한산성 행궁 앞 침괘정에서 남한산성 수어장대까지 올라 청량당에 모셔진 이회 장군의 이야기와 수어장대에 대한 역사적 이야기를 알아봤다. 내려올 때는 서문인 우익문, 연주봉옹성을 둘러보고 북문인 전승문까지 성곽길을 따라 내려왔다. 남한산성은 삼국사기 기록에 의하면 672년(문무왕 12년)에 주장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을 통일한 이후 당나라와의 전쟁을 준비하면서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당나라 군대에 비해 병력이 부족한 신라로서는 청야입보 전술이 최선이었을 것이며 그런 전략적 측면에서 남한산성을 당대 최고 난공불락의 산성으로 축성한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를 빛낸 인물과 문화유산을 찾아가는 탐방 프로젝트, 남한산성 청량당 남한산성은 축성 이후 지속적으로 보수를 하면서 사용하다가 고려시대에 몽골이 2차례 침략해 포위했을 때에 함락당하지 않고 물리쳤다. 광해군 때부터 북쪽의 적에 대비하기 위해 준비하다가 인조 때 이르러 무너져 내린 남한산성을 대대적으로 수축한 것이다. 남한산성은 201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고 서쪽의 장대인 수어장대는 보물로 지정되었다. 인조 때 남한산성을 수축하면서 서장대를 단층으로 지었다. 이후 1751년(영조 27년) 중층으로 세웠고 2층 안쪽에는 무망루, 밖에는 수어장대라는 현판을 달았다. 경기도를 빛낸 인물과 문화유산을 찾아가는 탐방 프로젝트, 남한산성 서문 1836년에 수어장대라는 현판 글씨를 박주수(朴周壽 1787-1836)가 썼는데 수원화성의 화성장대 글씨와 너무나도 닮았다. 당시 광주유수는 박기수(朴岐壽 1792-1847)였는데, 박주수는 박기수의 친형이었고 1828년부터 2년간 화성유수를 역임했다. 아마도 박주수가 화성유수를 역임할 당시에 정조대왕이 직접 쓴 '화성장대'라는 글씨를 유심히 보았기 때문에 얼핏 보기에 정조대왕 글씨처럼 보이는 것 같다. 이회 장군은 1624년(인조 2년) 남한산성을 수축할 당시의 인물 중 한 명이다. 남한산성의 북서쪽 구간에 비해 동남쪽 구간은 산세가 험해 성벽을 쌓기가 매우 어려웠다. 동남쪽 구간을 담당한 이회는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 꼼꼼하게 쌓느라 공사가 늦어졌다. 이를 공사비를 낭비하고 일을 게을리했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참수를 당했다. 이후에 모함이 풀리고 결백했음이 밝혀졌고 매바위 전설과 청량당이 세워졌다. 경기도를 빛낸 인물과 문화유산을 찾아가는 탐방 프로젝트, 남한산성 연주봉옹성으로 가는 암문 남한산성은 우리나라 산성중에서 가장 이상적인 형태인 고로봉 지형 성곽이다. 북쪽은 한강, 동쪽은 남한강, 서쪽은 탄천, 남쪽은 경안천이 흘러 산성 사방이 천연적인 해자로 둘러싸여 있어 입지적으로 천연 요새라 할 수 있다. 남한산성은 광주시, 성남시, 하남시에 걸쳐있다. 고로봉(栲栳峰) 지형이란 사방은 높고 성안쪽이 낮은 지형으로 남한산성과 같은 지형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민보의(民堡議)'란 저서에서 산성 축조에 가장 좋은 곳은 남한산성과 같은 지형이라고 했다, 남한산성 청량당, 수어장대 답사 후 해공 신익희(1894-1956) 선생 생가터로 갔다. 신익희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지도자로 독립운동에 헌신했고, 민족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광동의숙을 설립하는 등 교육자로서 나라의 미래를 준비하고자 했다. 광복 이후에는 국회의장 등을 역임하며 민주주의 발전과 국민주권 실현을 위해 노력한 정치인으로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이다. 경기도를 빛낸 인물과 문화유산을 찾아가는 탐방 프로젝트, 신익희 선생 생가터 생가터 뒤뜰에는 신익희 선생의 어록을 새긴 비석이 여럿 있었다. 맨 앞 비석의 글귀가 눈길을 끌었다. 한눈에 봐도 대단히 호방하고 원숙한 서예가의 글씨였다. '(國家須完全獨立 民族須澈底解放 社會必須平等, 국가수완전독립 민족수철저해방 사회필수평등)', 나라는 마땅히 완전독립 이라야 하고, 민족은 반드시 철저해방 되어야하고, 사회는 어김없이 자유평등 하여야 한다. 신익희 선생 생애를 관통는 정체성이란 생각이 든다. 답사에 참여한 시민은 "무더위에 힘이 들었지만, 너무도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다음번 답사도 기대가 됩니다. 반드시 참여하고 싶습니다."라고 소감을 말했다. 4강은 8월 29일 '성군과 고승의 발자취'라는 주제로 여주 고달사지, 신륵사, 세종대왕릉을 답사할 예정이다. 수원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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