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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릉에서 열린 제향에 참여
정조대왕의 효심을 생각하다
2026-07-14 10:29:43최종 업데이트 : 2026-07-14 10:29:41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융건릉이 있는 화산 숲

융건릉이 있는 화산 숲


지난 12일 오전 융릉에서 거행된 '융릉기신제향'에 다녀왔다. 융릉기신제향이란 장조의황제(사도세자) 264주기, 헌경의황후(혜경궁홍씨) 211주기 기일에 봉행하는 제향이다. 이호락 융릉, 건릉 봉향회장은 "그동안 이어져 온 제향의 전통 위에 처음으로 친향례를 봉행하게 되어 뜻깊은 해입니다. 친향례는 황사손이 직접 조상님의 덕을 기리고 정성을 다하여 예를 올리는 가장 경건하고 의미 있는 의식이며 오늘 제향은 장조의황제와 헌경의황후의 높은 덕과 정신을 더욱 깊이 되새기는 소중한 자리가 될 것입니다."라고 제향의 의미를 설명했다.

정조대왕은 아버지 사도세자와 어머니 혜경궁홍씨를 지극한 정성으로 모셨고 효를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으로 삼아 백성을 사랑하고 정의로운 정치를 펼치고자 했다. 융릉은 정조대왕의 효 정신이 살아 숨 쉬는 성스러운 공간이다. 제향은 단순히 선조를 추모하는 의식을 넘어 효와 충, 화합과 존경의 정신을 계승하는 뜻깊은 실천의 장이다. 산업화 도시화로 인한 핵가족화가 가속되면서 가족이 해체되고 '효'가 땅에 떨어진 세상에 살면서 깊이 성찰해보는 시간이었다.

정조대왕은 1789년 양주 배봉산의 영우원에 모셔져 있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현재의 자리인 화산으로 이장해 현륭원이라 했다. 이 자리에 있던 수원읍치를 현재의 화성행궁 자리로 이전해 신도시를 만들었고 이후 1793년 '수원'을 '화성'이라 개칭했다. 1794년부터 수원화성을 축성해 1796년 마무리하고 10월 16일 낙성연을 열었다.

융릉 앞 홍살문, 융릉기신제향이 열리기 전

융릉 앞 홍살문, 융릉기신제향이 열리기 전


정조대왕은 아버지의 묘를 수원으로 모시고 1800년까지 13차례 현륭원을 참배했다. 참배할 때마다 화성행궁에 머물렀다. 수원이 화성이란 이름으로 바뀌었지만, 수원은 정조대왕의 고향과 같은 곳이었다. 오늘날 수원시와 화성시로 갈라져 있어 화성시에는 화성이 없고 수원시에는 정조대왕의 능이 없게 되었다. 역사적, 정신적인 뿌리가 하나인데 현대인들은 이러한 사실조차 잘 모르고 있어 안타깝다. 

고종 때 사도세자를 장조로 추존함에 따라 현륭원이 융릉이 되었다. 오늘날에 장조의황제 보다는 사도세자, 헌경의황후 보다는 혜경궁홍씨가 일반인에게 익숙한 역사적인 이유이다. 이런 과정 속에서 수원이 '효원의 도시' 상징이 된 것인데, 효원의 도시도 옛말이 되어가는 듯해 안타깝다. 

오전부터 30도가 넘는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 융릉으로 갔다. 오래된 소나무가 숲을 이루어 고즈넉한 분위기이다. 봄이면 진달래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공간이기도 하다. 수원화성을 축성한 후 정조대왕은 화성 춘8경, 추8경을 정했다. 춘8경 중 제1경이 '화산서애(花山瑞靄)'였다. 아버지가 잠들어있는 화산에 상서로운 안개가 감돈다는 뜻이다. 이후 화성 16경은 수원8경으로 정리되었는데 제1경이 '화산두견(花山杜鵑)'이다. 화산 숲속 두견화(진달래꽃) 위에서 슬피 우는 두견새 소리라는 뜻이다. 세월이 흘러도 정조대왕의 효심과 사도세자를 기리는 마음은 한결같았던 것 같다.

융릉기신제향을 봉행하고 있다.

융릉기신제향을 봉행하고 있다.


융릉 앞에 도착하니 제향을 보려고 온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정자각 주변에서는 제관들이 제향을 준비하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잠시 후 황사손을 모신 어가행렬이 홍살문 앞에 이르렀다. 황사손 뒤로는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등 3명의 정승과 이조판서 등 6명의 판서, 후손과 참례객들이 뒤따랐다. 

홀기(忽記, 전통 의식에서 진행 순서와 동작을 적은 대본으로 집례자가 읽으면 참례자들이 행동으로 옮긴다)에 따라 제향이 진행되었다. 제관들이 봉무할 자리로 나아가는 것으로 시작해 국궁사배(조선시대 국가의례에서 임금이나 왕후 등에게 예를 올릴 때 하는 배법 이다.), 관세(의례에 앞서 손을 씻는 행위) 등을 한다. 제향에 참여한 참례객들도 국궁사배를 하거나 서서 네 번 절을 한다. 초헌례, 아헌례, 종헌례에 이어 축문을 태우는 망료를 끝으로 제향이 마무리 되었다. 

후손들은 정자각 앞에 있는 천막에서, 일반 참례객들은 홍살문 주변의 나무 그늘에서 제향에 참여했다. 무더위 속에서도 경건하게 제향을 지켜보았다. 

융릉기신제향을 봉행하고 있다.

융릉기신제향을 봉행하고 있다.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조선왕릉은 조선시대 왕과 왕후의 능(40기)으로 우리의 전통문화를 담은 독특한 건축양식과 아름다운 자연이 어우러진 신성한 공간이며 지금까지 이곳에서 600여 년 동안 제례가 이어지고 있는 살아있는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제향에 참여한 수원시민은 "지난해에 화령전 운한각 앞에서 열렸던 '정조대왕 탄신제향'에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제향의 진행 과정을 자세히 볼 수 있었습니다. 공간이 넓지 않아 한눈에 볼 수 있었는데 오늘은 공간이 넓고 정자각이 멀리 있어 제향의 진행 과정을 자세히 보기는 힘들었습니다. 조금 더 가까이 가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한정규님의 네임카드

융릉, 사도세자, 정조대왕, 유네스코 세계유산, 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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