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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을 타고 흐르는 선율" 역사의 울림, 마음을 두드리다
방현석 작가 강연부터 '율담'의 국악 공연까지… 광교푸른숲도서관 2026년 길 위의 인문학
2026-07-22 10:04:35최종 업데이트 : 2026-07-22 10:04:31 작성자 : 시민기자   홍송은

조민주(가야금), 박다민(대금), 박재혁(소리꾼), 서우석(타악) (왼쪽부터) 광교푸른숲도서관 제공

조민주(가야금), 박다민(대금), 박재혁(소리꾼), 서우석(타악) (왼쪽부터) 광교푸른숲도서관 제공


"역사는 결과를 기록하지만, 문학과 예술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을 복원합니다."

지난 7월 20일, 광교푸른숲도서관에서 열린 2026년 '길 위의 인문학' 첫 번째 주제 프로그램이 5차시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시대를 깨우는 선율, 역사가 기록한 연대의 기억'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프로그램은, 마지막 날 객석을 가득 채운 시민들의 훔쳐내는 눈물과 나지막한 탄식 속에서 묵직한 울림을 남기며 마무리됐다.


강의에 참여한 시민들이 관련 도서와 포스터를 구경하고 있다.

강의에 참여한 시민들이 관련 도서와 포스터를 구경하고 있다


40년 항일 투쟁사, '결과' 뒤에 가려졌던 '사람'을 만나다

이번 인문학 강좌는 역사를 단순한 사건이나 승패의 기록으로 접근하지 않았다. 우리가 일상에서 가장 가깝게 만나는 도서관이라는 공간에서, 40년 항일 무장 투쟁의 혹독한 추위를 견뎌낸 '진짜 사람들'의 숨결을 되살려내는 데 집중했다.


역사는 결과를 남기고, 문학은 인간의 과정을 남긴다. 강의를 진행하는 방현석 작가

역사는 결과를 남기고, 문학은 인간의 과정을 남긴다. 강의를 진행하는 방현석 작가


1차시와 3차시 강연을 맡은 소설 《범도》의 방현석 작가(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는 우리가 흔히 '봉오동 전투의 영웅'으로만 기억하는 홍범도 장군의 인간적인 면모를 끄집어냈다. 머슴의 자식으로 태어나 조국의 독립을 위해 기꺼이 총을 들었던 포수, 평생 가장 많이 싸우고 이겼지만 그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오직 사람만을 대했던 인물. 방 작가는 일각에서 제기되는 '연합군이 준 선물로서의 독립'이라는 인식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1905년 국권을 빼앗긴 순간부터 1945년 해방까지 40년간 단 하루도 멈추지 않았던 우리 민족의 거대한 '독립 전쟁'을 조명했다. 

역사는 봉오동 전투의 '승리'라는 결과를 기록하지만, 문학은 그 승리를 만들기 위해 만주 벌판의 추위와 죽음 앞에서 고뇌했던 인간들의 '과정'을 복원해 낸다. 방현석 작가의 말처럼, 40년 항일 무장 투쟁사 속 잊힌 이름들을 기억하고 그들이 남긴 인간적인 가치를 돌아보는 것이야말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일 것이다.


방현석 작가가 만주 루트를 소개하고 있다

방현석 작가가 만주 루트를 소개하고 있다


한일 무쟁 투쟁 루트인 ▲만주1루트 ▲만주2루트 ▲만주3루트 ▲연해주루트 ▲시베리아 바이칼루트 ▲조선의 용대 태항산 루트를 소개하며, 여행해 볼 것을 권했다. 


방현석 작가가 소설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방현석 작가가 소설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방현석 작가는 강연을 마무리하며 소설의 본질과 우리 시대 서사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묵직한 화두를 던졌다. 그는 "소설이란 우리가 직접 살아보지 못한 시간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해주는 예술"이라며, 단순히 '조선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소재에 매몰되기보다 그 이야기를 어떤 관점으로 풀어낼 것인가가 훨씬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방현석 작가가 문학과 교육의 책무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방현석 작가가 문학과 교육의 책무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어서 "이야기 그 자체가 예술이 아니라, 누구의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서술은 서사의 예술"이라고 했다. 소설가로서 끊임없이 타인의 삶을 복원하고 기록해 온 그는, 청중들에게도 우리 시대에 필요한 '진정성 있는 서사'에 대한 성찰을 당부하며 강연의 끝을 맺었다.


역사가 건네는 손길, 더불어 살아가다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 이경희 역사 강사

역사가 건네는 손길, 더불어 살아가다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 이경희 역사 강사


이어 2차시에서는 이경희 강사가 김 알렉산드라, 최재형, 홍범도, 현 엘리스 등 잔혹한 시대의 폭력 앞에서도 타인을 먼저 보살폈던 네 명의 독립운동가를 통해 오늘날 우리가 잃어버린 '연대'와 '이타주의'의 가치를 되짚었다.


이경희 역사 강사가 최초의 한인 사회주의 혁명가, 김 알렉산드라를 소개하고 있다.

이경희 역사 강사가 최초의 한인 사회주의 혁명가, 김 알렉산드라를 소개하고 있다


최초의 한인 사회주의 혁명가, 김 알렉산드라

러시아 지역에서 활동한 김 알렉산드라는 혹독한 차별과 착취에 시달리던 한인 노동자들과 민중을 위해 삶을 바쳤다. 그녀는 잔혹한 폭압 속에서도 인간다운 삶과 조국의 독립을 향한 신념을 꺾지 않았으며, 주변의 소외된 이들을 먼저 챙기는 따스함으로 사람들을 모았다. 비록 비극적인 역사의 한 페이지 속에서 생을 마감했으나, 그녀가 보여준 뜨거운 인류애와 연대의 정신은 깊은 울림을 남긴다.


이경희 역사 강사가 한인 동포들의 영원한 난로, 최재형을 소개하고 있다

이경희 역사 강사가 한인 동포들의 영원한 난로, 최재형을 소개하고 있다


한인 동포들의 영원한 난로, 최재형

연해주 한인 사회에서 '페치카(러시아어로 난로)'라 불렸던 최재형 선생은 힘없는 동포들의 거대한 버팀목이었다. 노비의 아들로 태어나 거친 선원 생활을 거치며 자수성가한 그는 막대한 부를 쌓았으나, 이를 절대 독점하지 않았다. 한인들을 위한 학교를 세우고 교육을 지원했으며, 안중근 의사를 비롯한 수많은 의병 부대의 활동을 남몰래 후원했다. 일본군의 추적 속에서도 "내가 떠나면 동포들은 어떡하느냐"라며 마지막까지 곁을 지키다 순국한 그의 삶은 이타적 연대의 정점을 보여준다.


이경희 역사 강사가 겨레를 지킨 영웅이자 민중의 사령관, 홍범도를 소개하고 있다.

이경희 역사 강사가 겨레를 지킨 영웅이자 민중의 사령관, 홍범도를 소개하고 있다.


겨레를 지킨 영웅이자 민중의 사령관, 홍범도

평민 출신 의병장에서 시작해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끈 독립군 총사령관 홍범도 장군. 그는 혹독한 시대의 폭력과 전장의 포화 속에서도 언제나 부하들과 고락을 함께하며 민중의 편에 섰다. 카자흐스탄으로의 강제 이주라는 잔인한 역사적 비극 속에서도 동포들과 함께 땅을 일구며 공동체를 지켜낸 그의 삶은, 거창한 구호보다 묵묵한 책임감으로 주변을 돌보는 연대의 가치를 증명한다.


이경희 역사 강사가 경계를 넘어 진정한 독립을 꿈꾼 여인, 현 엘리스를 소개하고 있다

이경희 역사 강사가 경계를 넘어 진정한 독립을 꿈꾼 여인, 현 엘리스를 소개하고 있다


경계를 넘어 진정한 독립을 꿈꾼 여인, 현 엘리스

목사이자 독립운동가인 아버지 현순의 뜻을 이어받은 현 엘리스는 하와이, 상하이, 블라디보스토크를 넘나들며 글로벌한 독립운동의 여정을 걸었다. 뛰어난 언어 능력으로 안락한 삶을 살 수 있었음에도 미국 시민권과 일본 식민을 모두 거부하고, 해방된 조국의 진정한 독립을 위해 헌신했다. 비록 냉전 시대의 비정함 속에서 간첩이라는 억울한 의심을 받으며 비극적으로 숙청당했지만, 국가의 폭력 앞에서도 타인을 돌보며 주체적인 삶을 살고자 했던 그녀의 자취는 강렬하다.


역사가 예술이 되어 용기와 희망으로 빛나다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 곽동기 작가

역사가 예술이 되어 용기와 희망으로 빛나다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 곽동기 작가

 

4차시 곽동기 작가는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미술의 거장 신순남 화가와 임군홍 화가의 잔혹했던 이주 역사와 캔버스에 담긴 숭고한 용기를 전하며 시민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신순남과 임근홍, 두 화가가 마주했던 현실은 가혹하리만큼 냉정했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에게 닥친 비극을 외면하거나 절망 속에 주저앉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 대신 붓을 들어 자신들이 견뎌낸 거친 역사를 숭고한 예술로 승화시켰다.

 

곽동기 작가가 신순남의 장밋빛 눈을 소개하고 있다.

곽동기 작가가 신순남의 장밋빛 눈을 소개하고 있다


신순남은 삶의 슬픔을 마침내 기쁨과 삶의 축제로 바꾸어 냈고, 임군홍은 억압의 사슬 속에서도 끝까지 예술혼을 지켜냈다. 곽동기 작가는 강연을 마무리하며 "두 화가가 남긴 흔적은 단순히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시대를 넘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고난과 시련이 찾아오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용기와 희망의 메시지"라고 강조했다.


곽동기 작가가 임군홍의 가족을 소개하고 있다.

곽동기 작가가 임군홍의 가족을 소개하고 있다


먹먹한 가슴에 울려 퍼진 율담의 선율… "역사가 예술이 된 순간"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마지막 5차시였다. 국악 연주팀 '율담'(가야금 조민주, 대금 박다민, 판소리 박재혁, 타악 서우석)이 선보인 '선율에 흐르는 역사를 듣다' 무대는 강연으로 쌓아 올린 역사의 감정을 감성적으로 폭발시키는 장이었다.


시민들의 앙코르에 아름다운 나라를 재창하고 있다.

시민들의 앙코르에 아름다운 나라를 재창하고 있다.

 

타지에서 외롭게 투쟁했던 이들의 고향을 향한 그리움을 담은 '홀로 아리랑'에 이어, 서대문형무소 여옥사 8호 감방에서 유관순 열사와 여성 독립운동가가 서로의 공포를 달래며 불렀던 '8호 감방의 노래'가 국악의 결연한 선율로 재탄생하자 객석 곳곳에서는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카자흐스탄 현장을 찾아 마주했던 고려극장과 홍범도 장군의 말년 이야기를 전하는 박재혁 소리꾼

카자흐스탄 현장을 찾아 마주했던 고려극장과 홍범도 장군의 말년 이야기를 전하는 박재혁 소리꾼

 

특히 직접 카자흐스탄 현장을 찾아 마주했던 고려극장과 홍범도 장군의 말년 이야기를 곁들이며 선보인 '날으는 홍범도' 연주는 100년의 시간을 넘어 전장에 서 있던 이들의 고독과 연대의 마음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가락이 머무는 연못'이라는 팀명처럼 고요하면서도 힘 있는 전통 음악의 정서가 현대적 감각과 어우러져 관객들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전했다.


영웅의 투쟁을 넘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던진 질문

이번 프로그램을 기획한 도서관 관계자는 "역사를 사건 중심의 지식으로 습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문학과 예술을 통해 역사 속 상처와 인간의 감정을 공감적으로 이해하도록 기획했다"라며 "독립운동과 근현대사의 서사를 영웅이나 투쟁 중심이 아닌 연민이 어떻게 실천적 연대로 확장될 수 있는지 함께 고민하는 자리가 되었기를 바란다"라고 전했다.
 

파편화되고 각박해진 오늘날, 100년 전 만주 벌판과 옥사 안에서 서로의 손을 잡았던 선열들의 뜨거운 온기. 광교푸른숲도서관을 나서는 시민들의 가슴속에는 단순한 역사의 기록을 넘어 "오늘을 어떻게 더불어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묵직한 질문 하나가 깊게 새겨져 있었다.


2026년 길 위의 인문학 광교푸른숲도서관 시대를 깨우는 선율, 역사가 기록한 연대의 기억 포스터

2026년 길 위의 인문학 광교푸른숲도서관 시대를 깨우는 선율, 역사가 기록한 연대의 기억 포스터

홍송은님의 네임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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