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피카소를 보러 갔다가, 나혜석을 만났다
수원문화예술아카데미 작가들, 퐁피두센터 한화 개관전 관람기
2026-07-23 17:02:50최종 업데이트 : 2026-07-23 17:02:46 작성자 : 시민기자   강남철
관람객으로 붐비는 1전시실 전경, 퐁피두센터 한화 개관전 《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 전시장. 벽이 둥글게 휘어 있다.

관람객으로 붐비는 1전시실 전경, 퐁피두센터 한화 개관전 《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 전시장. 벽이 둥글게 휘어 있다.


피카소를 보러 갔다가 나혜석을 만났다. 나혜석 거리를 걸어 본 수원 사람은 많다. 그러나 그 이름의 주인이 어떤 그림을 그렸고 어떻게 살다 갔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사람을 여의도에서 만났다.

지난 7월 21일, 수원문화예술아카데미 작가 모임 회원들이 서울 여의도 63빌딩을 찾았다. 지난 6월 문을 연 퐁피두센터 한화의 개관전 《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을 보기 위해서였다. 피카소와 브라크의 진품을 서울에서 본다니, 출발 전부터 마음이 앞섰다.

회원들은 저마다 작품을 만들고 전시를 여는 작가들이다. 그림을 그리는 작가에서 보는 관람객으로 자리를 바꿔 보자는 것이 이 모임의 뜻이다. 작품 활동에도 도움이 되기에, 그래서 해마다 두 번 함께 전시를 보러 간다. 입장료가 비싼 전시는 단체에서 일부를 보조한다.

퐁피두센터 한화는 파리 퐁피두센터가 한화문화재단과 손잡고 세운 미술관이다. 스페인 말라가, 중국 상하이에 이은 세 번째 해외 분관이다.

전시가 다루는 큐비즘은 100여 년 전 파리에서 시작된 그림 방식이다. 그전까지 화가들은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렸다. 가까운 것은 크게, 먼 것은 작게 그리는 식이다. 큐비즘은 그 규칙을 버렸다. 한 물건을 앞에서 본 모습과 옆에서 본 모습을 한 화면에 겹쳐 놓았다. 그림이 깨진 유리처럼 보이는 까닭이다.

이번 전시는 그 방식이 어떻게 생겨나 어떻게 퍼졌는지를 보여준다. 젊은 화가 두 사람이 시작한 실험이 20년 만에 유럽 미술의 공통 언어가 되기까지의 과정이다. 걸린 작품은 91점, 1907년부터 1927년까지를 여덟 구역으로 나눴다.

곡면 벽과 어두운 바닥, 멀리 연표 벽면, 낮은 조명과 휜 벽을 따라 작품이 이어진다.

곡면 벽과 어두운 바닥, 멀리 연표 벽면, 낮은 조명과 휜 벽을 따라 작품이 이어진다.


전시장에 들어서니 예상과 달랐다. 벽이 곧지 않고 둥글게 휘어 있었다. 사람은 많았다. 그림 앞마다 서너 명씩 서서 좀처럼 자리를 비켜 주지 않았다.

브라크 기타 연작 2점, 갈색조, 갈색과 회색뿐인 화면. 제목을 보고 나서야 기타 줄이 보인다.

브라크 기타 연작 2점, 갈색조, 갈색과 회색뿐인 화면. 제목을 보고 나서야 기타 줄이 보인다.


브라크와 피카소의 그림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갈색과 회색뿐이었다. 무엇을 그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제목을 보니 〈기타를 든 남자〉였다. 다시 보니 화면 가운데 기타 줄 같은 선이 몇 가닥 지나가고 있었다. 알아보기까지가 오래 걸리고, 알아보고 나면 반갑다.

소니아 들로네 〈전기 프리즘〉과 관람객, 커다란 동그라미가 겹치며 돌아간다. 관람객이 가장 많이 몰린 자리.

소니아 들로네 〈전기 프리즘〉과 관람객, 커다란 동그라미가 겹치며 돌아간다. 관람객이 가장 많이 몰린 자리.


몇 걸음 더 가자 색이 터졌다. 소니아 들로네의 〈전기 프리즘〉이다. 커다란 동그라미들이 겹치며 돌아간다. 사람이 가장 많이 몰린 곳도 이 앞이었다. 갈색 그림을 오래 보고 온 눈에는 눈이 부실 정도였다. 다만 무채색 화면 사이에 이런 그림이 불쑥 끼어들어 흐름이 끊기는 느낌도 있었다.

피카비아 〈우드니〉 정면, 가로세로 3m에 가까운 화면이 벽 하나를 차지한다.

피카비아 〈우드니〉 정면, 가로세로 3m에 가까운 화면이 벽 하나를 차지한다.


프랑시스 피카비아의 〈우드니〉는 벽 하나를 통째로 차지했다. 가로세로 3m에 가깝다. 쉬잔 뒤샹, 마리아 블랑샤르 같은 여성 화가의 작품이 나란히 걸린 것도 눈에 띄었다.

피카소 무대 막, 액자 없이 걸린 커다란 천. 기타를 치는 사람과 바이올린을 켜는 사람이 또렷하다.

피카소 무대 막, 액자 없이 걸린 커다란 천. 기타를 치는 사람과 바이올린을 켜는 사람이 또렷하다.


마지막 방에는 액자 없는 그림이 걸려 있었다. 피카소가 발레 무대를 위해 그린 커다란 천이다. 기타를 치는 사람과 바이올린을 켜는 사람이 또렷하다. 깨진 유리 같던 그림들을 지나온 끝이라 더 그랬다. 20년 동안 형태를 부수기만 하던 화가가, 마지막에 다시 사람의 모습을 그려 놓은 셈이다.

나혜석 코너 설치 전경, 1926년 동아일보 인터뷰가 벽에 옮겨져 있다.

나혜석 코너 설치 전경, 1926년 동아일보 인터뷰가 벽에 옮겨져 있다.


91점을 다 보고 계단을 올라 3층으로 갔다. 특별 섹션 '코리아 포커스'다. 낯선 외국 이름이 끝나고 우리말이 시작되는 자리다. 벽 한 면이 한 사람의 말로 채워져 있었다. "그림을 그리게 된 동기가 어디 있느냐구? 그것은 심히 간단하외다." 1926년 5월 18일 자 동아일보에 실린 인터뷰다. 말한 사람은 나혜석이다. 피카소를 보러 갔다가 나혜석을 만난 것이다.

수원문화예술아카데미 작가모임 회원인 정현숙 작가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나혜석 코너가 자그맣게 마련돼 있어 반가웠다"라고 했다. 솔직히 피카소보다 반가웠다. 그림의 값을 견주자는 말이 아니다. 91점을 지나오는 동안 눈에 담은 이름은 모두 남의 것이었는데, 여기서 비로소 아는 사람을 만났다는 뜻이다.

나혜석(1896~1948)은 수원 사람이다. 지금의 팔달구 신풍동에서 태어나 1910년 수원 삼일여학교, 지금의 매향중학교를 첫 졸업생 네 명 가운데 한 명으로 나왔다. 1933년에는 고향에 돌아와 미술연구소를 열었다. 인계동 나혜석거리는 2000년에 만들어졌다.

우리나라 첫 여성 서양화가였다. 1927년 세계 일주 길에 파리에 머물며 그림을 배웠다. 반가웠던 만큼 아쉬움도 남았다. 수원에서 온 사람이라면 더 그랬을 것이다. 나혜석을 소개하는 글도, 걸린 작품도 적었다. 

섹션 서문 벽면, 여덟 구역마다 한국어와 영어 서문이 길게 붙어 있다.

섹션 서문 벽면, 여덟 구역마다 한국어와 영어 서문이 길게 붙어 있다.


전시 전체를 두고 보면 아쉬운 점도 있었다. 91점은 한 번에 보기에 많다. 시간을 넉넉히 잡지 않으면 다 볼 수 없다. 결국 두 번 걸음을 해야 했다.

설명 글도 너무 많았다. 여덟 구역마다 긴 서문이 한국어와 영어로 나란히 붙어 있다. 연표와 인용문, 작품마다 달린 해설까지 더해진다. 글을 다 읽고 나면 그림을 볼 힘이 남지 않는다. 친절이 지나치면 감상을 밀어낸다. 정현숙 작가도 "작품과 전시 서문의 배치가 좀 더 조율됐으면 좋겠다. 우리 모임도 전시할 때 참고가 많이 될 듯 싶다."라고 말했다.

수원에서도 낯선 것과 마주할 기회가 열렸다. 수원시립미술관이 7월 23일부터 11월 1일까지 행궁 본관에서 2026 국제전 《패트리샤 피치니니: 킨쉽》을 연다. 사람도 짐승도 아닌 생명체를 실리콘으로 빚어내는 작가다.

큐비즘이 100년 전 '어떻게 볼 것인가'를 물었다면, 이 전시는 '무엇을 가족으로 볼 것인가'를 묻는다.

[전시 정보]
○ 전시명 : 《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
○ 기   간 : 2026년 6월 4일 ~ 10월 4일
○ 장   소 : 퐁피두센터 한화 (서울 영등포구 63로 50)
○ 구   성 : 퐁피두센터 소장품 91점, 8개 섹션 + 특별 섹션 '코리아 포커스'
○ 문   의 : 02-789-5550 (홈페이지 바로가기)
강남철님의 네임카드

수원전시, 수원공연, 수원문화예술아카데미, 나혜석, 피카소, 퐁피두센터 한화, 수원시립미술관

연관 뉴스


추천 5
프린트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

독자의견전체 0

SNS 로그인 후, 댓글 작성이 가능합니다. icon 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
QUICK MEN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