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발하기 직전 연무대에서
8월의 태양이 내리쬐는 도심은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숨이 막힐 만큼 뜨거웠다. 기상청의 폭염경보가 내려진 지난 8월 3일 오후, 수원화성 창룡문 옆 연무대(동장대) 앞 광장에는 수원의 역사적 정체성을 알리고 선열들의 희생과 정신을 시민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이들이 모였다. 바로 '수원독립운동의 길' 해설사들이다.
이번 모임은 단순한 이론 교육을 넘어 수원 곳곳에 남아 있는 독립운동 관련 주요 현장을 직접 답사하며 현장 해설 역량을 높이기 위한 '하반기 집중 역량 강화 학술 답사'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8월 3일부터 5일까지 수원시자원봉사센터 정재성 팀장의 안내로 독립운동의 길을 따라 걸었다. 해설사들은 각자 사료집과 필기도구를 준비해 100여 년 전 수원 곳곳에서 울려 퍼졌던 만세운동의 의미와 독립을 향한 염원을 되새기며 답사의 첫발을 내디뎠다.
출발지인 연무대는 조선시대 군사들의 무예 훈련과 지휘가 이루어졌던 공간으로, 외세의 침략에 맞서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수원의 역사적 정신이 깃든 장소다. 해설사들은 이곳에서 답사 경로를 확인하고, 수원이 경기지역 독립운동의 중요한 거점으로 자리 잡게 된 역사적 배경을 함께 살펴보며 일정을 시작했다.
첫 번째 답사지는 방화수류정이었다. 오늘날 많은 관광객이 찾는 아름다운 정자이지만, 일제강점기에는 수원 지역 독립운동과 관련된 역사적 공간으로 기억되는 장소다. 이어 답사단은 삼일학교와 아담스기념관 등 교육과 종교를 기반으로 한 민족운동의 현장으로 이동했다.
수원 독립운동은 기독교계와 교육계의 활동이 중요한 기반이 됐다. 답사단은 이하영 묘터와 수원삼일학교 터, 아담스기념관을 차례로 둘러보며 당시 민족교육이 지닌 의미를 되짚었다.

연무대를 지나서 삼일학교로 가고 있다
삼일학교를 중심으로 한 교육 활동은 일제강점기 민족의식을 키우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하영 목사와 김세환 선생 등 지역 인사들은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에게 지식뿐 아니라 시대적 책임과 나라를 향한 의식을 심어주었다.
아담스기념관 앞에 선 해설사들은 당시 교육 현장의 모습과 독립운동 관련 자료를 함께 살펴보며, 일제의 감시 속에서도 이어졌던 민족교육의 의미를 공유했다.
이어 답사단의 발걸음은 수원삼일여학교와 여성 독립운동가 차인재 선생 관련 장소로 이어졌다.
3·1운동 당시 여성들도 독립운동의 중요한 주체로 참여했다. 차인재 선생은 수원 지역 여성들의 만세운동 참여를 이끈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이날 해설사들은 여성 독립운동의 의미와 그동안 상대적으로 조명받지 못했던 여성들의 역할을 함께 살펴봤다.

삼일학교 내에 있는 임면수, 이하영 선생 동상, 당신들이 있어 현재 우리가 있다.
행사에 참여한 임미송 해설사는 "차인재 선생의 삶을 접할 때마다 시대의 한계를 넘어 행동했던 용기에 깊은 감명을 받는다"며 "기존의 독립운동 서사에서 더 나아가 수원의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시민들에게 알릴 수 있도록 해설 내용을 보강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답사단은 필동(必東) 임면수 선생의 생가터와 묘터를 찾았다. 임면수 선생은 수원 출신 독립운동가로, 삼일학교 설립과 교육 활동에 참여했으며 만주로 망명해 신흥무관학교 설립과 독립군 양성에 힘쓴 인물이다.
해설사들은 도심 곳곳에 남아 있는 임면수 선생의 흔적을 따라가며, 한 사람의 삶이 지역의 역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살펴봤다. 나라를 잃은 시대에 교육과 무장 독립운동을 통해 항일 의지를 이어간 선생의 행적은 오늘날에도 깊은 의미를 전하고 있다. 답사에 참여한 해설사들은 임면수 선생의 삶을 시민들에게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것인지 의견을 나누며, 단순한 인물 소개를 넘어 시대적 배경과 지역사 속 의미를 함께 전달하는 해설 방향을 고민했다.
답사단의 발걸음은 기생 김향화 선생 관련 장소로 이어졌다. 김향화 선생은 1919년 3·1운동 당시 수원 지역 여성들의 독립만세운동 참여를 이끈 인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수원 자혜의원 소속 기생들과 함께 만세운동에 참여한 김향화 선생의 이야기는 신분과 사회적 한계를 넘어 나라를 위한 뜻을 행동으로 옮긴 사례로 기억되고 있다.
해설사들은 김향화 선생의 삶을 시민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의견을 나누며, 단순한 역사 설명을 넘어 인물의 선택과 시대적 배경이 함께 전달될 수 있는 해설 방향을 고민했다. 아름다운 수원의 풍경 속에 남아 있는 독립운동의 흔적과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이야기를 연결하는 것이 이번 답사의 중요한 과제였다.

최근에 만들어진 수원독립운동가 7인의 벽화. 당신들이 있어서 현재 우리가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다.
이어 수원 만세운동의 중심 인물인 김세환 선생 생가터와 박선태 집터를 찾았다. 이곳에서는 1919년 수원 지역 만세운동이 준비되고 확산되는 과정에서 기독교계, 천도교계, 상인, 학생 등 다양한 계층이 어떻게 연대했는지를 살펴보는 시간이 마련됐다.
해설사들은 독립운동을 특정 인물의 활약만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가 함께 만들어낸 역사적 움직임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점에 의견을 모았다.
윤기영 해설사는 "단편적인 인물 소개를 넘어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연결되고 함께 움직였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수원 독립운동은 연대와 협력의 역사라는 점을 시민들에게 전달하고 싶다"고 말했다.
답사의 마지막 구간은 민중들의 삶이 녹아 있는 수원상업강습소 터와 수원시장으로 이어졌다. 수원시장은 1919년 당시 장날을 맞아 모인 시민들이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던 역사적 공간이다. 해설사들은 현재 상인들과 시민들이 오가는 시장 골목을 걸으며,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시대의 변화 속에서 독립운동의 주체로 나섰는지를 설명하는 방법을 함께 고민했다.
연무대에서 시작해 수원시장까지 이어진 도보 답사를 마친 해설사들의 얼굴에는 땀이 맺혀 있었지만, 현장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새로운 배움에 대한 열의가 담겨 있었다.
김진우 수원시자원봉사센터 대리는 "오늘 우리가 걸은 길은 단순한 역사 유적지가 아니라 현재 수원 시민들이 살아가는 생활 공간과 이어져 있다"며 "우리가 걷는 이 땅에 어떤 역사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는지를 시민들에게 올바르게 알리는 것이 해설사들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번 8월 학술 답사는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기록 속에 머물던 역사를 시민들의 일상 공간으로 연결하는 계기가 됐다. 수원의 독립운동사는 박물관 속 기록으로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시민들이 걸어가는 거리와 공간 속에서 다시 기억되고 있다. 끊임없는 연구와 현장 활동을 이어가는 '수원독립운동의 길' 해설사들의 노력은 지역 역사에 대한 시민들의 이해를 넓히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