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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피해 떠난 박물관 나들이, 2천 년 서예의 역사를 만나다
수원박물관 한국서예박물관에서 만나는 우리 서예
2026-08-10 15:13:54최종 업데이트 : 2026-08-10 15:13:52 작성자 : 시민기자   차봉규

서예 유물전시회가 열리고있는 박물관 입구

서예 유물전시회가 열리고있는 박물관 입구


요즘 같은 폭염에 찾아갈 만한 곳으로 피서도 하고 역사 공부도 할 수 있는 박물관이 제격이다. 수원박물관에 들어서니 에어컨으로 냉방된 실내가 시원하게 느껴진다. 수원박물관에는 수원역사박물관과 한국서예박물관 등이 마련돼 있어 수원의 역사와 우리나라 서예의 흐름을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다. 특히 한국서예박물관에서는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 조선시대와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별 서예의 발전과 서체의 변화를 보여주는 다양한 서예 유물과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울산 태화강변의 반구대 암각화 물고기들이 새겨져있다

울산 태화강변의 반구대 암각화 물고기들이 새겨져있다

한국서예박물관에 들어서면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가 눈길을 끈다. 암각화는 선사시대 사람들이 암석에 동물이나 물고기 등의 모습을 새긴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암각화로는 울산 태화강변의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 고령 양전동 암각화 등이 있다. 암각화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시베리아와 몽골 등 동북아시아 지역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다.

 

서예(書藝)는 한자문화권인 중국, 한국, 일본 등에서 발달했다. 예부터 서예는 단순히 글씨를 쓰는 기술을 넘어 사람의 교양과 인격을 보여주는 중요한 수양의 한 방법으로 여겨졌다. 양반 계층과 선비들은 품격을 갖추기 위해 끊임없이 글씨를 연마했다. 서체는 문자의 형태가 발전하고 변화하는 과정에 따라 전서(篆書), 해서(楷書), 행서(行書), 초서(草書) 등으로 나뉜다.
 

한자는 그림에서 시작해 점차 기호로 변화·발전했다. 중국 고대의 서예 관련 유물을 살펴보면 한자와 서예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그 흐름을 엿볼 수 있다.아래 사진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석각문 가운데 하나인 주나라의 '석고문'을 탁본한 것이다. 거북 등처럼 생긴 돌에 글자 모양이 새겨져 있다. 석고문과 관련된 탁본 자료를 통해 고대 중국의 문자와 서예 문화를 살펴볼 수 있다.
돌에 그림모양의 글자가 새겨진 주나라 석고문 탑본

돌에 그림모양의 글자가 새겨진 주나라 석고문 탑본

 

우리나라 서예의 시작을 살펴볼 수 있는 삼국시대를 비롯해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의 다양한 서예 유물을 만날 수 있다.중국에서 전래된 서예 문화가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를 거쳐 고려시대에 이르면서 우리 문화 속에 자리 잡고 발전해 온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시대별 유물을 따라가다 보면 글씨체의 변화뿐만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문화와 정신세계도 엿볼 수 있다.
 

고려 말부터 조선 초기에는 여러 서체가 혼용됐지만, 신진 성리학자들을 중심으로 송설체(松雪體)가 유행했다. 조선이 개국하면서 송설체는 나라의 글씨로 자리를 잡아갔고, 그 중심에는 안평대군이 있었다. 안평대군은 원나라 조맹부의 서풍을 익혀 송설체의 대가로 평가받았다. 전시된 작품을 통해 당시 왕실과 선비 사회에서 유행했던 서체와 서예 문화를 살펴볼 수 있다.

안평대군이 쓴 궁중행락사

안평대군이 쓴 궁중행락사

 

조선 중기에는 송설체가 토착화되면서 조선적인 서풍으로 변화했다. 이후 왕희지의 서체를 바탕으로 강하고 단정한 서풍이 등장하면서 조선 서예는 새로운 변화를 맞았다. 특히 석봉 한호의 글씨는 단정하고 힘 있는 서체로 유명하며, 조선 중기 서예를 대표하는 서풍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다.
 

조선시대 임금이 지은 글을 어제(御製)라 하고, 임금이 직접 쓴 글을 어필(御筆)이라고 했다. 전시된 영조의 어제와 어필 관련 자료를 통해 임금이 직접 글을 짓고 쓴 글씨가 어떻게 기록되고 보존됐는지 살펴볼 수 있다.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새겨진 글씨를 바라보니 당시 왕실의 문화와 서예에 대한 관심을 엿볼 수 있다.

영조 임금이 쓴 어제와 어필

영조 임금이 쓴 어제와 어필

조선 후기에는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가 혁신적인 서법 이론을 주장하면서 추사체가 등장했고, 조선의 서예는 큰 변화를 맞았다. 추사 김정희의 독창적인 서체는 당시 서예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이후 많은 문인과 서예가들이 그의 서풍을 계승하고 발전시켰다. 구한말에는 외세의 침략과 사회적 혼란이 이어지면서 서예 역시 시대적 변화를 겪었다. 그 가운데서도 전통적인 서법을 지키려는 선비와 유학자들을 통해 조선의 서예 전통은 명맥을 이어갔다.

 

구한말부터 해방 이후까지 활동했던 명인들의 글씨에서는 다양한 서풍(書風)을 살펴볼 수 있다.추사의 제자인 소치(小癡) 허련(許鍊)을 비롯해 정학교, 김성근, 김가진 등은 조선 후기의 전통적인 서풍을 이어갔다. 이후 시대가 변화하면서 독립운동가와 정치인, 문인 등 다양한 인물들이 자신만의 개성 있는 서체를 선보였다. 특히 손재형은 근현대 서예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 서예에 대한 연구와 활동을 통해 우리나라 서예의 전통을 이어가는 데 기여했다.
 

아래 작품은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인 백범 김구(1876~1949) 선생이 해서체(楷書體)로 쓴 해서대련(楷書對聯)이다.

백범 김구선생이 해서체로 쓴 족자

백범 김구선생이 해서체로 쓴 족자

 

조선시대에는 궁중에서 그림과 관련된 일을 담당하는 기관으로 도화서(圖畫署)가 있었다. 도화서에 소속된 화원들은 왕실의 주요 행사와 인물, 풍경 등을 그림으로 기록했다. 궁중의 중요한 행사를 기록한 그림 가운데 정조의 능행차나 혜경궁 홍씨의 진찬연을 그린 기록화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화원들은 임금의 모습을 그린 어진(御眞)을 제작하는 일을 맡기도 했다.
 

고려시대에는 묵죽과 묵매가 유행했고, 조선시대에는 사군자 그림에 뛰어난 인물들이 많았다. 유덕장(柳德章)은 묵죽(墨竹)으로, 어몽룡(魚夢龍)은 묵매(墨梅)로,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은 묵란(墨蘭)으로 유명하다.
 

전시된 작품으로는 김규진(1863~1933)의 풍죽도를 비롯해 지운영의 어부도, 김유탁의 매화도, 난초와 국화, 사군자 등 다양한 회화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해방 이후 한글 전용화가 진행되면서 한자의 사용이 점차 줄어들었고, 지금은 일부 사람들이 취미로 한자 서예를 배우는 정도가 됐다. 하지만 조선 말기부터 대한민국 정부 수립 초기까지 붓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서예가들의 작품을 통해 우리 서예의 전통과 맥을 살펴볼 수 있다. 고봉주, 김기승 선생 등 근현대 서예가들의 작품에서는 시대에 따라 변화한 서체와 서풍을 만날 수 있다.

삼국시대 유물을 살펴보는 관람객

삼국시대 유물을 살펴보는 관람객

 

50대로 보이는 한 여성에게 관람 소감을 물어봤다."우리는 한글 세대라 서예에 대해 잘 모르지만, 유물을 살펴보니 우리 선조들은 한자문화권에 속해 우리나라 서예문화 발전에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유물이나 기록을 통해 과거 선조들의 삶과 문화, 역사를 알 수 있어 좋았다. 많은 사람들이 박물관을 방문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폭염이 이어지는 요즘, 시원한 실내에서 우리 역사와 전통문화를 함께 만날 수 있는 박물관은 좋은 피서지이자 배움의 공간이다. 수원박물관 한국서예박물관에서는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우리 서예의 아름다움과 시대에 따라 변화해 온 서체의 흐름을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다. 더위를 피해 시원한 박물관에서 선조들의 글씨와 그림을 감상하며 역사와 문화를 배우는 것은 무더운 여름을 보내는 또 하나의 의미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방문 안내

  • 관람시간: 09:00~18:00

  • 입장마감: 17:00

  • 휴관일: 매주 월요일

  • 대중교통: 400, 720-1, 700-2, 80, 5-3, 60번 버스 이용 경기대 후문 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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