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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깨어난 100년 전 수원, 광복절 밤 '산루리 모-단길'의 숨결을 걷다
‘2026 수원 국가유산 야행(夜行)’, ‘수원근대거리’해설
2026-08-18 17:31:37최종 업데이트 : 2026-08-18 17:31:32 작성자 : 시민기자 김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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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근대거리 해설 투어를 시작하면서(수원향교 앞 홍살문)
수많은 프로그램 중에서도 사전 예약 개시 직후 단 몇 분 만에 전 회차가 마감되어 많은 관심을 받았던 프로그램은 코스 투어인 '산루리 모-단길 근대여행(2코스)'였다. 수원의 옛 지명인 '산루리(山樓里)'와 근대의 '모던(Modern)'을 결합한 이 길은 일제강점기 수원의 고됨과 저항, 그리고 근대화의 희망이 얽혀 있는 수원 근대 역사의 압축판이었다. 이날 오후 6시부터 이루어진 행사는 20여 명의 참가자들이 설레는 표정으로 집결지인 수원향교 앞으로 모여들었고 수원 근대거리해설사들이 이들을 반갑게 맞이하였다.
본 기자는 19:00부터 이루어진 남미현 수원 근대여행해설사가 인도하는 수원 국가유산 야행 '근대거리 2코스' 탐방에 참여하여 같이 길을 걸었다. 참고로 남미현 근대역사해설사는 연세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일선 학교에서 오랫동안 역사를 가르쳐왔으며, 퇴직 후 인문학과 역사를 강의하는 전문 해설사이다. 탐방지 개요는 다음과 같이 이루어졌다. - 2코스: 수원향교 앞(집결) ➔ 교동 인쇄골목 ➔ 구 수원문화원 ➔ 구 수원시청사 ➔ 수원 중화교회 ➔ 수원 구 부국원 ➔ 성공회 수원교회 ➔ 팔달사 ➔ 남문 로데오 청소년 문화 공연장 구 수원문화원사 안점순 할머니 기억의 방 시간이 되자 투어단의 역사 여행을 책임질 주인공인 남 해설사가 환한 미소와 함께 마이크를 잡았다. 남 해설사는 특유의 차분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는 목소리로 참가자들을 단숨에 100년 전의 시간 속으로 이끌었다. 남 해설사는 향교를 출발해 첫 번째 거점인 교동 인쇄 골목에서 가던 걸음을 멈추었다. "이곳 교동 인쇄 골목은 일제강점기 '수원인쇄주식회사'가 자리를 잡으면서 시작된 곳입니다. 일본인들의 인쇄소에 맞서 우리 선조들이 눈물겹게 지켜낸 지식의 요람이자 문화의 산실이었죠. 활자가 하나하나 찍힐 때마다 우리 민족의 독립에 대한 염원과 계몽의 정신도 함께 찍혀 나왔던 삶의 터전입니다." 남 해설사의 상세한 설명에 참가자들은 무심코 지나치던 낡은 인쇄소 간판과 골목 벽면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투어단의 발걸음은 고풍스러운 멋을 풍기는 구 수원문화원과 구 수원시청사 건물을 지나, 이번 코스의 가장 핵심적인 역사적 장소인 '수원 구(舊) 부국원'으로 향했다. 일제강점기 작물 종자와 농기구를 판매하던 회사로 식민지 농업 수탈의 전초기지 역할을 했던 아픈 역사를 가진 건물이다. 해방 이후에는 법원, 병원, 인쇄소 등으로 변모하며 수원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버텨낸 상징적 공간이기도 하다. 현재는 멋진 근대 문화공간이자 전시관으로 탈바꿈했지만, 구 부국원 건물은 아직도 근대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구 수원 부국원 앞에서 남 해설사는 가슴 벅찬 목소리로 해설을 이어갔다."오늘처럼 뜻깊은 광복절 밤에 이 구 부국원 건물 앞에 서니 감회가 더욱 새로워집니다. 과거 우리 국토와 자원을 빼앗아 가던 침탈의 상징이었던 이 공간이, 이제는 시민들이 모여 역사를 배우고 미래를 논하는 문화공간으로 되돌아왔습니다. 건물 자체가 바로 우리가 쟁취해 낸 '광복(光復)'의 살아있는 증거이자 위대한 기록물인 셈입니다." 남 해설사의 진정성 어린 메시지를 들은 참가자들은 감동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부국원의 붉은 벽을 손으로 어루만지며 저마다의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투어가 중반을 넘어서면서 낭만과 역사의 깊이는 한층 더 짙어졌다. 코스는 중화교회, 성공회 수원교회와 전통 사찰인 팔달사로 이어졌다. 기독교, 성공회, 불교라는 각기 다른 종교 건축물이 하나의 골목길 주변에 조화롭게 공존하는 이 독특한 구조에 대해 남 해설사는 '수원이 가진 포용성과 상생의 정신'이라는 흥미로운 화두를 던졌다.
특히 도심 속 전통 사찰인 팔달사에 이르렀을 때, 절정을 이루었다. 고풍스러운 사찰의 경내에서는 남 해설사의 이야기는 깊이를 더해갔다. "일제의 탄압이 극에 달했던 민족의 암흑기에도 이 골목의 종교계는 서슬 퍼런 감시를 피해 독립운동가들을 숨겨주고, 지친 시민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던 요람이었습니다. 서로 믿는 신과 종교는 달랐지만, 민족의 독립과 평화라는 하나의 거대한 염원 아래 서로 연대하고 상생했던 곳이죠.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오늘날 본받아야 할 진정한 수원의 정신입니다." 어려운 역사적 사실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쉽고 흥미진진하게 풀어내는 남 해설사의 흡인력 있는 스토리텔링에 어린이 참가자부터 나이 드신 어르신까지 모두가 귀를 기울였다. 해질녘 팔달사에서 약 1시간 동안의 근대 거리 2코스 탐방은 화려한 야간 공연이 한창인 남문 로데오 청소년 문화 공연장에 도착하면서 막을 내렸다. 투어를 마무리하며 남 해설사는 참가자들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추며 잔잔한 소회를 전했다. "오늘 저와 함께 숨 가쁘게 걸으신 이 '산루리 모-단길'은 단순히 빛바랜 사진첩 속이나 박물관 유리창 안에 갇혀 있는 과거의 잔해가 아닙니다. 아픔을 이겨내고 끊임없이 재생해 온 수원의 심장이자, 지금도 살아 숨 쉬는 현재 진행형의 역사입니다. 오늘 밤 이 오래된 골목길을 걸으며 느끼신 역사의 온기와 감동이, 여러분의 바쁜 일상에서도 작은 위로와 희망의 등불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남 해설사의 마지막 멘트가 끝나자마자 투어단 사이에서는 박수갈채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여름밤을 잊게 만든 명품 해설에 대한 진심 어린 감사의 표시였다.
가족의 손을 잡고 울산에서 수원을 찾았다는 참가자 신영래 씨는 인터뷰에서 "단순히 수원의 화려한 야경과 축제 분위기를 즐기러 왔다가, 해설사님의 깊이 있는 스토리텔링 덕분에 광복절의 참된 의미를 가슴 깊이 새기게 되었다"며 "아이들에게도 교과서 밖의 진짜 살아있는 역사를 선물해 준 것 같아 뜻깊은 하루가 되었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2026 수원 국가유산 야행'은 일회성 공연 위주의 소비적 축제를 넘어, 역사적 장소가 가진 본질적인 가치와 서사를 해설사의 목소리로 생생하게 전달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한 차원 높은 고품격 문화재 향유 축제로 확고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100년 전의 어둠을 깨치고 빛으로 다시 태어난 수원의 근대 거리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여전히 깊은 울림과 질문을 던지고 있다. ![]() 연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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