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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마르트의 별, 툴루즈 로트렉을 만나다
수원SK아트리움 ‘살롱 드 아트리움’에서 만난 로트렉의 예술과 삶
2026-08-26 09:45:15최종 업데이트 : 2026-08-26 09:45:12 작성자 : 시민기자   진성숙

로트렉  말 그림

신체가 부자유한 로트렉은 말 그림을 자주 그렸다.로트렉 5

로트렉 .물랭가의 살롱에서 (1894)

8월 22일 수원SK아트리움 대공연장에서 열린 '살롱 드 아트리움'은 로트렉의 작품과 삶을 음악·무용·뮤지컬·연기가 어우러진 무대로 풀어내며 관객을 19세기 말 파리로 초대했다. 여태까지 살롱드 아트리움은 평일 오전 소극장에서만 진행되어오다 처음으로 대극장 1층 600석의 객석을 꽉 채운 가운데 주말에 열렸다. 아마도 그동안의 자자한 명성이 직장인도 볼수 있게 주말에 대극장에서도 열리게 했나보다.

 

19세기 말 파리, 에펠탑이 세워지고 거리마다 새로운 예술과 욕망이 넘쳐나던 벨 에포크 시대. 화려한 도시의 밤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바라본 한 예술가가 있었다. 바로 프랑스 화가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1864~1901)이다.

공연은 로트렉이 직접 자신의 삶을 들려주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귀족 가문의 후계자로 태어났지만  근친혼의 후유증으로 선천적 장애와 어린 시절 두 차례의 사고로 다리 성장이 멈췄던 그는 자신의 신체적 한계를 예술로 뛰어넘었다. 세상 밖으로 자유롭게 나아갈 수 없었던 소년은 종이 위에서 세상을 만났고, 결국 파리로 향해 화가의 길을 선택했다.

 

그의 인생을 바꾼 공간은 단연 물랭루즈였다.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가 열리던 시기, 로트렉은 물랭루즈의 의뢰를 받아 포스터를 제작했다. 강렬하고 독창적인 포스터는 단숨에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사람들은 그의 포스터를 떼어가기 위해 밤거리로 몰려들었다. 물랭루즈의 이름을 파리 전역에 알린 것도 로트렉의 포스터였다.

그는 이제 단순한 화가가 아니라 물랭루즈의 '얼굴'이 됐다.

그러나 로트렉의 시선은 화려한 무대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는 당시 예술가들이 주로 그렸던 귀족과 상류층 대신 세탁부, 무희, 매춘 여성 등 사회의 주변부에 놓인 사람들에게 눈을 돌렸다.

공연에서 소개된 세탁부의 모습은 특히 인상적이다. 하루 종일 무거운 빨래와 뜨거운 다리미에 시달리던 여성이 잠시 손을 멈추고 창밖을 바라보는 장면. 로트렉은 그 짧은 순간을 통해 노동의 고단함과 인간의 내면을 포착했다.

그에게 그림은 아름다운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화려한 도시의 이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일이기도 했다.

로트렉 4

로트렉 . 1891. 물랭루즈 포스터화.그는 포스터화로 명성을 얻게 된다.로트렉 7

아델 백작부인. 1886.  로트렉의 어머니

로트렉의 예술 세계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열쇠는 빈센트 반 고흐다. 파리에서 만난 두 사람은 압생트란 술과 일본 판화의 영향을 공유했고,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예술가라는 공통점도 지녔다. 로트렉은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반 고흐에게 압생트를 사주었고, 반 고흐는 그에게 그림을 가르쳤다.

두 사람의 우정은 짧았지만 깊었다. 반 고흐가 세상을 떠난 뒤 로트렉이 그의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는 한 인간을 향한 애틋한 마음을 전한다.

"빈센트는 내게 좋은 친구였고, 그는 언제나 내게 애정을 보여주려 했다."

 

공연은 로트렉의 화려한 예술 이면에 자리한 고독과 중독도 숨기지 않았다. 몸이 부자유스러웠던 그는 유난히 말 그림과 춤추는 사람들을 많이 그렸다.

그가 즐겨 찾았던 사창가는 오히려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공간이었다. 그곳의 여성들은 그를 동료이자 가족처럼 받아들였고, 로트렉 역시 그들 곁에서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느꼈다.

하지만 술은 결국 그의 삶을 잠식했다. 알코올 도수가 70도를 넘나드는 압생트에 깊이 빠졌고, 환각과 발작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기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그는 그림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퇴원하며 남긴 한마디. "나는 내 그림으로 자유를 샀다."

로트렉 10

로트렉 . 세탁부. 1886.고단한 일상속 그는 창밖으로 무엇을 보고 있을까.

공연에서 가장 뭉클한 대목은 어머니 아델의 이야기였다.아들의 몸이 더 이상 자라지 못하고, 파리의 뒷골목에서 술과 그림에 파묻혀 살아갈 때에도 어머니는 묵묵히 그의 곁을 지켰다. 로트렉이 36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뒤에도 어머니는 흩어질 위기에 놓인 아들의 작품을 하나하나 모았다.

훗날 고향 알비에 로트렉을 기리는 미술관이 세워졌을 때 1922년  어머니는 많은 작품들을 기증했다. 그렇게 그의 작품들은 보존됐고, 오늘날엔 루브르와 오르세같은 세계적인 미술관의 소장품으로 남게 됐다.

 

한 사람의 예술 뒤에는 또 한 사람의 사랑이 있었다.

공연은 로트렉의 모델이자 훗날 화가로 이름을 남긴 수잔 발라동의 이야기도 조명했다. 모델로 시작한 그녀는 로트렉과 드가의 눈에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인정받았고, 결국 누구의 모델도, 누구의 아내도 아닌 한 명의 화가로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로트렉이 그녀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오히려 그녀가 독립적인 예술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한 사랑이었을지도 모른다는 해석은 긴 여운을 남겼다.

이날 무대는 단순한 미술 해설 공연이 아니었다.소프라노 조수현의 연기와 함께 뮤지컬 배우 노윤, 김소향, 피아니스트 함소원, 퍼커셔니스트 김근태, 바이올리니스트 김태성, 첼리스트 이재호, 샹송 가수 김태진, 현대무용 전예화 무용단 등이 참여해 로트렉의 삶을 음악과 움직임으로 되살렸다.

로트렉  8

열광적인 커튼 콜 . 이번 공연엔 멋진 4인조 댄스까지 곁들여졌다.

그림 한 점을 설명하는 대신 그림 속에 살았던 사람의 인생을 무대 위에 올려놓은 것이다.특히 로트렉의 삶을 따라 흐른 음악은 화려한 파리의 밤과 예술가의 고독, 사랑과 우정, 그리고 어머니의 헌신을 촘촘하게 연결하며 관객의 감정을 끌어냈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로비에 마련된 로트렉 작품 전시는 관객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무대에서 만난 이야기를 실제 작품으로 다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공연장 옆 SK뷰에 산다는 여성은 초등 6학년 어린 아들과 함께 왔는데 "로트렉이 불행한 삶을 살았지만 끝까지 아들을 뒷받침한 어머니의 이야기가 특히 뭉클했다. 공연을 보고 나니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고 말했다.

 

노윤 배우의 '대성당들의 시대 ' 김소향 배우의 '더는 참지 않아'는 클라이막스적인 울림을 더 했고 그 외 브람스의 주옥같은 많은 곡이 유명아티스트들에 의해 연주되어 감동을 더했다. 이번 무대가 더욱 특별했던 이유다.

이번 '살롱 드 아트리움'이 전한 메시지는 단순했다.

인생이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대로만 흘러갈 필요는 없다는 것.

불편한 몸, 가난과 고독, 사랑의 실패와 알코올 중독까지. 로트렉의 삶에는 평범한 행복과는 거리가 먼 순간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그림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그 그림은 한 시대의 파리와 그곳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모습을 오늘까지 전하고 있다.

결국 로트렉에게 예술은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는 방법이 아니라 세상을 끝까지 바라보는 방법이었다.
 

한편 '살롱 드 아트리움'은 다음 달 9월 16일, 칸딘스키​를 주제로 다시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미술과 음악, 무용과 이야기가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공연이 또 어떤 예술가의 삶을 우리 앞에 불러낼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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