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연진 전체가 나와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한여름 밤, 은은한 커피 향과 클래식 선율이 만났다. 익숙하면서도 품격 있는 음악이 객석을 가득 채우자 무대와 관객 사이에는 어느새 편안한 공감의 시간이 흘렀다. 8월 25일 오후 7시 30분, 수원SK아트리움 대공연장에서 열린 '2026 수원뮤직페스티벌(제18회 수원향토음악제)'은 '커피 향 가득한 여름밤의 음악산책'을 부제로 시민들에게 특별한 음악 선물을 전했다.
이번 음악회는 (사)한국음악협회 수원시지부(지부장 김명신)가 주최·주관하고 수원특례시, 수원문화재단, 경기도음악협회, 수원예총 등이 후원했다. 1998년 제1회 수원향토음악제로 시작한 수원뮤직페스티벌은 수원 출신 전문 음악인들이 참여해 지역 음악의 전통을 이어온 대표적인 클래식 음악축제다.
지난해 제17회 음악제가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소통과 화합'을 주제로 시민과 만났다면, 올해는 수원음악협회 창립 62주년을 기념해 커피와 클래식이라는 일상의 소재를 음악으로 연결했다는 점에서 색다른 매력을 보여줬다.
수원체임버오케스트라 (사진=(사)한국음악협회)

Pf.1 박미정 Pf.2 김영 (사진=(사)한국음악협회)
바흐에서 시작해 커피 칸타타로 마무리
공연의 첫 문은 수원음협 기악분과 수원체임버오케스트라가 열었다. 김기웅 지휘 아래 귀에 익은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제5번'이 연주되면서 객석은 본격적인 음악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이어 피아니스트 박미정과 김영이 바흐의 '두 대의 건반을 위한 협주곡 C단조 BWV 1062'를 협연했고, 작곡가 주용수의 음악극 '연(緣)-망각의 숨결' 중 제1막 제6장 '회한의 재회'가 초연 무대에 올랐다.
프로그램은 비발디의 '두 대의 첼로를 위한 협주곡 G단조 RV 531'로 다시 한번 현악의 깊은 울림을 들려줬다. 첼리스트 박태형과 권새롬의 협연은 두 첼로가 주고받는 선율의 묘미를 느끼게 했다. 무대에는 피아니스트, 첼리스트, 성악가, 쳄발리스트 등 수원 음악계에서 활동하는 전문 연주자들이 함께했다. 콘서트 가이드 이현승의 귀에 쏙쏙 들어오는 해설도 클래식 음악을 보다 친숙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Sop. 김태은 Bass. 송필화 Pf. 이민선 (사진=(사)한국음악협회)
무엇보다 이번 공연의 백미는 마지막 무대였다.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인 작곡가 바흐가 남긴 '커피 칸타타(BWV 211)'가 공연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커피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아버지와 딸의 유쾌한 이야기를 음악극 형식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약 300년 전 유럽의 커피 문화를 소재로 한 작품이 오늘날 수원의 무대에 다시 올라온 것이다.
소프라노 이영숙, 바리톤 최종우, 테너 홍명표 등이 함께한 '커피 칸타타'는 클래식 음악이 반드시 어렵고 무거운 장르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줬다. 오히려 관객들이 익숙한 '커피'라는 소재를 통해 음악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한 기획이 돋보였다.

Vc.1 박태형 Vc.2 권새롬 (사진=(사)한국음악협회)
음악과 일상이 만나는 순간
이번 수원뮤직페스티벌에서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음악을 일상으로 끌어내려는 시도였다. 공연 전 홍보에서도 정지영커피로스터즈와 협업해 음악회 관람객들에게 커피를 접할 수 있는 이벤트를 마련했다. 단순히 음악을 듣는 공연을 넘어 '커피 한 잔을 마시듯 편안하게 클래식을 즐긴다'는 콘셉트를 구현한 것이다. 실제 공연 기획 역시 지역 대표 커피 브랜드와 지역 음악인들이 함께하는 협업으로 소개됐다.
이러한 시도는 클래식 음악의 문턱을 낮추면서도 공연의 품격은 그대로 유지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커피 칸타타'를 마지막에 배치한 구성은 공연 전체의 흐름을 하나의 이야기처럼 연결했다. 바흐의 기악곡으로 시작해 창작음악극을 거쳐 다시 바흐의 유쾌한 음악극으로 돌아오는 프로그램은 관객들에게 클래식의 다양한 표정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Sop. 이영숙 Bar. 최종우 Ten.홍영표 (사진=수원음협)
수원의 음악인, 수원의 이름으로
수원뮤직페스티벌의 또 다른 의미는 지역 음악인들의 무대라는 데 있다. 1998년 수원향토음악제로 출발한 이 음악회는 수원 출신 또는 수원에서 활동하는 전문 음악인들이 시민들에게 자신의 음악적 역량을 선보이는 소중한 무대로 성장해 왔다. 지난해 제17회 공연에서도 800여 명의 시민이 함께하며 지역 클래식 음악축제로서의 저력을 보여준 바 있다.
올해 역시 수원체임버오케스트라를 비롯해 여러 전문 연주자들이 한 무대에 올라 수원의 음악적 역량을 보여줬다. 무대 위에서 빛나는 것은 연주자들의 기량만이 아니다. 오랜 시간 한 지역에서 음악을 공부하고 연주하며 후배 음악인들을 키워온 사람들이 다시 시민 앞에 서는 과정 자체가 수원의 문화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수원뮤직페스티벌은 단순한 1일 음악회가 아니다. 수원의 음악이 어디에서 출발했고, 지금 어디까지 왔으며, 앞으로 시민들과 어떻게 만날 것인가를 보여주는 문화예술의 기록에 가깝다.

공연 후 포토존에서의 기념사진
"클래식도 커피처럼 편안하게"
공연장을 나서며 이번 음악회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편안한 품격'이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다.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의 정교한 선율에서 시작해 두 대의 건반과 첼로가 만들어내는 풍성한 음향, 창작음악극의 서사, 그리고 마지막 '커피 칸타타'의 유쾌함까지 프로그램의 색깔도 다양했다.
무엇보다 클래식 음악을 특별한 사람들만의 음악으로 남겨두지 않고 시민의 일상 속으로 한 걸음 가까이 가져오려는 노력이 인상적이었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잠시 숨을 고르듯, 음악 한 곡을 들으며 일상의 무게를 내려놓는 시간.
8월의 마지막 여름밤, 수원SK아트리움에서 열린 제18회 수원향토음악제는 그렇게 시민들에게 음악으로 걷는 한 편의 산책길을 선물했다. 그리고 그 산책길의 끝에는 바흐의 '커피 칸타타'가 있었다. 커피의 향기와 클래식의 선율이 어우러진 이번 수원뮤직페스티벌은 '음악이 흐르는 문화예술도시 수원'의 현재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장면으로 기억될 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