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 정조대왕 선발대회에서 수원시장으로부터 당선증 교지를 받은 나광열 씨가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수원시포토뱅크)
"전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난 6월 7일 수원화성행궁 광장. 정조대왕 역으로 호명돼 당선 교지를 받아든 나광열 씨가 던진 말은 단순한 소감이 아니었다. 앞으로 2년 동안 정조대왕을 대신해 수원을 알리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에 가까웠다.
그로부터 약 3개월. 정조대왕의 옷을 입은 나광열 씨는 이제 수원의 곳곳을 누비고 있다. 각종 거둥(행차)과 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 2026~2027 수원 방문의 해 홍보대사로서 수원의 역사와 문화, 관광을 알리는 일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수원 율전동 그의 사무실에서 만난 나광열 씨는 여전히 바빴다. 온라인 컨텐츠창작자로서 영상·뉴미디어 관련 일을 하면서 정조대왕으로서의 새로운 역할까지 소화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눌수록 그의 정조대왕 역은 단순히 곤룡포를 입고 왕을 연기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그가 정조대왕에게서 발견한 것은 '왕'이라는 지위가 아니라 새로운 길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도전정신이었다. 그리고 자신도 그 길을 따라가고 있다고 했다. '도전은 즐겁다'를 실천하고 있는 그는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정조대왕 역을 스스로 '전례 없는 도전'이라고 표현했다.
2026-2027 수원시홍보대사 정조대왕 역에 선발된 나광열 씨
"정조대왕, 언젠가 내가 꼭 해보고 싶었습니다"
나광열 씨가 정조대왕 역에 도전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수원에서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정조대왕과 수원화성을 자연스럽게 접해왔고, 정조대왕 선발 소식을 접한 뒤부터 마음속에 하나의 목표를 품었다. "시민 중에서 정조대왕을 선발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 자리는 내가 꼭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나 언젠가 정조대왕 선발대회 나갈 거야'라고 이야기하고 다녔어요."
말처럼 실제 선발대회에 참가했고, 지난 6월 7일 정조대왕 역으로 선발됐다.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었던 꿈이 현실이 된 순간이었다. 그가 정조대왕에게 끌린 이유는 왕이라는 지위 때문만은 아니었다. 큰 아픔을 안고도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개척했으며, 백성을 생각하고 미래를 준비했던 정조대왕의 삶이 자신의 인생과 닮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저 역시 살아오면서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새로운 것을 배우고 새로운 길에 계속 도전해 왔습니다. 그래서 정조대왕을 통해 제 삶을 한번 돌아보고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2026 정조대왕 선발대회 무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포토뱅크)
곤룡포를 입는 순간, '왕'보다 '책임'이 먼저 보였다
선발대회에서 정조대왕으로 호명된 직후 처음 입어본 곤룡포에 대한 기억도 생생하다. "누가 선발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미리 준비해 놓은 의상이었는데, 입어보니 옷이 정말 잘 맞았습니다. 순간 '어? 이거 내 옷인가?' 싶을 정도였어요."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곤룡포를 입은 순간 느낀 감정은 가볍지 않았다.
"단순히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입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쉽게도 곤룡포는 선발대회 때 한 번 입어본 것이 전부다. 요즘은 각종 거둥과 행사에 참여하면서 주로 구군복을 입는다. 시민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정말 정조대왕처럼 잘 어울린다"는 말이다.
"쑥스럽지만 굉장히 기분 좋은 말입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이 역할이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시민들이 저를 통해 정조대왕을 만나고 수원을 바라볼 수도 있으니까요." 칭찬은 곧 책임감으로 돌아왔다.

'찾아가는 정조대왕 거둥행사'로 '2026 정조대왕 능행차 공동재현'을 미리 선보이고 있다.(사진=포토뱅크)
"제가 생각하는 정조대왕의 가장 큰 매력은 '도전'입니다"
나광열 씨가 바라보는 정조대왕은 '효심 깊은 개혁군주'라는 역사적 설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가 가장 주목하는 것은 도전정신이다. 새로운 생각과 기술을 받아들이고 인재를 등용했으며 수원화성을 통해 새로운 도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정조대왕.
나광열 씨 역시 사진관 운영에서 영상 콘텐츠, 유튜브, 라이브커머스, AI와 뉴미디어 등 새로운 분야에 계속 도전해왔다. "정조대왕은 과거에 머무른 사람이 아니라 미래를 준비했던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 도전해왔다는 점에서 닮은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가 시민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정조대왕도 바로 그런 모습이다.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미래를 바라보는 정조대왕.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정조대왕.
정조대왕 역은 명예직이다. 선발대회 상금이 있는 것도 아니며 활동에 따른 보수를 받는 자리도 아니다. 나광열 씨에게도 개인적인 시간과 비용을 들여 활동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제가 정조대왕으로 선발된 뒤 가장 많이 받은 질문 중 하나가 '그래서 얼마 받아요?'였어요. (웃음)" 하지만 그는 이를 불만으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 자리가 돈으로 평가될 자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게는 영광스럽고 감사한 자리입니다. 다만 앞으로 이 제도가 계속 이어지고 후배 정조대왕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활동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026 정조대왕 선발대회(사진=포토뱅크)
"수원 관광, 이제는 문화재보다 '이야기'를 보여줘야"
그가 수원 관광 활성화를 위해 강조하는 것은 스토리텔링이다. 현재 서울 코엑스 별마당도서관에서 4년째 명사 강연 진행을 맡고 있는 그는 현장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크게 늘어난 모습을 보며 수원 관광의 가능성을 생각했다고 한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별마당도서관에서 사진도 찍고 영상을 만드는 모습을 보면서 '저 사람들을 어떻게 수원으로 모셔올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수원에는 수원화성이라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이 있고, 정조대왕이라는 강력한 이야기가 있다. 이제는 단순히 "수원화성이 있다"고 홍보하는 데서 그치지 말고 왜 정조대왕이 수원을 선택했는지, 왜 화성을 만들었는지, 그곳에서 어떤 미래를 꿈꾸었는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장소만 보러 오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담긴 이야기를 경험하러 옵니다." 특히 그는 SNS와 숏폼 콘텐츠에 주목한다. "제가 가진 영상과 미디어 경험을 활용해 정조대왕의 시선으로 수원을 보여주는 콘텐츠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수원화성뿐만 아니라 수원의 맛집과 골목, 청년, 시민들의 삶까지 담아 '정조대왕의 수원'과 '오늘을 살아가는 시민들의 수원'을 함께 보여주겠다는 구상이다.

유튜버, 메타버스 크리에이터, 1인 미디어컨설팅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본인의 특장점을 살려 누구나 만날 수 있는 '정조대왕'을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사진=나광열씨 블로그)
"2년 뒤, 정조대왕을 '연기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습니다"
2026~2027 수원 방문의 해 홍보대사로 활동하는 2년 동안 그가 남기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정조대왕을 잘 연기했던 사람'이 아니라 '정조대왕의 정신을 가지고 수원을 세계에 알리려고 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 카메라와 SNS를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행사장에서 한 번 보고 지나가는 정조대왕이 아니라 스마트폰을 통해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정조대왕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영상과 AI, 뉴미디어를 활용해 수원의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기록하고 확산시키겠다는 그의 계획은 정조대왕의 도전정신을 오늘의 방식으로 실천하는 셈이다.
"시민들의 작은 관심이 수원을 더 크게 만듭니다"
그는 일본에서 2년간 어학연수를 하면서 지역축제가 관광상품이 되고 지역경제에도 영향을 미치는 모습을 직접 경험했다. 그래서 수원 시민들에게 가장 먼저 부탁하고 싶은 것은 '참여'보다 '관심'이다.
"당장 축제 현장에 나오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우리 지역에 이런 멋진 문화가 있구나' 하는 작은 관심부터 가져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시민의 관심이 참여가 되고, 참여가 수원의 문화에 힘을 보탠다는 생각이다.
정조대왕의 못다 펼친 수원의 꿈, 오늘의 언어로 세계에 전할 터
인터뷰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만약 정조대왕이 지금 나광열 씨를 만나 "2년 동안 나를 대신해 수원을 잘 알려주시오"라고 한다면 뭐라고 답하겠습니까?' 나광열 씨는 웃으며 대답했다.
"전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어 그의 목소리가 조금 진지해졌다. "전하께서 못다 펼치신 개혁과 소통의 꿈을 2026년의 가장 현대적인 도구로 전 세계에 펼쳐 보이겠습니다. 전하께서 화성을 통해 미래를 준비하셨다면 저는 카메라와 SNS를 통해 수원의 미래를 준비하겠습니다."
정조대왕이 백성의 목소리를 들었던 것처럼 시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였던 것처럼 영상과 AI, 뉴미디어를 활용해 수원을 알리겠다는 것이다. 6월 7일 당선 교지를 받아든 지 약 3개월. 나광열 씨에게 정조대왕 역은 곤룡포를 입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평생 즐겨온 '도전'을 수원의 역사와 연결하는 새로운 도전이 됐다.
그가 말한 '전례 없는 도전'의 끝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방향은 분명하다. 정조대왕이 수원화성을 통해 미래를 꿈꾸었다면, 오늘의 나광열 씨는 카메라와 SNS를 통해 그 꿈을 세계에 전하려 한다. 그리고 그는 오늘도 말한다.
"도전은 즐겁습니다."
정조대왕 역 나광열 씨의 2년은 이제 막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