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명화 작가가 자신의 작품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책을 읽는 공간에서 시작된 우리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 공간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책장을 넘기던 손이 어느 순간 펜을 잡았다. 그리고 도서관의 창문과 나무, 골목길과 사람들, 때로는 복잡하게 얽힌 전선까지 한 장의 그림 속에 담겼다. 사진으로 찍어두는 것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도시의 시간을 기록하는 어반스케치다.
'도서관과 그 풍경을 담은 어반스케치 전시회'가 9월 8일부터 13일까지 수원시립만석전시관 제1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어반스케처스 수원이 주최하고 수원시 소규모문화예술행사가 후원하는 이번 전시에는 오명화 작가를 비롯해 41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이번 전시의 주제는 'BOOK수원'. 책과 도서관이라는 익숙한 공간을 바라보는 작가들의 다양한 시선이 각자의 개성 있는 선과 색으로 펼쳐진다. 어반스케처스 수원은 '도시를 걷고, 현장에서 그리고, 함께 나누는 것'을 모토로 활동한다. 2017년 첫발을 내디딘 이후 매월 수원의 다양한 장소를 직접 찾아가 현장의 풍경을 그리고 기록해왔다. 전시와 워크숍, 강좌 등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며 수원의 도시 풍경과 문화를 그림으로 남기고 있다.
오명화 작, 호매실도서관
"도서관과 하나가 되는 시간, 그림으로 기록했어요"
이번 전시에서 만난 오명화 작가에게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빌리고 읽는 장소가 아니다. 책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만나고, 그 공간을 다시 그림으로 기록하면서 사람과 도시를 연결하는 특별한 장소다.
오 작가는 평소 종이가 가진 물성을 좋아하고 책과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쓰기와 낙서, 그림으로 자연스럽게 관심을 넓혀왔다. 다양한 도서관과 책방, 독립서점을 찾아다니는 것도 그가 좋아하는 일 가운데 하나다.
"동네와 지역이 품고 있는 풍경과 특성이 모두 달라서 좋아합니다. 아기자기하고 그곳만의 숨어 있는 이야기와 색깔에 매료됩니다." 그에게 책은 그림의 세계로 이끌어준 친구이기도 하다. 책을 통해 세상을 만나고, 스케치를 통해 새로운 그림 친구들을 만나면서 인연이 거미줄처럼 이어졌다. 특히 이번 전시는 오 작가에게 오래 품어온 작은 꿈 하나를 실현하는 기회였다.
경기도서관 코너 맨 좌측 위 작품이 오명화 작가 작품이다.
도서관 활동가로 활동하면서 언젠가 '스토리가 있는 도서관'을 그림으로 담아보고 싶었다. 그러던 중 올해 어반스케처스 수원의 스케치 주제가 '도서관과 주변 풍경'으로 정해지면서 그 꿈을 직접 실천하게 됐다. 그중에서도 '도담어린이작은도서관'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 도서관 홍보 설명회로 방문했던 곳이었는데, 이번에는 직접 그곳의 풍경을 스케치로 담았다. 더구나 그 작품이 5월의 도서관 그림지도에 들어가는 기쁨까지 누렸다.
"예전에 방문했던 도서관을 다시 그림으로 담으니 더욱 반가웠어요. 그 풍경이 그림지도에 들어가게 돼서 정말 기뻤습니다." 매월 현장에서 도서관을 그리는 시간은 오 작가에게 그 공간과 하나가 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몇 시간씩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는 일이 처음에는 쉽지 않았지만 조금씩 익숙해졌다.
도서관 안에서는 조용히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들리고, 책 속에서 만나는 한 구절은 그림을 그리는 감성을 더욱 풍성하게 해준다. 그는 시드니 스미스의 말을 떠올린다. "독서할 때 당신은 가장 좋은 친구와 있다." 책과 함께하는 시간, 그리고 그림과 함께하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하나가 된 셈이다.
오명화 작, 마음이음책방에서 바라다 본 바깥 풍경
"전선줄도 그림의 일부…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져"
오 작가가 처음 어반스케치를 접했을 때는 그야말로 새로운 도전이었다. 예전에는 좋아하는 사물의 특징을 사진으로 찍고, 그 사진을 보며 그림을 그리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어반스케치는 달랐다. 현장에 직접 앉아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했다. 도심을 복잡하게 가로지르는 전선줄이나 원하지 않았던 사물까지도 그림 속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어색했던 전선줄이 어느 순간부터는 오히려 도시 풍경을 완성하는 요소로 보이기 시작했다. 오 작가는 전선줄을 두고 "하늘과 땅 사이에 오작교를 만들어주는 것처럼 없어서는 안 될 감초 같다"고 표현한다. 똑같은 풍경도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인다는 어반스케치의 매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나무와 길이 조금 기울고 건물이 반듯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흑백으로 시작한 그림에 색을 하나씩 입히면서 자신만의 그림이 완성되는 과정 자체가 즐거움이었다. "내가 그렸다는 것만으로도 신기했습니다. 흑백에서 다양한 색으로 옷을 입히는 재미는 마치 제가 새 옷으로 갈아입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관객들이 제1전시실 벙개존과 이벤트존 그림을 관람하고 있다.
현장에서 그리고, 함께 웃고, 서로의 그림을 나누다
어반스케처스 수원의 전시회가 일반적인 미술 전시와 다른 점도 있다. 전시장 한쪽에는 작가들이 현장에서 즉석으로 그린 그림들이 모여 하나의 커다란 작품으로 탄생하는 '빅스케치마당'이 마련된다. 완성된 작품만 보여주는 전시가 아니라, 그림이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를 함께 즐기는 공간이다.
작가들의 워크숍도 열린다. 개성 있는 9명의 작가가 참여해 관람객과 회원들에게 자신만의 스케치 방법과 노하우를 나눈다. 배우고 싶은 작가의 코너를 직접 선택해 새로운 기법을 배울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전시 마지막 날에는 행운권 추첨도 진행된다. 회원들의 십시일반 후원으로 마련한 선물을 서로 나누며 전시를 마무리한다.
무엇보다 오 작가가 강조하는 어반스케처스 수원의 매력은 경쟁하지 않는 공동체라는 점이다. 먼저 시작한 선배 회원들은 후배들의 그림을 아낌없이 격려하고 응원한다. 전시와 모임에 도움이 필요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회원들이 나선다.

오명화 작, 도담어린이도서관
오명화 작, 북수원도서관
"책임감이나 부담 없이 참여하지만, 어느 순간 알게 모르게 주인의식이 생깁니다. 서로 경쟁하지 않고 배려하고 응원하는 분위기에서 누구나 자신감을 얻을 수 있어요. 그것이 수원어반스케쳐스의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 작가에게 스케치는 코로나19가 안겨준 뜻밖의 선물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낯선 세계에 대한 도전이었지만, 이제는 삶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또 하나의 언어가 됐다. 작은 스케치북과 펜, 고체물감, 물붓, 연필 한 자루면 어디든 그림의 현장이 된다. 거창한 준비도 필요 없다. 길을 걷다가 마음에 닿는 풍경이 있으면 잠시 앉아 그 순간을 기록하면 된다. 그렇게 한 장, 한 장 쌓인 그림들이 이번 전시에서 관람객을 만난다.
그림 한 장에 담긴 '오늘의 수원'
어반스케치는 완벽한 그림을 그리는 데 목적이 있지 않다. 그날의 장소와 시간, 빛과 공기, 그리고 그곳을 바라보던 자신의 마음까지 한 장의 그림에 담는 기록이다. 어반스케처스 수원이 그리는 수원 역시 거창한 명소만은 아니다. 우리가 매일 지나치는 거리와 건물, 나무와 사람, 도서관과 골목길이 모두 그림의 주인공이 된다.
오 작가는 전시실에서 동료 피클작가를 즉석 스케치한 작품을 선보였다.
수원시립만석전시관 전경. 어반 스케치하는 이들이 보인다.
오명화 작가가 이번 전시를 통해 보여주는 것도 바로 그런 풍경이다. 책을 좋아하는 한 사람의 시선에서 출발해 도서관을 만나고, 그 주변의 풍경과 이야기를 그림으로 기록했다.
"삶을 그리는 스케치에서 나를 만나고, 서로 격려하며 함께 그림 생활을 할 수 있는 수원어반스케쳐스를 응원하고 자랑하고 싶습니다." 이번 전시장을 천천히 둘러보면 같은 '도서관'을 그렸지만 작가마다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책을 읽는 공간이었던 도서관이 누군가에게는 추억이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림의 소재가 된다. 도서관을 그린 그림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수원의 오늘과 만나게 된다.
어반스케처스 수원 단체전은 9월 13일까지 수원시립만석전시관 제1전시실에서 계속된다. 이번 전시는 그림을 감상하는 자리를 넘어, 익숙한 도시의 풍경을 조금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하는 특별한 시간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