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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딘스키, 선율처럼 흐르는 점, 선, 면
살롱 드 아트리움, 추상회화의 문을 연 '바실리 칸딘스키' 편
2026-09-18 16:58:30최종 업데이트 : 2026-09-18 16:58:29 작성자 : 시민기자   진성숙

초기그림(무르나우의 집)

1908. [여자들이 있는 무르나우의 거리]칸딘스키 젊은 날 초상화  할머니는 몽골 공주, 아버지는 시베리아출생, 어머니는 러시아인이어서 동양인의 모습이 남아있다칸딘스키 젊은 날 사진. 할머니는 몽골 공주, 아버지는 시베리아출생, 어머니는 러시아인이어서 동양인의 모습이 남아있다


색이 음악이 되고, 음악이 그림이 되는 특별한 시간이 펼쳐졌다.

수원문화재단과 SK아트리움이 마련한 문화예술 프로그램 '살롱 드 아트리움'에서 러시아의 위대한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1866~1944)의 삶과 예술을 음악과 해설로 만나는 공연이 열렸다.

이번 공연은 문예회관 특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300인 입장의 소극장에서 지역민 누구나 일상 가까이에서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마련됐다.

 

이날 무대의 제목은 '선율처럼 흐르는 점·선·면, 바실리 칸딘스키'. 공연은 칸딘스키가 어떻게 법학과 경제학을 공부한 엘리트 교수에서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변모했는지를 음악과 이야기, 작품 감상을 통해 풀어냈다.


1866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난 칸딘스키에게 색은 단순한 시각적 대상이 아니었다. 그는 특정한 색에서 소리를 느끼고 음악을 들으며 색채를 떠올리는 특별한 감각을 지녔다. 공연은 이러한 '공감각'을 칸딘스키 예술세계의 중요한 출발점으로 소개하며 관객들을 그의 내면세계로 이끌었다.

 

특히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바꾼 사건은 1896년 모스크바에서 만난 클로드 모네의 작품 '건초더미'였다. 당시 법학과 경제학을 공부하고 대학 교수로 안정된 미래를 보장받고 있던 칸딘스키는 모네의 그림 앞에서 몇시간이나 머물며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그는 사물의 형태를 정확하게 재현하지 않아도 색채만으로 인간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결국 교수직을 내려놓고 독일로 향했다. 예술가로서 과감히 새로운 삶을 선택한 순간이었다.

 

독일 뮌헨에서는 자신의 미술학교를 세우고 11살 연하의 여성화가 가브리엘레 뮌터를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동료이자 연인으로 함께 유럽을 여행하며 예술적 영감을 나눴다. 특히 독일의 작은 마을 무르나우에서 접한 전통 민속화와 강렬한 원색은 칸딘스키의 작품세계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칸딘스키에게 영감을 준 클로드 모네의 [건초더미]. 1891

칸딘스키에게 영감을 준 클로드 모네의 [건초더미]. 1891

구상화

1913의 걸작 [동심원이 있는 사각형]가브리엘레 뮌터가브리엘레 뮌터 (1877~1962) 칸딘스키의  연인


단순한 형태와 강렬한 색채에 매료된 그는 점차 현실의 풍경을 그대로 옮기는 작업에서 벗어나 자신의 내면과 감정을 색과 선으로 표현하는 세계로 나아갔다. 1911년 청기사파 전시를 전후해 이러한 변화는 더욱 뚜렷해졌고, 칸딘스키는 추상미술의 새로운 길을 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삶에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정치적 격변이 드리워졌다. 러시아로 돌아가야 했고, 뮌터와의 관계도 끝났다. 이후 독일에서 바우하우스의 교수로 활동했지만 나치 정권에 의해 바우하우스가 폐쇄되면서 다시 프랑스로 망명해야 했다. 아그네스 발챠의 기차는 8시에 떠나네 와 쇼스타코비치의 재즈왈츠 2번이 감동스럽게 불리어지고 연주되었다.

 

이 과정에서 특별히 조명된 인물이 바로 가브리엘레 뮌터였다. 러시아로 돌아 간 칸딘스키를 오래 기다렸지만 나쁜 남자 칸딘스키는 변심하여 27살 연하의 신부를 데리고 파리에 나타난다. 그때의 뮌터의 심정은 얼마나 처절했을까. 사랑은 끝났지만 그녀는 그의 작품들을 오랫동안 소중히 보존했다. 나치가 칸딘스키의 작품을 '퇴폐미술'로 규정하고 파괴하려 했던 시기에도 작품을 지켜냈고, 훗날 자신의 방대한 소장품을 1957년 뮌헨의 렌바흐 하우스미술관에 기증했다.
 

사랑은 끝났지만 예술은 뮌터의 더욱 큰 사랑으로 지켜질 수 있었다.

이날 공연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가슴 찡한 대목 중 하나였다. 한 예술가의 작품을 지켜낸 또 다른 예술가의 삶은 칸딘스키의 예술만큼이나 깊은 울림을 남겼다.

 

쇼스타코비치와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이 미려하게 흐르면서 또한 묵직한 바리톤 음색으로 '그리움을 나는 자만이' 와 '백학'등 주옥같은 성악이 울려퍼졌다. 음악이 흐르는 동안 스크린에는 칸딘스키의 많은 작품들이 펼쳐졌다. 관객들은 익숙하지 않았던 추상회화를 단순히 '어렵고 딱딱한 그림'으로 바라보는 대신, 음악을 듣듯 색과 선, 형태의 움직임을 느껴보는 시간을 가졌다.
 

전성기 그림

1913. [즉흥 31, 바다전투]열정적인 연주뒤의 커튼콜열정적인 연주뒤의 커튼콜(이길재, 조재현, 김주택,신현선, 박종성, 안세훈, 나승준  아티스트들이 수고해주셨다)


공연장을 찾은 관객 서정란 씨(안양시 호계동)는 "칸딘스키를 딱딱한 추상화가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림을 보면서 의외로 따뜻하고 동화 같은 느낌을 받았다. 칸딘스키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설과 명화들을 함께 볼 수 있어 정말 행복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용인에서 언니, 친구와 같이 온 김영은씨는 이 공연이 너무 좋아서 빼놓지 않고 온다. 딱딱한 화가로 알고 있었는데 너무 좋은 그림이 많고 격변의 시대를 살아 온 그의 인생도 이해하게 되어 넉넉한 감동의 시간이었다" 고 소감을 전하신다. 또한 안산의 한 장애인 단체에서 장애우 20여명이 지도자들과 함께 왔는데 인솔자들이 수고를 아끼지 않는 모습을 보니 힘들어 보이면서도 함께 음악을 감상하고 누릴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었겠구나 푸근한 생각을 해 보았다.

 

이번 무대는 칸딘스키를 '추상미술의 거장'이라는 한 줄의 수식어에 가두지 않았다. 색을 소리로 듣고, 음악을 색으로 바라보며, 보이지 않는 세계를 캔버스에 표현하려 했던 한 인간의 삶을 보여주었다.

공연 말미에는 출연 연주자들의 무대 인사와 앙코르가 이어지며 객석의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다. 관객들은 예술가의 삶과 작품, 그리고 음악이 하나로 어우러진 특별한 시간을 오래도록 음미했다.
 

점 하나, 선 하나, 그리고 색 하나에도 음악이 있다고 믿었던 칸딘스키.

이날 살롱 드 아트리움의 무대는 그의 예술철학처럼 눈으로 듣고, 귀로 바라보는 공연이었다. 그리고 관객들은 공연장을 나서며 어쩌면 평소 무심히 지나쳤던 색 하나를 조금은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을 것이다.

한편 김세환 스토리텔러는 올해 '살롱 드 아트리움'은 오는 10월 24일 '단원 김홍도'를 마지막 무대로 대미를 장식한다고 예고했다. 조선시대 풍속화의 거장 김홍도의 해학과 풍자를 음악과 이야기로 풀어낼 예정이어서 또 한번 관객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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