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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풀들에게 미안한 이유
2012-06-13 07:32:56최종 업데이트 : 2012-06-13 07:32:56 작성자 : 시민기자   오선진
수삼년전부터 가까이 화성 남양쪽에 전원용 텃밭을 가진 친구가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다른 친구와 조그마한 택배 사업을 하고 있는데 동업 관계를 잘 유지하는(원래 친한 사람과는 동업 하지 말라고 했기에) 것도 그렇지만 그 밭에 같이 농사를 짓는 모습을 여러 해 부러운 눈길로 지켜보고 있다. 

한 사람이 엉성한 나무다리도 주저없이 건널 성격이라면 또 한 사람은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널 성격이어서 그들은 절묘한 사업 동반자로 보인다. 
그들이 가꾸는 밭은 상반된 서로의 기질을 조절하고 버무려 하나의 결실을 이루고, 위험한 질주에서 벗어나 현재의 목표를 되묻고 반성하는 터전이었을 것이다. 단순한 농사가 아니라 흙에게 배우는 과외수업 같은 거라 여겼다.

제비 따라 강남 가고, 친구 따라 학교 간다는 농담 말 처럼 나도 그 친구가 부러워 급기야 작년에 친구네 밭 옆에 땅을 좀 구해 농사를 지으러 다니면서 우리의 최근 대화는 대부분 농사로 시작해 농사로 끝난다. 
지난여름 토마토 고추 가지 오이 등을 그 밭에서 몇 번이나 수확해 먹었다. 워낙 게으르게 경작한데다 산새와 고라니 같은 것들이 제집처럼 드나드는 우리 밭에서는 변변한 소출이 없어 나는 나누는 기쁨을 온통 친구에게 양보해야만 했다. 

내가 풀들에게 미안한 이유_1
내가 풀들에게 미안한 이유_1

작년 가을 어느날 일이었다.
일을 하러 가서 보니 친구의 동업자가 호미로 북돋우기를 하며 잎에 묻은 흙을 후후 불어 털어내고 있었다. 
나는 이른 가을 내내 친구가 고춧대를 걷어내고 배추 모종을 심기를 은근히 기다리고 있었다. 향긋한 고춧잎은 물론이고 초겨울쯤에는 맛좋은 김장 배추 몇 포기도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어느 날 친구가 느닷없이 한 부대의 고춧잎을 집으로 들고 왔다. 이제는 농사를 끝내고 그 밭의 경작을 동네 사람에게 맡겨버렸다는 것이었다. 그날 우리 집에 들고 온 작물은 서둘러 수확한 마지막 소출의 일부였던 셈이다.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면서 실로 놀라운 사실을 알았다.
친구네 밭에서 근처 다른 사람의 밭으로 날아간 풀씨가 문제였다. 그쪽에서 밭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놀랍게도 그 밭 대부분은 풀 한포기 없이 말끔했다. 그만큼 제초제 농약을 많이 치고 있었고 유기농의 친구 밭에서 날아오는 풀씨가 무슨 귀찮은 버러지 같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 마을 농부들은 배추 심을 준비를 하고 있던 두 사람에게 몰려와 자기들 농사를 다 망해먹게 생겼으니 팔자 좋은 신선놀음일랑 그만 하라고 호소했던 모양이다.
농사를 계속할 생각이면 자기들처럼 농약을 치라며....

농촌의 산과 들에 우후죽순 자라는 풀은 그렇게 자라 온 산천을 푸르게 하는 것이 제 본분이고, 그것을 가려내고 솎아주는 일은 농부가 해야 할 본분이다. 
풀이 없다면 거기에 깃들어 사는 풀벌레도 없을 것이며 서로 분담하고 공생하게 되어 있는 자연의 질서 또한 무너질 것이다.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미물일지라도 그것들은 우주로부터 부여받은 각각의 소임이 있으며 그 소임들은 서로 맞물려 긴밀하게 엮여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대부분의 농작물들은 그런 연결고리가 끊긴 상태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라는 생각을 해 보니 영 기분이 우울해진다.
그렇다고 농촌의 부족한 일손을 뻔히 알면서 그 많은 풀들을 제초제로 소독하지 말고 죄다 손과 호미로 뽑아 내라고 말할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쨌거나 지금 우리는 풀이 자랄 수 없도록 된 땅에서 자란 작물들을 먹고 있다. 관대한 포용력을 잃은 흙, 풀과 벌레를 품을 수 없는 흙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심난하다.
그리고 나도 이젠 친구처럼 땅을 내어주어야 할것 같다. 내 땅 역시 농약을 안 치고 있었으니 농민들의 그런 원성이 슬슬 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도 올 가을까지만 농사를 짓고 말 일이라 생각하니 더 서운해 진다. 그저 풀들에게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고 싶다. '미안하다 풀들아, 미안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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