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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교산에서의 명상..참 고맙다
내 발자국은 뒷사람을 위한 이정표, 징검다리가 되어야
2012-08-26 13:43:07최종 업데이트 : 2012-08-26 13:43:07 작성자 : 시민기자   오선진

비 갠 주말, 혼자 물 병 2개와 핸드폰, 간식용 바나나 두송이와 주스 한통 넣은 배낭을 짊어 메고 광교산으로 발길을 뗐다. 
산 초입에 들어서 뚜벅뚜벅 발걸음을 떼니 벌써부터 그동안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가 확 사라지는 느낌이다. 이 드넓고 푸르른 산이 나를 품어주고 있으니 참으로 고맙고 감사하다.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다리의 관절을 움직이는 일로 끝나지 않는다. 다리의 관절은 움직임을 원활하게 해주기 위한 하나의 연결 고리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한 발자국을 옮겨 걷겠다는 마음을 품으면 그때부터 내 몸의 모든 기관은 걷는 일을 도와주기 위해 준비 태세를 갖춘다. 누가 특별히 지시하지 않았음에도 몸 전체가 걷는 일에 기꺼이 나서는 것이다.
그러니 스트레스라는 괴물이 들어설 공간이 없어지는것 같다.

목적지랄 것도 없다. 그저 앞사람 바라보며 혹은 앞에 보이는 길을 따라 걷는 것이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걷기 시작해 보니 내 몸은 막 시동을 건 엔진처럼 활기를 띤다.
팔은 발걸음에 맞춰 저절로 흔들리고,  눈은 가까운 곳이든 먼 곳이든 샅샅이 탐색하며 나아갈 곳을 살린다. 

옆에서는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내가 산에 올라 발걸음을 떼는 순간, 주변의 모든 등산로와 나무와 이름 모를 잡초와 다른 등산객들 모두 하나같이 나의 걷기에 동참한다. 

광교산 산책로 풍경은 내가 떠나온 곳이 궁금해 천천히 뒤로 지나가고, 구름은 조금씩 있지만 그래도 나에게 등산의 기회를 주기 위해 잠시 비 갠 하늘은 높고 푸르다. 
바람은 귀밑머리를 간질여 주고 땅은 발바닥을 떠받쳐 준다. 길가 바위와 돌멩이는 그 나름대로 자리를 잡고 나를 지켜봐 주며 막 나무에서 내려온 청설모 한마리가 유심히 나의 걷기를 보살펴 주고 있다.

지난 겨울 산행을 떠올려 봤다.
그때 눈이 조금 내렸는데 산행중에 잔잔한 감동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연말을 맞아 시끄러운 도심을 벗어나 남양주의 축령산을 찾았다. 마침 회사 창립기념일 휴무여서 평일날이었고, 평일 산행이어서인지 인적이 드물었다. 또 겨울이라 정적이 감도는 가운데 온산이 흰눈으로 덮여 은은한 광채를 발하고 있었다.

홀로 산을 오르는데 눈길에 먼저 걸어간 발자국이 보였다. 그 발자국은 오랫만에 겨울산을 찾은 나를 묵묵히 이끌어 주었고 참 정겹게 느껴졌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또 하나의 발자국이 나를 따라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조용한 탄성과 함께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어가는 우리의 인생길이 결코 외롭지도 막막하지도 않다는 것, 또 무심코 내딛는 나의 발걸음이 이 세상에 자취를 남기고 있다는 사실이 엄숙하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어차피 우리네 인생살이는 누군가 앞서가는 사람이 있으면 뒤를 따르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누구나 남보다 앞서기를 원하고 뒤에 서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한다. 모두 조급한 마음으로 전전긍긍하는 것도 대부분 남보다 앞서기 위함이다. 그래서 빨리빨리도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가 되었고, 무한 경쟁도 우리의 삶을 무척 피곤하게 만드는 원인중 하나가 되었다.

앞서간다는 것은 하얀 눈길에 첫 발자국을 찍는 것처럼 분명 가슴이 설레는 일이다. 그러나 앞서가는 사람이 마치 경쟁에서 승리를 거둔 것처럼 그것이 전부는 아닌데 우리는 오로지 그것이 전부인양 거기에 매달리고 있다. 
앞서가는 것은 특권이 아니라 역할이라는 것을 명심해 보자. 그게 내가 누구를 밟고 올라서는 깃점이 되는게 아니라 다른 이를 인도하는 등불이고 이정표가 되고 징검다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눈앞의 이익만 우선 급하게 찾지 말고 뒤에 오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걷자. 흰 눈이 쌓인 등산로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길은 결코 경쟁이 아니라 누군가를 인도하고 안내하며 이정표를 만들어주는 징검다리인것처럼.  우리의 '앞섬'은 그렇게 되었으면 한다.
 팔월 마지막 주말 광교산 등산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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