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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자식간 '쿨'한 간격을 인정하자
내가 올인했다고 자식이 부모에게 올인하길 바라지 않아야 하는 시대
2012-11-07 13:17:59최종 업데이트 : 2012-11-07 13:17:59 작성자 : 시민기자   박나영
얼마전 친정에 갔더니 이모님이 와 계셨다. 이모님은 작년에 며느리를 맞으셨는데 엄마와 며느리 이야기를 하고 계셨다. 그런데 며느리를 맞은 시모로써 기쁜 마음이어야 하는 이모님의 말씀에 그늘이 있었고 목소리가 밝지 않음을 알수 있었다.

왜? 혹시 며느리와 벌써 사이가 안좋아진건가? 고부갈등이란게 이런건가? 
나도 나중에 아이들이 커서 며느리를 맞았는데 고부갈등이 생기면 어쩌나 싶어 이유를 들어봤더니 뜻밖의 말씀을 하셨다. 고부 갈등 즉 며느리 때문이 아닌 아들 때문이었다.

지난번 추석때 아들 며느리 부부가 집에 와 함께 식사를 했던 모양이다. 추석 전날 다같이 모인 자리에서 며느리는 정성껏 김치찌개를 끓여 식탁에 올려 놓고 함께 먹고 있었는데.
아들이 찌개의 돼지고기 살코기를 골라 며느리 밥그릇에 올려놓더라고 했다. 그러자 민망한 며느리가 "아이, 됐어요, 어머님, 아버님 좀 드리세요"라며 어려워 하자 아들이 하는 말이 "우리 엄마는 옛날부터 돼지 비개를 좋아하셔. 살코기는 뻑뻑하다고 잘 안드신단 말야"

그 말을 듣는 순간 이모는 밥상을 확 패대기 치고 싶었다고 한다. 아들 딸 키우느라 힘들었던 엄마가 비개를 좋아서 먹었을까. 자식들한테 좋은 살코기 먹여주고 싶어서 그런거지. 
그렇게 키운 아들인데 결혼하고 나서 겨우 그렇게 하고 앉아 있으니 이모님은 견디기 힘들만큼 너무 서운하더란 것이었다. 

그러나, 그게 이 아들에게만 정말 문제가 많은 걸까. 아들만 전적으로 잘못하고 철이 안든게 맞는 걸까?
한참 유행하던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어요" 라는 글이 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쭈그리고 앉아 힘들게 일하는 걸 보며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부엌에서 혼자 찬밥 한 덩이로 점심을 때우고, 한겨울 차가운 우물물로 맨손 빨래를 하고, 식구들은 먹는데 어머니는 굶어도 되는 줄 알았다'는 내용이다.

 
부모와 자식간 '쿨'한 간격을 인정하자_1
부모와 자식간 '쿨'한 간격을 인정하자_1

그랬다. 옛날 어머니들은 남몰래 눈물과 고통을 참아내며 가족들에게 지고한 사랑을 베풀며 살았다.
그렇다면 우리 세대는 요즘 아이들에게 어떤 엄마 아빠로 보일까.
언젠가 엄마들끼리 커피를 마시면서 자연스레 아이들 이야기가 나왔는데 한 엄마가 자기 이야기를 했다.
그 엄마는 아이들을 훈육하거나 가르칠때 "평소 엄마 아빠는 이랬다"는 식으로 과거의 어려웠던 시절 이야기를 하면서 그 성장과정을 자식들과 비교했다 한다, 

옛날에는 그랬다, 너희들이 그 시절을 아느냐, 옛날에는 이런건 새발의 피도 아닌데 이런 게 무슨 고민이냐며 묵살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 세대는 부모와 자녀들의 생각이 엇박자가 나는 걸까. 무엇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걸까. 엄마는 아이들에게 그렇게 헌신적으로 보살펴 왔는데 아이들은 자라서 왜 그 엄마의 과거 노력에 대해 알아주지 않는걸까.
 이모는 아들을 그렇게 잘 키워냈는데 이 아들은 기껏 자라서 제 마누라만 챙길뿐, 엄마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듯 행동을 해서 엄마에게 큰 상처를 주었을까.

이럴때 좀 아는 사람들이 그런 부모에게 조언하고 충고하는 것들중에는 항상 공통된 것이 있다.
바로 부모들에게 과도한 집착, 과잉 희생을 버리고, 내 생각을 자녀들에게 강요하지 말 것이며, 자식도 결국에는 거리가 있는 존재이고, 그걸 인정해야 하며, 일정부분 쿨하게 받아들이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과거에 '엄마는 그래도 되는줄 알았어요'라는 글이 탄생되도록 했던 그 시절에는 정말 자녀들에게 부모는 희생과 헌신이 전부였다.
그러나 세월이 바뀌었고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내 삶의 송두리째 아이들에게 퍼부어서도 안되고, 내 인생을 즐길줄 알아야 하며, 그렇게 온몸을 다 바쳐 아이들에게 퍼부었다가 나중에 조금이라도 서운함이 생기면(사실 그정도는 아무것도 아닌건데도) 부모는 견디기 힘든 상처를 안게 된다고 한다.

이 말은 자녀들의 행복을 진정 원한다면, 자녀들의 실상을 정확히 직시하고, 자녀에 대한 지나친 허상에서 벗어나라는 지적이다. 또한 기성세대들이 사오십 년 몸에 배인 스스로의  행동 관성을 자녀들에게 똑같이 심으려 해서도 안되고, 그걸 자녀들에게 따라오도록 해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부모와 자녀간에도 이제는 '쿨'한 변화가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자식도 자라면서 그 인생이 있고, 그 인생을 인정할줄 알면 고부 갈등도 안 생기고, 자식에게 서운한 것도 줄어들고, 쿨하게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 40대 이상 50대 이하는 낀 세대라고 한다. 부모의 부양은 책임지면서 자식들로부터 부양받기는 힘든 세대라 그런 것이다. 
이는 결국 자식들에게 최선을 다해 헌신적으로 키워주지만, 결국 늙어서는 부양받지 못한다고 해서 서운하거나 슬프게 생각하지 않는 '쿨'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왜냐면 세월이 바뀌었으니까.

자식에게 나를 불살라가면서까지 헌신하기 보다는 적절한 선에서 그들의 인생을 인정하고, 내 인생을 개척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슬기로움이 이제 우리 중년층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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