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소소하지만 진심어린 관심이 가장 좋은 영양분
2012-11-20 14:03:45최종 업데이트 : 2012-11-20 14:03:45 작성자 : 시민기자   박나영
아이의 해찰이 늘었다. 공부는 중간만 해도 되고, 건강하게 잘 뛰어 놀고, 선생님과 부모 말 잘 들으면 어릴적에는 그걸로 만족한다는게 우리 부모의 교육철학이었다. 

그런데 해찰이라는 것은 이런 '믿음'에서 출발한 부모의 마음을 까칠해지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놀러 나간다는 녀석이 친구들과 PC방에서 서너시간 줄창 앉아서 게임을 즐긴다던가, 학원에 갈 시간에 친구 집에서 놀거나 번번히 지각을 한다거나, 학교에서 내준 숙제를 적당히 하거나 슬슬 안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생활 자체가 불성실해지는 것이다.

어른들 말로 하면 이해할수 있는 수준인 금도를 넘어섰다고나 할까.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날'을 좀 한번 잡아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차 있던 지난 주말. 아이 방을 청소하다가 책가방 안에 있던 일기장을 펼쳐 보니 이게 웬일.

그동안 아이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기 위해 일기장 같은건 떠들어 보지 않았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열어 본 일기장은 가장 최근에 쓴게 보름전이었고, 그나마 그전에도 처삼촌 벌초하듯 드문드문 빼먹고 쓴게 보였다. 
밖에서 돌아온 아이를 방에 불러 앉혔다.
"얘, 너 요즘 일기 왜 안쓰니?"
"일기요? 히~잉... 쓸게 없는뎅..."
"얘좀 봐. 일기를 꺼리가 있어야만 쓰는거니? 평소에 보고 느낀거 쓰는거잖아!"
 "........"

 
소소하지만 진심어린 관심이 가장 좋은 영양분_1
소소하지만 진심어린 관심이 가장 좋은 영양분_1

그것 말고도 요즘 아이가 보여준 여러 해찰 피우는 행동들을 조목조목 이야기 하며 고칠것을 주문하자 "죄송해요"라며 모기만한 소리로 '대오각성' 했다.
하지만 아이는 일기 부분에서는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었는지 쓰기가 어렵다며 하소연을 했다.
그러고 보니 평소에도 아이가 투정 부리듯 가끔씩 "엄마, 일기에 쓸 말이 없어요"라고 호소했던게 떠올랐다. 그때마다 나는 버릇처럼 "느낀거 쓰고, 하루를 반성하고, 내일은 어떻게 해야지 하는 다짐 하는 마음을 쓰면 되잖아"라고 앵무새처럼 말해온것 같았다. 

그런 부모의 말을 들은 아이들은 무작정 어떤 사건이나 이벤트, 중요한 사례가 있어야만 일기의 소재가 되고 그걸로만 일기가 가능하다고 생각해온 것이다. 
아차 싶었다. 
그런 '꺼리'가 있어야만 일기가 되는게 아니고, 그저 평범한거라도 오만가지 상상과 생각의 나래를 펼치면 그게 다 일기가 되는거라는 엄마표 교육을 내가 제대로 안시켜준게 문제였다. 

그날 아이 손을 잡고 집 밖으로 나갔다. 아이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줬더니 좋아라 했다. 아이와 걷다가 집 뒤 길가에 마른 풀섶 사이에 있는 돌멩이 한개를 가르켰다. 아이더러 "저 돌멩이는 뭘 닮았니?"하고 묻자 아이는 대뜸 "어제 먹은 고구마 같아요"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그래, 그렇게 느끼는게 있으니 다행이구나" 싶었다. 

아이와 30분 정도 거닐며 옛날 배웠던 동요 달맞이꽃을 기억해내어 함께 불렀다. 그런데 이녀석 요즘 아이돌 그룹 가요는 잘 알면서 동요는 어리버리였다. 그것도 약간 안타까웠지만 제 엄마의 동요에 귀를 쫑긋 성의껏 들어주곤 박수도 쳐줬다.

스마트폰과 컴퓨터 게임과 자극적인 만화만 보던 아이. 그리고 엄마 아빠는 직장에 다닌다며 항상 바쁘기만 했다. 
그날 나는 아이에게 아무런 힌트도 주지 않고 다시금 일기를 써보라고 시켰다. 아이는 엄마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동요를 함께 불렀는데 학교에서 그런 동요를 많이 배웠으면 좋겠다고 썼다. 

길가에서 본 돌멩이는 고구마와 닮았는데, 돌멩이를 고구마로 바꿀수 있는 도술을 배우면 좋겠다는 황당한 바람까지 썼다.
그랬다. 대단히 감수성 넘치는 명작의 일기를 기대할 필요가 없다. 사소하지만 아이가 생각하고 느끼고 경험해 볼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면 아이들은 스폰지처럼 빨아들이고 이해해서 일기로 옮길 것이다. 

엄마아빠가 TV 드라마에 빠지지 말고 이런 모범부터 먼저 보여준다면 아이들은 금새 푸른 초원같은 정서의 바다에 퐁당 빠질것이다.
나도 아이에게 너무 무신경 했던 지난 시간들을 반성하는 기회가 되었다.

연관 뉴스


추천 0
프린트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