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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훈 하나라도 있어야 할것 같은데
2012-11-29 11:35:13최종 업데이트 : 2012-11-29 11:35:13 작성자 : 시민기자   정진혁

얼마 전 서울 혜화동에서 모임이 있어서 갔다가 표구 화랑이 밀집된 길가를 지나게 되었다. 건물들을 보니 서예작품이나 그림, 심지어 옛 화폐 같은 것을 표구 해 놓은 작품들이 잘 진열되어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중에 눈에 띄는 하나가 있었다. '가훈 써드립니다'였다.

그 안내문에 눈길이 간 이유는 우리집에는 아직 가훈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가훈이 꼭 있어야 하거나, 가훈이 없다고 해서 집안 가풍이 흐트러지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가훈 하나쯤은 정해 놓고 그걸로 어른들의 삶의 지표는 물론 아이들에게도 삶의 본보기가 되게해서 나쁠건 없는데... 하루 이틀 미루다가 여태 가훈 하나도 변변히 마련하지 못한채 살고 있는 내가 좀 부끄러웁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임이 끝날때까지 멋들어진 가훈 하나 정해서 이따가 집에 돌아갈 때 붓글씨로 쓴 가훈 하나 들고 가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훈 하나라도 있어야 할것 같은데_1
가훈 하나라도 있어야 할것 같은데_1

모임에 참석해 지인들을 만나고 그동안 밀린이야기를 하면서도 내 머릿속에서는 온통 가훈 생각뿐이었다.
가훈을 뭘로 할까. '사랑과 자랑이 넘치는 집'은 어떨까. 아니면 요즘 아이들의 효행 정신이 부족하니 '부모님께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며 정직 성실하게 살자' 이런거? 
그것도 아니면 '생각은 깊게 하고 모든 일에는 최선을 다하자' 혹은 '최고보다는 늘 최선을 다하라' 이런 것은 어떨까.  심지어 이렇게 길게 쓰는것 말고 차라리 좀 짧게 '근면 용기 사랑' 혹은 '봉사 사랑 실천'은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거 쉽게 답이 나올 일이 아니었다. 한문으로 생각을 해 보니 學行一致(학행일치 : 배움과 행함이 꼭 맞음),  三思一言(삼사일언 : 세 번 생각한 후에 말하라), 浩然之氣(호연지기 :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차 있는 크고 굳센 원기, 家和萬事成(가화만사성 : 가정이 화복하면 무엇이든지 잘되어 나간다.) 등 생각 나는것은 많은데 도무지 뭘로 해야할지 몰라 머릿속만 복잡했다.

하지만 막상 가훈을 걸어 놓고 죽을때까지 우리 집안 모두의 삶의 자세로 삼을 생각을 하니 이게 그렇게 간단하고 쉽게 결정지을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그걸 정하는데 무척 망설여졌다. 
내가 아는 많은 생각과 짧은 실력으로 가지고 있던 오만가지를 다 생각해 아이디어를 쥐어 짜 보았지만 결국에는 집에 돌아가 아내와 아이들의 의견도 듣고 난 후 결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차에서 내려 집으로 향하던중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네 집 가훈 있냐?"
"웬 뜬금없이 가훈이야기냐?"
전화를 받은 친구가 뜨악하다는 투로 돠물었다.
"아니 뭐 그냥. 그런데 가훈 하나쯤 있어야 하는거 아니냐?"
"가훈 있다고 바르고 가훈 없다고 삐뚤어지냐? 그냥 하나 이야기 해줄까?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해라 그거 어떠냐?"

친구놈의 시큰둥한 대답에 피식 웃으며 전화를 끊고 나니 오래전에 본 코믹영화 한편이 떠올랐다.
실력이 없는 자식을 명문대에 입학시키기 위해 법정 투쟁까지 벌이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인데, 그 집안의 가훈이 벽에 걸려 있는 장면이 나온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고 쓰인 액자를 가리키며 아버지는 아들을 훈계하는 장면인데 그때는 '뭐 이런 가훈이 다 있나' 실소를 했지만 막상 내가 가훈을 정하려 보니 그 가훈조차도 꽤 뜻 깊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시대에 과연 가훈을 가지고 있는 가정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보니 십중팔구 없는 경우가 태반일 듯 싶었다. 아니 가훈이란 개념 자체를 아예 잊고 사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기에 이 사회에 도덕불감증이 팽배하고 전통적 가치관이 무너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가훈이라도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다. 나도 하루빨리 가훈을 정해서 걸어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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