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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휴대폰
2012-12-04 15:56:57최종 업데이트 : 2012-12-04 15:56:57 작성자 : 시민기자   정진혁

"요새 휴대푼(폰) 한 대 얼마주믄 산다냐?"
"갑자기 휴대폰은 왜요? 두분 다 있으시잖아요"
 점심시간이 막 지날 즈음, 전화를 거신 고향의 어머님이 갑자기 휴대폰 가격을 물으시길래 깜짝 놀랬다. 연세 드신 노인네들이 스마트폰을 쓰실리는 만무일테고.
"그게 아니고.  늬 아부지가 핸드폰 잃어버렸능가부다. 암만 찾아도 읎다고 하는디 우짜믄 좋겠냐?"

어머님 말씀은 그거였다. 아버지께서 아들들이 사 주어서 잘 쓰시던 휴대폰을 잃어버렸으니 괜스레 돈 들어갈까봐, 며느리들한테 미안하니까 당신 돈으로 그걸 직접 사실 생각을 하시고 내게 물으신  것이다.
그게 몇푼이나 한다고, 어머니도 참.

마을회관에서 동네 어른들과 국수 한그릇 말아 드시고 난 어머니가 다급한 목소리로 연락을 하신 그 시각. 자초지종을 상세하게 여쭈었더니 점심나절 밭에 묻어 두었던 배추와 무를 파내고 난 뒤 다같이 식사 하시기로 한 마을회관에 와보니 핸드폰이 그만 어디로 빠져 버렸다는 낙심에 찬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고 어머니가 부랴부랴 전화를 건 것이다.

아버지의 휴대폰_1
아버지의 휴대폰_1

우선 아버지와 통화를 했다.
"아버지, 밭에 나가셨다고 했죠. 너무 걱정 마세요 금세 찾아드릴께요. 지금요, 배추 묻어둔 밭으로 가셔요. 제가 아버지 핸드폰으로 계속 걸을테니까 벨소리 울리면 그쪽으로 얼른 달려가 보세요."
"이잉, 그려. 그라믄 되겄다. 알긋다. 내가 곧 간다이. 한 20분 있다가 전화 걸어봐라잉"

단축번호 1. 아버지가 배추 밭에 도착하셨을 20분후부터 찬바람에 눈을 빨갛게 뜨고 들녘을 헤매실 아버지 생각을 하며 자동 연결된 핸드폰 단축 번호 1을 계속 눌렀다. "고객님께서 전화를 받지 않으십니다"라는 멘트가 나오면 또 걸고, 다시 걸고, 또 걸고... 어서 빨리 "여보세요? 애비냐? 전화 찾았다"라는 아버지의 음성이 나오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가슴 졸이는 마음이 한 30분쯤 흘렀을까. 그때서야 핸드폰이 딸깍하며 터졌다. 아버지의 음성이 씽씽거리며 우는 바람소리에 묻혀 가뭇하게 들려왔다. 
"야야, 찾았다. 이눔이 배추 묻어둔 짚가리 속에 묻혀 있었네. 이눔이 잠바 주머니에서 빠졌능가부다 이. 찾았응께 되얐어 잉."

순간 목이 메어서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들녘에 몰아치는 삭풍 한 가운데 서 계시는 아버지 모습이 아프게 아른거렸다.
아버지는 핸드폰을 선물한 자식의 마음을 잃어버리기 싫었고, 그 핸드폰을 단지 기계로 여기지 않고 자식들의 목소리를 상시로 들을수 있는 효자로 생각하셨던 것이다.

아버지께 효도폰을 사드린건 벌써 몇년전이다.  난데없이 생긴 핸드폰을 다루려다 조작법을 몰라 복장 터지는 아버지와, "낫 놓고 이것이 'ㄱ' 자예요"라고 가르치는 꼴이 된 아들이 전에 없었던 부자의 정을 새록새록 만들어가는 계기도 됐다. 효도폰이 정말 아들의 효심을 전해드리는 기계였다.

휴대폰 조작이 좀 익숙해지신 뒤부터 아버지 전화는 고향 마을 돌아가는 상황을 알려주는 보도본부 마이크가 되었다. 
어떤날은 유난히 큰 목소리로 "야야, 애비냐?"로 시작해 대숲골 사시는 진태 아버지가 매일 먹기만 할뿐 살도 안찌는 누렁이를 확 잡아 그날 저녁 온 동네 어른들께 멍멍이탕으로 몸보신을 시켜주셨다는 얘기며, 버드내 마을 당숙 아저씨가 술에 잔뜩 취해 경운기를 몰다가 경운기는 방죽에 처박혔지만 다행히 부상이 적어서 안도의 한숨을 쉬셨다는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의 휴대폰 역사를 회고하던 잠시 후, 어머니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다.
"아이고야, 그나마 찾았응께 다행여. 아까는 그거 진짜배기로 잃어번진줄 알고 놀랬다닝께. 늬 아부지 그거 다시 살라구 고추 팔러 나갈라고 했어야. 하여튼 찾았응께 다행여.  그랑께 당분간은 아버지께 자주 전화 드려라잉?"
아, 그랬구나. 아버지가 느닷없이 "야야, 애비냐?"로 시작해 약간 긴 장광설까지 하셨던 몇 번의 사례들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아버지로부터의 전화가 단지 고향의 실황중계 차원이 아니라 아들과의 통화로 부자지간의 애틋한 마음을 나누고자 하셨던 것이다.

말로야 "아야, 전화세(전화요금) 많이 나옹께 끊자 잉!"하시지만 맘속으로야 좀더 통화 하고 싶고, 아들이 조금 더 자주 전화 걸어주기를 바라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왜 몰랐을까. 
핸드폰은 분명 사람들에게 기다림의 여유를 빼앗은 기계이긴 하지만, 그래도 고향에 부모님을 둔 도시의 자식들에게는 효도 확인을 시켜 드릴수 있는 좋은 기계임이 틀림없다. 
오늘도 마을회관으로 심심풀이 고스톱을 치러 나가셨을 아버지. 건강하게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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