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상당히 오래된 고장난 시계가 하나있다. 몇십 년 전 내가 외국에 있을 때 마음 먹고 산 것이어서 수십년 간 내게 사랑 받고 시간을 알 려 주고 내 생활의 시간 게획을 지켜주며 내 사랑을 많이 받아왔다. 그런데 수년 전 고장이 난 후로는 아예 내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래도 명품이라고 서울의 모 전문 수리 점에서 수리비를 거금 을 요구해서 수리를 포기하고 지금은 내 책상 서랍 깊숙이에서 내 관 심을 전혀 받지 못하고 썩어 가고 있다.
시계란 것이 원래 째깍째깍 잘 돌아가고 시간이 잘 맞아 주어야 자기 의 본분을 다 하는 것인데 고장이 나서 서 버리든지 시간이 맞지 않게 되면 그 때 부터는 시계가 아닌 것이다. 안 맞는 시계를 가지고 어찌 약속을 할 수 있겠으며 내계획을 세울 수 있겠는가? 고장난 시계에 맞추어 세상이 돌아간다면 세상은 온통 뒤죽박죽이 되 고 말 것이다.
세상에 무엇이든 그것이 물건이든 사람이든 처음 만들 때에는 그 기 능과 목적이 뚜렷한데 고장이 나면 그 기능을 다할 수 없어 버리거나 바꾸게 된다. 정 버릴 수 없게 되면 최소한 수리를 해서라도 그 기능을 회복 시켜 주게 된다. 고치다가 정 기능이 돌아오지않게 되면 그때는 하는 수 없이 버리게 된다. 요즘 우리 사는 세상에 내 눈으로 보기에 이 고장난 시계들이 너무 많아 눈살이 찌푸려진다.
정계에도, 법조계에도, 경제계에도 이 사회를 지켜야할 분들이 고장이 나서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제대로 돌아서 시간을 맞추고 세상의 표 준을 제시해야할 분들이 법망에 걸려서 구속되고 물의를 일으키는 뉴 스를 접하게 되면 내 고장 난 몸까지 미워져서 세상 살 맛이 나질 않는다. 암이 재발되어 항암 치료를 계속하고, 인공관절을 넣은 무릎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고, 뇌출혈로 쓰러지기도 했으니 이 몸은 무엇으로 어디서 부터 고쳐야 하는 것인지 도무지 판단을 할 수가 없다.
가족들 걱정도 덜어 주어야겠고 또 내가 하고 싶은 일도 좀 더 해야 겠는데 쉽게 고쳐지질 않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때론 나 스스로를 반성해 보기도 한다. 달리기도 힘들고 계단을 오르는 것은 아예 포기를 해야 하고 그 좋아 하던 등산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정계, 경제계, 법조계 이 세상의 존재하는 모든 고장난 시계들, 내 신체상의 고장들, 어떻게든 고쳐야 고쳐야 제대로 살 수 있고 세상이 반듯이 설 수 있을텐데. 누군 가 이 일을 맡아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