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경덕 시인 북콘서트 전체 기념 사진
4월 17일 오후 5시, 수원 행궁동의 시 전문 책방 <산아래 詩 다시공방>(대표 이안 시인, 책방지기 조온현 시인)에서 마경덕 시인의 북콘서트가 '봄의 문턱을 넘어온 포로들'이라는 제목으로 열렸다. 30여 명의 독자와 지역 시인들이 함께한 이날 행사는 시와 에세이, 그리고 삶의 이야기가 어우러진 밀도 높은 문학의 장으로 펼쳐졌다.
행사는 오후 4시 30분 저자 사인회로 시작됐다. 식전 무대에서는 이인자 시인이 오페라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를 열창해 분위기를 한층 끌어올렸다. 사회는 정다겸 시인, 대담은 이복희 시인이 맡아 자연스럽고 깊이 있는 진행을 이끌었다.
마경덕 시인(오른쪽)이 이복희 대담자의 질문에 진지하게 답하고 있다.
외로움에서 시작된 글쓰기, "시는 나의 대화 방식"
마경덕 시인은 인사말에서 자신의 창작 출발점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저는 왜 글을 썼냐고 물으면 외로움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는 고백은 청중의 깊은 공감을 이끌어냈다. 어린 시절 할머니 손에서 자라며 느꼈던 고독, 대화 상대가 없던 시간들이 자연스럽게 글쓰기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외로울 때 글을 쓴다. 어쩌면 시는 나 자신과의 대화이자 세상과 이어지는 통로"라며, 시 창작이 단순한 표현을 넘어 존재의 이유와 맞닿아 있음을 강조했다. 이러한 고백은 이번 에세이집 『봄의 문턱을 넘어온 포로들』의 정서적 기반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됐다.
정다겸 시인의 북콘서트 진행 장면
"시는 발견, 에세이는 노동" — 장르의 경계를 넘다
이날 대담에서는 시와 에세이의 경계에 대한 흥미로운 논의도 이어졌다. 마 시인은 "시는 발견만 하면 비교적 쉽게 써지지만, 에세이는 훨씬 많은 시간과 노동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번 에세이집은 약 150편에 가까운 원고를 정리해 한 달 만에 출간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기존 수필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썼다고 강조하며 "문학은 틀에 갇히면 생명력을 잃는다"고 말했다. 특히 시와 에세이의 경계를 허물고 감각적 언어로 사물을 새롭게 바라보려는 시도가 돋보인다는 평가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시인이 마 시인의 시를 낭독하고 있다.
사물에서 발견하는 세계, '이미지와 감각'의 힘
이날 북콘서트에서는 「바다의 저울」, 「아침의 목소리」, 「똥물」, 「빈자리」, 그리고 '호두나무 일기' 연작 등이 낭독됐다. 낭독 후 이어진 대담에서는 '이미지와 감각', '동시대성과 내면', '독자와의 거리' 등 다양한 주제가 오갔다.
마 시인은 특히 "사물은 말을 걸어온다"고 강조했다. 새소리, 의자, 호두나무 등 일상의 대상들이 시 속에서 생명력을 얻는 이유에 대해 그는 "시인은 사물의 입이 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익숙한 사물을 낯설게 바라보는 시선이 곧 시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대구에서 온 시인이 마경덕 시를 낭독하고 있다.
"독자를 문 밖에 세우지 말라" — 공감의 시학
현대시의 난해함에 대한 비판도 인상적이었다. 마 시인은 "요즘 시는 독자를 문 밖에 세워놓고 들어오라고 한다"며 "시는 공감이 있어야 한다"고 단언했다. 그는 독자가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언어와 감각을 강조하며, 시는 '영혼의 밥'과 같다고 표현했다.
또한 "보이지 않는 가치를 찾아내는 것이 시인의 역할"이라며, 작은 사물과 일상의 순간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태도를 강조했다. 이는 그의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창작 철학이기도 하다.
김지수 시인이 퀴즈시간을 진행하고 있다.
<산아래 詩 다시공방>에서는 축하 케잌을 준비해 분위기를 띄웠다.
참여와 소통으로 완성된 문학의 장
행사 후반에는 김지수 시인의 진행으로 시 퀴즈가 이어졌고, 독자들이 직접 시를 낭독하는 시간도 마련됐다. 단순한 강연을 넘어 독자와 시인이 함께 호흡하는 참여형 프로그램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
이번 북콘서트는 시를 어렵게 느끼는 독자들에게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가는 자리였다. 동시에 문학이 특정 형식에 머무르지 않고 살아 있는 대화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봄의 문턱에서 열린 이날 행사는, 시인이 말한 것처럼 "문턱은 노력으로 넘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리고 그 문턱을 넘은 자리에는, 여전히 시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다.